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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관찰일기

by 홍매화



인포 데스크에서 바라보는 필라테스


오전 7시 문이 열리고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선다. 조용한 인사와 눈인사를 나누고 익숙한 동선대로 옷을 갈아입고 기구 옆에 매트를 깐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람과 공간 사이의 경계를 지키는 자리. 인포 데스크. 이 자리에서 나는 매일 전쟁과도 같은 어떤 풍경을 목격한다. 필라테스 수업이 시작되면 공간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된다. 외부의 소음은 닫히고 안에서는 숨소리와 근육의 떨림, 그리고 기구의 미세한 진동만이 들린다. 무릎 위에 올라가는 손, 밀어내는 발, 허공에 멈춘 호흡, 모든 것이 아주 정교하고 고요하게 움직인다. 그 고요함 속에 담긴 긴장은 가볍지 않다.


그들은 각자의 무게를 안고 이 공간에 온다. 삶에서 받은 피로, 어깨 위의 책임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그리고 이곳에서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몸으로 그것을 다시 끌어안는 법을 배운다.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조금씩 스스로를 회복한다. 나는 이런 그들을 매일 지켜본다. 조금 지친 걸음으로 똑같은 자리에 수건을 펴며.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보이지만 필라테스 센터는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감당해 내는 방식으로 이 공간 안에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좀 힘들었어요"


나는 종종 생각한다. 저 안에서 회원님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몸과 마주하는 일이 이토록 외롭고도 치열하다는 걸. 그들도 느끼고 있을까. 누군가는 통증을 참으며 또 누군가는 어제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느끼며 그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버티는 법을 배워가는 중일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회원님들은 마치 전투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천천히 걸어 나온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살짝 붉어진 얼굴. 하지만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맑아졌다. 오늘도 무언가를 넘어섰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데스크 앞에 잠시 멈추고 물을 한 잔 마시며 "오늘 좀 힘들었어요" 하고 말한다. 여전히 회원님들의 눈빛은 반짝이는걸.


인포데스크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오늘은 어떤 회원님들이 들어올까"다.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 분들도 계시고 낯선 회원님이 등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한 루틴처럼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리듬이 공간을 채워간다. 나는 인포데스크에 앉아 그들의 작은 변화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만들어지는 진짜 이야기들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안현주 회원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원님은 출석률 거의 만점! 개인사정으로 빼실 때는 미리 연락을 주시는 회원님이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헬스장을 향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 보인다. 처음 오셨을 때는 조심스럽고 기구에 앉는 것도 낯설어하셨는데 요즘은 먼저 준비를 하고 계신다. 현주 회원님은 "필라테스를 안 하면 오히려 허리가 더 뻐근해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그날.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운동은 결국 습관과 꾸준함이 답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시는 필라테스 회원님이다.



정반대 스타일 이예지 회원님


예지 회원님은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하신다. 출근 전에 누구보다 먼저 센터에 도착해서 리포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생각이 난다. 처음에는 필라테스가 조금 낯설다며 웃던 회원님이 작은 근육 하나까지 섬세하게 조절을 하고 호흡을 이어간다. 한때 "허리 디스크 때문에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통증이 줄었어요." 이 한마디가 얼마나 묵직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성실함과 열정만큼은 아주 강한 회원님이다.



얼마 전에 등록하신 박수진 회원님


체험 수업이 끝나고 나가며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몸은 아직 잘 안 따라주는데 이 개운한 느낌이 너무 좋아요." 이 말씀에서 이 회원님은 꾸준히 오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구 위에서 어색하게 몸을 움직이던 그분이, 이제는 천천히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무게를 안고 이 공간에 온다. 삶에서 받은 피로, 어깨 위의 책임, 잠 못 잔 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그리고 이곳에서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몸으로 그것을 다시 끌어안는 법을 배운다.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들은 조금씩 스스로를 회복해 간다. 나는 그런 그들을 매일 지켜본다. 누구는 조금 지친 걸음으로 누구는 똑같은 자리에 수건을 펴며.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공간은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감당해 내는 방식이 이 공간 안에 조용히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포 데스크에서 필라테스를 권하는 이유


인포 데스크에 앉아 매일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들, 눈빛, 표정 등 이 안에는 각자의 하루가 담겨 있고 이 무게를 나는 읽을 수 있다. 처음 오는 회원님은 스스로를 어색해하고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요"라며 작게 웃는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 그 웃음은 달라진다. 불안 대신 안정과 익숙함이 얼굴에 스며든다. 사람이 스스로를 돌본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스며드는 게 아닐까. 필라테스를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라테스는 이 공간에서 자신의 몸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 어깨가 얼마나 올라가 있는지, 숨을 어디까지 들이마셨다가 어디서 내쉬는지, 수업이 끝나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회원님들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표정은 '힘들었다'는 말보다 '그래도 나는 해냈다'라는 확신이 가득히 담긴 얼굴이다. 그 얼굴을 매일 보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필라테스 꼭 하세요.라고도 회원님에게 강조를 하고 있다. 지금은 운동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에게로 되돌리는 일이라는 걸 느낄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바뀌는 사람들


하루하루 같은 듯 다른 일상이지만 회원님들을 지켜보는 나. 그 작은 변화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해하던 동작들이 어느새 몸에 스며들고 조금은 편안해진다. 뻣뻣한 허리, 그리고 굽어있는 어깨들이 천천히 펴지는 걸 볼 수 있다. 필라테스를 하루 한 시간 남짓의 시간 그 짧은 순간들로 누군가의 통증을 덜어주고 삶의 리듬을 되찾게 해 준다.


인포데스크라는 이 자리에서, 매일같이 누군가의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헬스장과 필라테스 센터라는 이 공간이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운동은 결국 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이라는 걸 느낄 것이다. 이곳에서 회원님들의 움직임을 통해 매일 배우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리포머 위에서 조용히 자신의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늘 그렇듯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말한다. "오늘도 필라테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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