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1. 변화가 익숙해지면서 생기는 새로운 습관
화요일 오전 열시. 이른 업무 미팅을 하나 끝내고 자리에 앉는다. 습관처럼 휴대폰에서 홈카메라 어플을 켠다. ‘제주2’를 누른다. 제주집 2층 거실이 휴대폰 화면에 뜬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똑같다.
그런데 제주집 2층 거실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강아지 침대에도 그 옆 빈백에도 하얀 강아지가 없다. 소리를 켠다. 조용하다. 화면 밖에도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 순간 깨닫는다. 아, 오늘은 우리 세식구 모두 서울에 있구나!
며칠 전에 다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아내의 서울일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한 주 정도의 짧은 서울 나들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퇴근하는 나를 아내가 픽업했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가 나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하얗게 잊고 제주도집에 있을 아내와 강아지를 찾았다. 어느새 주말부부의 습관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혼자 평일에 빈집으로 퇴근하던 초기에는 도착역 두 정거장 전에 습관처럼 아내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나 두정거장 전이야!” 원래대로라면 그 때쯤 아내는 집에서 차를 몰고 나를 태우러 나오는 타이밍이었다. 며칠간은 아내가 제주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메세지를 보냈다면, 요즘은 그 메세지가 우리 사이의 밈이 되었다. 곧 집에 도착할 거라는 위치 보고 정도의 의미랄까.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현관문을 열면서 아내에게 다시 메세지를 보낸다. “나도착” RPG게임에서 세이브포인트를 찍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일상의 변곡점마다 아내에게 알린다. 이것도 매일 보지 못하는 주말부부의 습관이다.
2. 습관에 애정이 담기는 경우
결혼 5년차 즈음이었나. 코스트코를 갔다가 전동칫솔 세트를 샀다. 전동칫솔 2개와 충전기 1개가 들어있는 세트였다. 화장실 수납공간 한켠에 충전기를 놓고 나란히 두개의 전동칫솔을 세워두었다. 아내는 자신의 전동칫솔에 민트색 스티커를 붙여서 각자의 칫솔을 구분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전동칫솔을 쓰고 나면 나는 습관적으로 비어있는 충전기에 스티커가 붙어있는 아내의 전동칫솔을 꽂는다. 다음번에도 스티커가 없는 내 칫솔을 쓰고, 스티터가 붙은 아내의 칫솔을 꽂는다. 그러다가 어느날, 스티커가 없는 내 전동칫솔은 늘 충전기에 꽂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지이이잉, 지이이잉. 쓰고 나면 다시 아내의 전동칫솔을 충전기에 꽂는다.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지이야, 그거 알아? 나는 항상 네 칫솔을 충전기에 꽂아두는데, 다음번에 양치하러 가면 내 칫솔이 충전기에 꽂혀 있다?”
“응 알아. 나는 네꺼, 너는 내꺼. 우린 항상 그래.”
혹시라도 충전되지 않은 전동칫솔을 들고 시무룩해하는 아내의(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아내는) 매번 서로의 칫솔을 충전기에 꽂아왔던 것이다. 습관에 애정이 담기는 경우다.
한동안 새로 산 큐라프록스 미세모 칫솔을 쓰다가,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전동칫솔을 집어들었다. 버튼을 누르는데 전동칫솔에 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장이 났나 싶어 살펴보다가,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은 내 전동칫솔이 충전기에 꽂혀있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습관처럼 내 칫솔을 충전기 위에 놓아주던 아내가 이제는 이 집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 때 떠올랐다. 전동칫솔이 방전된 건 이번이 처음이란 걸.
애정이 담긴 우리 부부의 습관은, 그동안 참 꾸준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했다는 걸.
[커플북] 주말 부부는 그뭐냐, 그거다. 제주편 - 아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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