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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un 22. 2018

500일의 썸머

그녀는 썅년이 아니다

호불호가 강한 영화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극 중 인물이나 후기에 대한 일관성도 많이 결여되는 작품이다. 혹자는 썸머가 나쁘다고 이야기하며 그녀가 이기적이라고 욕한다. 관계보다는 개인에 집중하는 성향을 과도한 이기주의로 해석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톰을 욕하기도 한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 전까지 썸머가 얼마나 많은 신호를 보냈는데 그것도 못 알아채는 무심함을 꾸짖으면서 말이다. 


영화를 처음 본 건 2016년 여름이었다. 7월의 어느 점심시간에 내 친구 둘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각각 썸머와 톰의 입장에서 격한 토론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영화를 보고 누가 나쁜지 생각해오라고 숙제까지 내주었다. 그렇게 영화를 봤고, 나는 그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았다.



   

톰(조셉 고든-레빗 분)은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녀의 미소, 머릿결, 귀여운 무릎, 목에 있는 하트 모양의 점, 말하기 전에 가끔 입술을 핥는 모습, 웃음소리, 그리고 침대에서 잠든 모습까지 거의 모든 것을 말이다. 소소한 취향이 비슷한 것에 열광하고,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필요 이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화가 초반에 말해주듯 톰은 운명적 사랑에 대해 믿는 사람이었고, 그 운명이 썸머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가 나중에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는 점이 씁쓸하다.


불행히도 썸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썸머(주이 디샤넬 분)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운명이나 사랑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화 초반부의 내레이션은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고 말해준다. 긴 머리칼과 그걸 쉽게 자를 때마다 느껴지는 무덤덤함만이 어린 시절을 지탱해줬다고 말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이혼의 트라우마겠거니 했다. 그렇지만 나중에 톰 앞에서 "누군가의 ㅇㅇㅇ"으로 정의되는 것이 싫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느꼈다. 그녀는 관계보다는 스스로의 존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빈 말이 아니고 정말 그러하다.


극 중에서 톰이 보여주는 모습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운명적인 무언가를 꿈꾸는 다소 찌질한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다. 여기에 티격태격하면서도 꽁냥 거리는 여자가 등장했다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나 러브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500일의 썸머>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위의 포스터에서도 나오듯,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영화들처럼 운명의 커플이 사랑을 가꿔가거나, 서로 다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중요한 가치관이 다른 연인이 어떻게 이별하는지, 그 단상을 영화로써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썸머와 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이 있다. <500일의 썸머>는 담담하다 못해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이다. 보통 같으면 각자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게 배려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아 저 입장이라면 그렇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한쪽에 몰입해서 상대를 욕하다가도, 변덕스럽게 마음을 풀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고,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톰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두 주인공이 동등한 비중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화의 포인트는 톰이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고 찌질거리는 데에 맞춰져 있다. 


링고 스타라니..


불친절함은 철저히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무심결에 봤을 때는 톰의 편에서 썸머를 재단하던 사람들이 영화를 되뇔수록 썸머의 관점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깊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조언보다는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교훈이 더 기억에 남 듯이, 개인적으로는 감독과 작가는 그것을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톰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썸머가 나쁘지만, 썸머의 입장에서 봤을 땐 톰이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운명이 존재한다고 해도,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면 더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톰은 썸머를 운명의 상대라고 믿기만 할 뿐 수동적이다. 가만히 있으면 운명이 우연하게 저절로 다가오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만 한다. 그녀가 비틀즈 멤버 중에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것도 까먹을 정도이니, 관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썸머 입장에서는 충분히 지칠만 하다.


그렇다고 썸머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 또한 아니다. 썸머 역시도 절대 선은 아니고, 다만 그 당시의 톰보다 조금 더 성숙할 뿐이다. 그녀가 태생적으로 톰보다 성숙하다거나, 좀 더 포용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릴 적의 상처로 인해 관계나 사랑에 대한 의심이 깊고, 이로 인해 조금 더 노력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썸머 역시도 톰을 더 사랑했다면 더 노력했어야 한다. 톰이 본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사람임을 알기에, 문제가 있다면 말해주고 함께 노력하자는 방향으로 이끌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녀도 그러지 않았다.


둘 다 나쁜 게 아니다. 그냥 저 두 사람은 지쳤을 뿐이다.




그렇다면 톰과 썸머처럼 인연인 듯 하지만, 그 기저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둘의 만남은 무의미한 것일까?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쏟다가 지쳐서 헤어지면 그간의 모든 것들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걸까? 

어차피 헤어질 건데 굳이 감정 소모를 하면서 만나야 하나? 


이쯤 되면 이런 류의 생각이 많이 떠오르게 된다. 한심한 생각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많이 해본 생각이고, 나와 지금까지 싸워왔던 전 여자 친구들도 이런 생각을 꽤나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툰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고 감정 소모가 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 생각은 세 가지 이유로 틀렸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든 개개인이 다르고, 영화와는 다르게 현실의 사랑은 결말이 확정적이지 않으며, 저렇게 피곤한 사랑조차도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 번째 이유에 집중하고 있다.


운명은 있지만, 다만 서로가 인연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썸머. 씁쓸하면서도 여운이 남는다.


썸머와의 500일이 다 되어갈수록 톰은 성장한다. 이별의 아픔에 몸부림치고 한없이 찌질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서는 면접장을 비추는 엔딩 장면에서 어텀을 만난다. 영화 속에서 절대적인 위치로 스토리를 리드하는 내레이션의 말을 끊을 만큼, 그는 노력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기적이나 운명은 없다고 하는 말을 온몸으로 부정하며 면접장의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니 말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나아가며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축하해준다. 나무에는 꽃이 피고 날짜는 시작을 의미하는 1을 표기하는 맨 마지막 장면은 톰의 성장드라마가 해피 엔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썸머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운명을 믿지 않았던 그녀는 '우연히' 다가와 그녀에게 관심을 표현해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로 한다. '톰의 생각이 옳았구나.'라고 받아들이면서 그녀도 사랑을 찾게 되는 것이다. 톰과의 연애 없었다면 그녀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약혼자를 만날 수 있었을까? 일련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운명의 상대를 만난 그녀는 예전의 썸머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아마도 본인의 생각이 맞다고 믿으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보편성을 뛰어넘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나와 친한 형인 J는 늘 그렇게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사랑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톰과 썸머의 사랑도 결국엔 그런 식으로 보편적이다. 영화이기에 사건을 극화하고, 시간을 재구성하는 등의 노력으로 그 둘의 무언가를 특별하게 만들고는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다 보고 드는 생각은 그 둘의 연애가 내 것 혹은 우리의 것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톰의 동생 레이첼(클로이 모레츠 분)도, 썸머의 특별함에 의구심을 표명한다.


몇 달 전 헤어지고 정신 못 차리는 나에게 J는 그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나의 징징거림을 견디다 못해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지 않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톰의 동생이 틈틈이 정곡을 찌르듯, 혹은 그 이상으로 핵심을 짚고 있는 표현이었다.


"형, 그런 사람 다시 못 만나요. 어떡하죠 진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는 있어, 네 말대로. 그런데 '너한테' 좋은 사람은 아닐 수 있지."

"에이 그게 뭐예요?"

"너한테 좋은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없으니깐." 


썸머는 썅년이 아니다. 톰 역시 썅놈이 아니듯. 

그저 그 둘은 각자 다른 사람일 뿐이고, 서로에게 맞는 짝이 아닐 뿐이다. 보편적인 이별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썸머가 조금 더 성숙하긴 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아직 어렸고 서툴렀다. 그래서 서로 다쳤을 뿐이다.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둘은 성장했다. 아무래도 치열하게 싸우고 그것을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둘의 생각은 많이 다듬어졌다. 감정적이었을 때는 본인의 아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서도 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둘은 그렇게 노력했고, 결국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언제 들어도 마음에 울림이 생기는 문장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엽기적인 그녀>에서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처럼,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려면 우리는 늘 노력해야 한다. 예전의 톰처럼 우연이나 기적적인 운명을 바라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아프며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운명의 상대를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의 톰과 썸머처럼 말이다.





스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포스터 이미지 출처 : http://www.foxsearchlight.com/500daysof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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