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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알려주는 사람들

마치 필름카메라 장면처럼

by 홍매화



하루의 시작을 반겨주는 첫 인사


아침 공기가 아직 채 깨어나지 않은 시간. 헬스장 내부는 늘 그렇듯 고요하지만 곧 하나둘 불이 켜지고 기계가 돌아갈 준비를 한다. 나는 인포데스크에 앉아 오늘도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들어 출입문 쪽을 바라본다. 역시, 명재 회원님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

밝고 환한 미소에 목소리까지 생기가 넘친다. 마치 햇살 한 줌이 헬스장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명재 회원님!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그분은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걸음으로 같은 미소로 헬스장을 찾아오신다. 하지만 인사만큼은 언제나 새롭고 따뜻하다. 기계적으로 건네는 인사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진심이 담긴 인사. 이른 아침, 아직 덜 깬 마음에 그 인사는 부드럽게 스며들어 하루의 시작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인사를 주고받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내가 그분의 하루를, 그분이 나의 하루를 응원하는 작은 교감이 오간다. 그 짧은 순간 덕분에 피곤한 아침도 한결 가벼워지고 반복되는 업무도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가 이 공간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고. 운동기구의 차가운 금속, 커다란 거울,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그분의 짧은 인사는 이 공간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회원님의 밝은 인사에 담긴 온기로 오늘도 나는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사실 많은 회원분들이 오가지만 이렇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분은 흔치 않다. 그 짧은 한마디 속에 느껴지는 배려와 따뜻함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상대를 마주 보고 인사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뜻일 테니까.


가끔은 피곤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도, 회원님의 “좋은 아침이에요!”라는 한마디에 마음이 가볍게 풀린다. 그 인사는 단지 나에게만 하는 게 아니다.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모두를 향한 긍정의 기운이기도 하다. 운동을 하러 오는 분들이지만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건 이런 따뜻한 순간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명재 회원님의 인사 덕분에 하루가 한결 부드럽게 열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헬스장에 이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맙고 든든하다.



저녁 8시를 알리는 명순 회원님


하루가 저물어가는 저녁 8시 운동기구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 가끔 들리는 웃음소리, 그리고 퇴근 후 운동하러 오는 회원님들로 헬스장은 조금씩 붐비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안내와 정리를 반복한 몸이 약간 무거워질 즈음 늘 익숙한 그 시간이 찾아온다. “안녕하세요~!” 밝고 씩씩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만큼 환한 얼굴. 명순 회원님이 오셨다.


정확히 저녁 8시. 회사 일을 마치고도 지친 기색 없이 오히려 하루를 마무리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헬스장에 들어서시는 명순 회원님은 이 시간의 ‘단골 미소’ 같은 분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명순 회원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면 그분은 꼭 웃으시며 한마디 덧붙이신다. “오늘은 좀 힘들었는데, 운동하면 또 풀릴 거 같아요.” 그 말이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지친 하루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잡으려 이곳을 찾아오는 그 모습이 단순한 운동 그 이상처럼 느껴진다. 회원님의 인사는 단지 나를 향한 말이 아니다.



하루를 무사히 보낸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이 공간에 모인 모든 이들을 향한 ‘오늘도 잘 버텼어요’라는 격려처럼 다가온다. 퇴근 후의 피로가 얼굴에 묻어날 법한 시간에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 그 모습은 내 마음까지 환기시켜 준다. 그 인사 덕분에 나도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더 좋은 에너지를 내고 싶어진다.


헬스장은 체력을 기르는 곳이지만 때로는 이런 짧고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인사를 매일같이 잊지 않고 건네는 명순 회원님이 있어 이 저녁 시간이 나는 참 좋다.



하루 끝, 익숙한 인사


저녁 10시, 대부분의 하루가 끝나갈 무렵 헬스장은 조용해진다. 낮 동안 북적이던 공간도 점점 정리되고 기구들의 움직임도 조금은 느려진다. 그런 고요함 속에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한 분이 있다. 바로 영숙 회원님. 6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에서 걸어서 이곳으로 오시는 분. 늘 깔끔한 셔츠에 단정한 표정, 그리고 꼭 잊지 않고 건네는 그 인사. “안녕하세요!” 그 인사 한마디가 참 묘하다.

하루의 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인데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날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그 짧은 인사에 부드럽게 덮이는 기분이다. 나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미소로 화답한다. “안녕하세요, 영숙 회원님. 오늘도 오셨네요!” 그분의 하루는 늘 비슷해 보이지만 단조롭지 않다.



회사에서 걸어서 운동하러 오는 길 그 짧은 여정에도 무언가를 지켜온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피곤할 법한 시간임에도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자신만의 루틴을 지켜가는 모습은 묵직한 존경심을 자아낸다. 영숙 회원님은 운동을 마친 뒤 늘 샤워를 하고 조용히 인사를 남기고 퇴장하신다.

마지막 퇴실 확인을 하며 문을 닫을 즈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위해 하루를 써주는 사람. 그 꾸준함과 성실함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매일 저녁 10시, 그 익숙한 인사 한마디가 헬스장의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해 준다. 영숙 회원님이 다녀가신 자리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에너지가 남는다. 그건 아마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말없이 쌓아온 믿음 같은 것이겠지.



인포데스크와 단골회원의 신뢰는 필름카메라 같다. 요즘 세상은 빠르다. 클릭 한 번이면 정보가 쏟아지고 대화는 짧은 메시지로 끝나고 관계도 쉽게 맺고 쉽게 끊긴다. 하지만 이런 세상 속에서 인포데스크와 단골회원, 사이의 신뢰는 마치 필름카메라처럼 천천히,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쌓여간다.


필름카메라는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신중하게 구도를 잡고 노출을 맞추고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바로 결과를 볼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 현상하고 건조하고 인화하는 그 느린 과정을 견뎌야만 비로소 한 장의 '진짜' 사진이 손에 들어온다. 인포데스크도 그렇다.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고객 속에서 단골이란 존재는 한 번의 친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첫 인사, 두 번째 안내, 세 번째 배려, 조금씩 쌓이는 기억과 믿음. 그 반복 속에서 어느새 고객은 ‘이곳이 편하다’, ‘저 사람이 반겨준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건 마치 현상소에서 막 건져낸 필름 한 롤 속의 따뜻한 사진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 신뢰는 화려하지 않다. 디지털처럼 선명하고 빠르지도 않다. 오히려 투박하고 약간의 실수도 섞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엔 진심이 있다. 그 진심은 고객에게도 전해진다. 그래서 단골은 다시 찾아오고,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건넨다.


인포데스크는 그 모든 순간을 담아낸다. 마치 필름 속 장면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신뢰란 바로 이런 느린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것 아닐까. 빠르게 맺는 관계보다 천천히 다가서며 만들어진 신뢰가 더 깊고 오래간다는 걸.


인포데스크와 단골회원의 관계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한 장의 필름을 찍듯 회원님 한명 한명에게 정성껏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언젠가 그 한장 한장이 모여 누구에게나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한롤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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