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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혼식은 해야지"

결혼식1

by 미립

나는 J다. 그것도 슈퍼 J다. 최소 삼개월의 일정은 항상 머릿속에 들어있다. 수시로 캘린더를 보며 일정을 체크하고, 변경되는 일정은 바로 수정하면서 혼자 즐거워한다. 그림이 그려지는 하루하루를 사는게 즐겁다.


하지만 나는 게으른 J다. 나의 계획은 언제나 내가 이미 아는 것의 범위 안에서 만들어진다. 굳이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공부해가며 계획을 세울만큼 부지런하지는 않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것에 대한 계획은 대충 세운다. 아니,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게 좀 더 정확하다. 결혼식도 그랬다.


4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는 결혼식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결혼식을 거친다는 걸 알았을텐데도 그랬다. 사촌형이나 선배, 회사 동료의 결혼식을 이미 몇 번이나 가봤으면서도 나의 결혼식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 없었다. 그저 막연히 결혼식은 지루하고 귀찮은 것이라는 불편한 감정만 마음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림을 먼저 그린 건 아내였다. 아내는 결혼식 자체를 원치 않았다.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뻘쭘하게 앉아있다고 온 경험들이 쌓이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싶지 않아졌다고 했다. 정말 축하받고 싶은 가족과 친구들만 모여서 식사를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삶 자체로 덜컹거림없이 이행하면 되는 거라고 했다.


그 마음은 금방 내 마음이 되었다. 우리는 가족들과 식사만 하는 작은 결혼식을 꿈꾸며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름 선방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네 명의 부모님들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를 설득했다. 나머지 한 명만 설득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정말 식사 한 번으로 결혼식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한 명, 나의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 이유는 납득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어머니가 내세운 이유는 “그래도 해야지.” 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 뒤 문장의 내용이 앞 문장을 양보한 사실과는 상관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속 부사 (표준대국어사전)


쉽게 말하면 ‘그래도’의 뜻은 이런 거다. 됐고, 그냥 해.


그래도 해야 하는 결혼식을 남들 다 하는 그대로는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아내는) 그래도 애를 많이 썼다.


(다음 화에 이어서…)



[커플북] 주말 부부는 그뭐냐, 그거다. 제주편 - 아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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