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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do Mar 23. 2024

SNS를 지웠다

몇 년 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힘을 얻었다. 외로움이 사무치던 저녁,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던 여름 날. 가진 게 별로 없기에 사람에 기댔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가진 에너지를 내 것인 양 속였고 남의 행복이 내 행복이라 믿었다. 외롭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바쁘게 살았다. 매일 밤 술자리에 나갔고 주말이면 전국에 있는 산을 오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자신을 소진시키는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기껏해야 2~3년 정도 유지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무엇보다 그런 삶을 지속할만한 동기가 없었다. 매번 같이 갈 사람을 찾아야 했고 취향과 성향이 맞는 사람을 구해야 했다. 외로움을 잊고자 했던 행동들은 결국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바깥 생활에 지친 나는 가만히 앉아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밤새 실내악 연주를 들었고 주말에는 책을 2~3권씩 읽었다.


결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이끌려 다니기 싫어서였다. 외로움이 괴롭진 않았으나 행복은 외롭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한 뒤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이별한 점이다. 연애 때 느꼈던 불안감이 사라진 자리에 언제 어디서나 함께한다는 안정감이 자리잡았다. 생각의 회로는 지극히 단순해졌다. 누구랑 밥을 먹을지, 주말에 뭐할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결혼한 지 3개월이 지난 날 휴대폰에서 모든 SNS 앱을 지웠다. SNS를 했던 이유는 취향을 알리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사람의 취향을 엿보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함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외로움이 사라진 삶에는 관계로부터의 자유가 찾아왔다.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 쓸 수 있게 됐다. 결혼 후 삶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결혼을 하자 사람들이 자꾸 행복하냐고 묻는다. 솔직히 결혼 전후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았다. 똑같이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운동하고 잠에 든다. 주말이면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청소나 빨래같은 집안일도 똑같다.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불행해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심연에 빠지더라도 이제 건저내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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