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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Sep 16. 2018

흉터는 상처를 이겨낸 흔적임을

영화 <너의 결혼식>을 보고

영화를 좋아해서 공부했고, 지금도 그쪽 일을 하는 형 P가 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추천한 영화이다. 네 이야기 같다면서 티켓까지 사줬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런 걸까, 싶었다. 100%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의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그가 티켓까지 사주니 안 볼 이유가 없었다. 한국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 대해 별 기대가 없는 터라, '얼마나 내 이야기 같길래?'하는 마음에 그냥 갔을 뿐이다.


2시간 남짓하는 다소 뻔한 사랑이야기를 보고 난 뒤에 생각은, 영화가 지극히 평범하고 잔인하도록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의 비주얼은 비현실적..)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판 <500일의 썸머> 같았다.




<너의 결혼식>이라는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다. 승희(박보영 분)와 우연(김영광 분)이 함께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의 결혼식'이 맞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결말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결국은 맺어질 수 없는 남녀관계가 전개되는 것을 그린다. 가슴 설레는 고교시절 첫사랑 이야기에서부터 어쩔 수 없는 이별과 재회의 반복들까지 가슴이 답답할 만큼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연애의 모습을 보여준다. 둘이 서로를 좋아할 때에는 상황이 좋지 않고, 한 명이 애틋하면 상대에게 다른 연인이 있다는 그런 식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음속에서 '사랑은 타이밍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르게 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


나도 참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굳이 이야기하자면 인생 자체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밍만 따지다 보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풍기는 무책임함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행동했다.


친구여도 좋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외모는 많이 다르지만, 영화 속에서의 우연과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하고 살아왔다. 우연히 스치고 싶어서 이상한 동선으로 등하교를 하기도 했고, 그녀의 이상형이 되고자 발버둥 치면서 이것저것 취미만 늘려갔던 적도 있다. 취직하고 조금 마음이 안정되면 연락하라는 이별의 완곡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취직하자마자 전화했던 기억도 난다.  항상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모든 걸 쏟아서 이야기의 결말을 밝게 만들고 싶었다.


스크린에 투영된 배우들의 모습에서 나를, 그리고 나의 연애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사랑과 이별의 타이밍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라 이해하기 힘드니, 내가 할 수 있는 쪽에 집중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이해하고도 감당이 되지 않으니, 피해버렸던 것 같다.


영화 속의 우연도 그러하다. 승희가 곁에 없을 때는 갈구하고, 어떻게든 곁에 서있으려고 한다. 그게 친구이든 연인이든, 아니면 '지나가던 키 큰 남자 1'이라도 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힘들어하는 승희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고 오기까지 한다. 김영광의 비주얼 덕에 직진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부담의 단상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그는 사랑이 타이밍이란 것을 몰랐을까. 아마 알았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타이밍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흉터는 상처를 극복해낸 흔적이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은 언제나 타이밍'이라는 말보다 영화를 더 잘 표현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타이밍이고, 타이밍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은 예기치 못한 상처를 낳는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사랑은 어떠한 사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고, 생채기도 나기 마련이다. 상처의 정도가 산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Hedge 할 수는 없다. 그저 그 당시에 최선을 다해 상처를 받고, 치열하게 아물도록 노력하며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 속 우연은 겁을 내며 피하지 않고 승희와 연관된 모든 상황을 받아냈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충동적일 만큼 무모하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랬기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을 만큼 사랑했던 여자가 결혼할 때,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우연이 그러했듯,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도 나왔던 말이다.


우리는 타이밍을 어찌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인연을 기다리는 나태함은 버려야 한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상처를 두려워서 피하지 않을 용기, 그 상처가 아물어서 흉터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 그리고 사랑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주는 무게감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 이 정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의 우연처럼.





스틸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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