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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do Jun 09. 2024

방황을 멈추다

몸과 마음을 밀어내는 나날이 이어진다. 요즘 들어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 전 멈칫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20대, 그러니까 지금보다 젊었을 땐 삶의 이유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여행을 다녀야 하는 이유, 옷을 신경 써서 입어야 하는 이유, 피부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 등 다양한 이유가 삶을 지탱했다.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길이 나타났고 길 위에 서면 사람이 나타났다. 세월이 흐르는 게 무서웠지만 여러가지에 둘러싸여 허우적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유부남이다.


지난 날 삶의 고비를 겪으면서 초라해질 때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라고 격려했다. 부모의 부족함을 알아차렸을 때나 더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앞에서 작아질 때마다 신에게 긍휼을 구하고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사실 그동안 칭찬할 일도 많았다. 어려서 좋아했던 일을 직업으로 삼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대학 진학과 취업, 결혼까지 이어지는 실체 없는 의무를 나름대로 충실히 이행했다. 그 대가로 더 이상 불안하게 방황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얻었다.


신기하게도 방황을 끝내자 더 이상 길과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주변 장면들이 바뀌지 않는다. 이유가 없으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전에 안 해본 일은 하지 않는다. 삶이 정형화된 틀 속에 박힌 기분이다. 제자리에 머물러도 삶이 극단적으로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은 생겼지만 안정감에 젖어 삶을 앞으로 끌고 나갈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이 사라진 느낌이다.


삶을 지탱하던 이유가 사라지자 자연스레 관성을 따른다. 이유 없이도 시간을 내서 운동하고 주말에는 서울 근교라도 꼭 여행을 떠난다. 입고 갈 곳은 없어도 옷을 계속 산다. 30여년 간 만들어온 삶의 굴레를 벗긴 어렵다. 결혼한 지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삶의 목표를 다시 세우고 계획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 젊은 날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 이후를 생각할 때지만 아직 명확한 비전은 찾지 못했다. 전처럼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제 챙겨야 할 사람이 있다. 


올해가 벌써 절반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런 고민이다. 그 흔한 신년 계획도 세우지 않고 담담하게 시작한 해다. 올해 남은 기간 삶을 지탱해 줄 새로운 이유를 찾으며 주변을 정돈하고 또 정돈해야겠다. 그게 안되면 어렸을 때처럼 다시 종교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 2024년 6월 어느 주말 내면의 이야기를 힘겹게 밀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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