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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Mar 01. 2022

한강을 걸었다

모처럼 목적 없는 시간을 보냈다

휴일인 오늘, 나는 모처럼 걸었다. 


사실 성향 상 '집돌이'라서, 약속이 없는 한 밖에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생각도 복잡하고 집이 답답하다고 느껴져서 무작정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는 걷고 또 걸었다. 한강 쪽으로, 아무런 목표 없이 말이다.


걷는 것을 나름 좋아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맑지 않을 때 걷기 시작한 건 친구 L의 조언 덕이다. 늘 부처같이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그를 바라보며, 20대 중반의 나는 아래와 같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글을 쓰면서 당시를 복기해봤는데, L은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나 : (L의 이야기를 듣고) 너는 화를 안 내는 거야, 아니면 못 내는 거야?? 이게 말이 돼?

L : 형, 나도 화나지. 근데 바로 화내 봐야 좋을 것도 없고... 그래서 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좀 자세히 설명하려고 하는 편이야, 예를 들어가면서.

나 :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먹으면 어떡해?

L : 그러면 집에서 한강까지 갔다가 쭉 돌아서 오면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더라. 그러고 오면 좀 가라앉아.

나 : 후.. 넌 역시 부처다.


친구 L과의 대화 이후, 나도 머릿속 뉴런들이 꼬인 느낌이 들면 걸었다. 집에서 여의도까지, 아니면 고궁 인근까지 꽤나 긴 시간을 걷곤 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곤 했다. 가볍게나마 지속적인 운동을 하니 뇌가 쉬게 된 건지, 아니면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조금이라도 개선되어 L의 방법은 어느새 나의 루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걸음을 잘 걷지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점차 나이 들어가며 '쓸모'만 찾아가며 핑계만 댔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일 때문에 또는 관계 때문에 신경 많이 썼으니 집에선 쉬는 게 더 쓸모 있는 행위라거나, 추울 때 밖에 있는 것보다는 집에서 영화라도 하나 보는 게 힐링이 될 것이라는 생각들. 그때는 합리적이고  쓸모 있는 이성적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합리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자리한 얽힘을 외면한 탓에, 심리적 불편함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번은 실수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고민하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나가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쓸모 있는 생활만 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 말이다. 바람을 피해 졸고 있는 길고양이, 부모님 손을 잡고 미소 짓는 아이들 등 집에서 쉴 때는 보지 못하던 장면들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늘의 석양이다.


이렇게 뜨겁게 타오르는 노을은 모처럼이다.


한강 다리를 건너다보니 서쪽하늘에 지고 있는 태양이 보였다. 너무나도 잘 익어서, 건들면 터질 것 같은 토마토 같은 색깔의 태양. 그리고 시퍼런 냉기를 품고 있는 한강물은 노을을 받은 부분만 붉게 일렁였다. 차가운 강바람 사이로 그 모습을 보며 붉음과 푸름이 가진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4년 전, 히말라야에서 보았던 은하수 이후로,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이었다.


요즘의 나에게 빨강은 양봉, 파랑은 음봉이다. 뉴스를 보면 빨강은 야당, 파랑은 여당이다. 달력을 보면 빨강은 공휴일과 일요일, 파랑은 토요일이다. 쓸모를 핑계로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상징만을 본 것 같다. 물론 그 상징들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들은 마음 편두통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이렇게 '무쓸모의 걷기'도 필요한 것이다.(이왕 여의도 간 김에 정인면옥에서 냉면이나 먹고올까 하다가 목적이 생기는 것 같다는 과한 의미부여로 그냥 돌아왔다...)


안 그래도 모든 것의 기준을 '쓸모'로 잡다 보니, 스스로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을 가끔 받곤 했다. 회사에서 쉴 새 없이 만드는 보고서들로 인해 브런치 글이 소홀해지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신경 쓰다 보니 자기 계발을 놓치기도 한다. 회사생활이나 인간관계는 하나의 약속이자 사회적인 프로토콜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너무 극단에 치우친 생각으로 그쪽에만 방점을 둔 것이 아닌지,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그러니 조금은 차분해졌다.




애초에 집돌이라서, 매일매일 꾸준히 만보 이상 걷는다던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전기차라면, 나만의 공간은 일종의 충전소이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걸어보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보면서 말이다. 주변도 돌아보며 쓸모없는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조금이나마 고민의 무게가 덜해지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2017년 가을, 첫 번째 회사에서도 이 생각을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을 늘 반추한다. 지금 산란한 내 마음도 잘 이겨내면 결국엔 찬란해질 것을 알고는 있기에, 차분하게 침참하며 걸었다. 앞으로도 조금이라도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걸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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