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커피의 맛을 떠올리면 더위사냥이 생각나던 시절이 있었다. 달달한데 고소하면서 살짝 쌉싸름한 향이 나는, 그런데 달달에 90%, 고소에 9%, 쌉싸름에는 1%를 분배한 그런 맛.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를 했던 고3때는 졸음이 쏟아질때면 친구와 독서실 건물 옥상에 나가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그 맛도 비슷했다. 더위사냥을 녹여서 따뜻하게 데운 맛. 그 때 달지 않은 까만 커피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걸 내가 알았을까?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이십대 때도 커피를 그리 즐기지는 않았다. 커피는 데이트의 필수 코스인 카페의 입장권 같은 것, 이라고 생각했다. 스무살 이후의 나는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디저트가 이미 나의 당 허용치를 머리끝까지 채웠기 때문에 또 다른 달달함이 들어올 여지는 없었다. 고소하고 쌉싸름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디저트의 조합은 나쁘지 않았다. 마치 치킨에 맥주가 따라오듯, 커피는 디저트의 친구로 조금씩 내 마음에 고리를 걸었다.
요리를 전공한 누님 덕에 집에는 신기한 커피 도구들이 많았다. 드리퍼는 물론이고, 프렌치 프레스나 모카 포트도 있었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모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올려 마셨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이렇게 먹으니 맛있다, 향이 좋다.’ 하며 장단을 맞췄지만, 사실 나는 그게 무슨 특별한 맛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뭘 모르면서도 아는 척은 하고 싶어서, 결혼 후에는 큰 맘 먹고 비알레띠 모카 포트를 구매했다. 아내에게 이걸로 커피를 만들어 주겠다며 호기롭게 가스불 위에 올렸다가 시커먼 커피가 가스레인지 위로 흘러넘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커피에 ‘맛’이라는게 있다고 처음 느꼈던 건, 이탈리아 여행에서였던 것 같다. 남부 지역으로 버스 투어를 가던 길에 우리는 휴게소를 들렀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르르 휴게소의 한 까페로 몰려갔다. 까페에는 금방 줄이 생겼다. 대세는 거스르지 않는게 초보 여행자의 덕목. 아내와 나도 줄을 서서 커피를 주문했다.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잡아야 하는 작은 잔에 담긴 진하고 까만 물. 그리고 갈색 각설탕 하나와 조그만 스푼. 에스프레소 콘 주케로, 라는 신세계를 만난 날이었다.
잔을 코끝에 가까이 대는 순간, 진한 다크 초콜릿과 볶은 헤이즐넛의 아로마가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오렌지 껍질과 말린 무화과의 단내가 뒤따르며, 은은한 플로럴 노트가 잔향처럼 감돌았다. 충분히 향을 음미한 후, 커피를 마셨다. 진한 에스프레소에서는 캐러멜의 부드러운 단맛과 조금 덜 익었지만 신선한 포도의 산미가 느껴졌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커피의 산미가 기분 좋다고 느낀 것은. 마지막으로 잔에 가라앉은 흑설탕을 스푼으로 긁어서 입에 넣었다. 설탕의 알갱이들은 그 거친 표면에 커피의 고소함을 잔뜩 부여잡고 온몸으로 나의 혀를 자극했다. 진짜 설탕의 단맛은, 커피의 쌉싸름함을 뚫고 들어오면서 더 강렬해졌다.
시대가 나와 비슷하게 변해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원래 그랬는데, 그제서야 내 눈에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에스프레소바들이 서울 곳곳에 생기고(또는 내 눈에 띄고), 회사에는 유명 까페의 원두를 공수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설치되고, 아내는 우리집에 커피 머신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이태리산 캡슐머신의 할인 이벤트를 찾아낸다.
오늘도 나는 조금 이른 출근을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도착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리고, 부지런한 상사가 출근하기 전에 빈 회의실을 찾아 숨어 들어갔다. 회의실 가득 커피 향이 번지면 책 한권을 펼쳐들고 읽는 척을 했다. 실제로 읽었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아침의 고요함과, 아직 사람들의 숨으로 채워지지 않은 공간에 가득한 커피향, 그리고 거기서 오는 평화로움일 뿐이었으니까.
[커플북] 주말 부부는 그뭐냐, 그거다. 제주편 - 아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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