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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Dec 05. 2018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완벽한 타인>을 보고

우리는 착각을 많이 하고 살아간다. 몇 번 해본 일에는 능숙해져 있다는 생각, 주변 동료가 자신을 흘끔거리면 나에게 관심이 있나 하는 생각, 사람들이 칭찬해주면 본인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사례들이다. 관성이나 경험에 의해서 꽤나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모든 일에는 100%가 없으므로, 우리의 믿음은 착각이 잘 포장된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에 대하여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들을 알게 되고, 함께한 시간이 길어진다면 이러한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고여버린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을 대할 때 그들의 한 면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의 뒷 면을 지구에서는 볼 수가 없듯이. 




이렇게 달달한 친구들이거늘..


속초에서 유년기를 보낸 친구들은 어느새 장성해지고, 석호(조진웅 분)와 예진(김지수 분)의 집들이 파티에서 모이게 된다. 편하게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하던 도중, 저녁 동안 오는 전화와 메시지를 모두 공개하기로 하는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 십 년의 시간도 밝혀주지 못했던 친구의 이면이나 숨기고 있던 치부 등이 등장하게 된다. SNL Korea에서 활약했던 배세영 작가가 참여해서인지, 이야기 곳곳에 유머 요소가 숨어있다. 그렇지만 그 웃음은 씁쓰름하다. 영화 속의 인물들도, 영화 밖의 우리들도 모두 이면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인셉션>의 마지막 부분을 오마주한 장면으로 파국으로 치달은 결말이 허무한 상상임을 말해주지만, 실제로 벌어졌건 그러지 않았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주는 울림은 이미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벽하게 확신하면서 믿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미지와 실상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는 주변을 믿지 말고, 의뭉스러운 점은 끝까지 의심하여 분석하자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적어도 내 생각에 그것은 아닐 것 같다.


웃긴데 마음 편히 웃을 수 만은 없고, 재밌는데 불편한 그런 오묘함이 있다.


100% 솔직한 사람도, 거짓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면은 숨기고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극 중에 나오는 불륜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불륜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쁘다.) 그리고 그 숨기는 면도 대하는 사람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사람마다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소재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소 피곤하더라도 어느 정도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무의식 중에 다들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숨김(?)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오픈한다고 해도 반겨줄 사람은 딱히 없을 것이다. 친구나 연인관계에도 마찬가지고, 가족끼리도 그럴 것이다. 잠깐은 '이런 것까지 알려주다니, 용기가 고맙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내 부담에 지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가릴 건 가리고, 밝힐 건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그게 가식이나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거짓이 섞여 있는 일종의 가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그것이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의 배려라는 사실이다. 상대의 감정을 신경 써서 본인이 가진 이면의 폭을 관리하는 섬세함이 관계의 안정감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게 노화인가..




사람들은 개인적인 삶, 공적인 삶, 그리고 가족도 친구도 누구도 모르는 비밀의 삶을 사는 것 같다고 이재규 감독은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면을 어느 정도 공개할 것인지 끊임없이 조절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이면을 밝혀내어 상대를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무언의 충격을 감내하는 것은 다소 리스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이 차츰 이해가 된다.


물론 불륜이나 사기, 뒤통수를 치는 등의 이면은 물론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관계를 배려하는 이면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줘야 하지 않을까. 인위적인 까발림보다는, 자연스러운 기다림이 상대가 만든 벽을 자연스럽게 허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도 꽤나 많은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알아가는 것보다는, 적당히 그 간격을 기다려주면서 잊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더 알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스틸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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