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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do May 05. 2024

내가 웨딩 촬영을 하지 않은 이유

언제부턴가 결혼할 때 웨딩 촬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발단은 결혼식에 어디까지 초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직업상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어디까지 초대해야 하는지 감이 서질 않았다. 생각을 거듭하다 결혼식은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것보다 정말 내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기뻐해줄 만한 사람들만 부르고 싶었다. 이후 보여주기 위한 것들을 하나씩 없애다 보니 웨딩 촬영이야말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인생 선배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주로 남성들에게 질문했다. 하나같이 결혼 준비 기간으로 되돌아간다면 웨딩 촬영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만큼 힘든 일도 없을 뿐더러 그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비싼 돈 들여 사진을 찍고 인화해 액자까지 만들어도 집에 걸어놨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웨딩 촬영 앨범을 열어보지도 않았다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럴거면 왜 비싼 돈을 들여 웨딩 촬영을 하나 싶었다.


애인에게 웨딩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의외로(?) 흔쾌히 동의해줬다. 그녀도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자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웨딩 촬영 대신 셀프 촬영을 하기로 했다. 결혼 준비 기간이 1년인 만큼 4계절을 테마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엔 녹음, 가을엔 단풍, 겨울엔 따뜻함이 콘셉트였다.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기도 했고 현업 경험도 있었기에 셀프 촬영에도 자신이 있었다. 틀에 박힌 웨딩 사진이 아닌 우리만의 개성넘치는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했다.


셀프 촬영은 생각보다 고생스러웠다. 여자와 함께 사진을 찍어본 적 없었기에 그 힘듬을 예상치 못했다. 양복 한 벌 가져가서 입고 찍으면 그만인 남자와 달리 여자는 새벽부터 메이크업과 헤어 디자인을 해야 했다. 이동하는 것도 고역이었고 현장에서 손보는 일도 어려웠다. 서울에서는 사람이 많이 도저히 찍을 수 없어서 촬영할 때마다 지방으로 갔다. 강원도에도 갔고 일본으로도 갔다. 셀프 촬영을 하면서 왜 사람들이 돈내고 사진을 찍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셀프 촬영을 마쳤다. 그래도 모바일 청첩장 메인에 걸 사진이 필요해 마지막에는 실내 스튜디오를 대여해 촬영했다. 모바일 청첩장까지 직접 만들어 주위에 배포하자 생전 처음 보는 청첩장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게 사진은 전부 투박한데다 메인 사진은 스마트폰 어플로 만들었으니 다들 처음 보는 게 당연했다. 신기하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셀프로 촬영했다고 하자 굉장히 훌륭하다는 칭찬이 돌아왔다.


셀프 촬영의 가장 큰 장점은 즐거운 추억이 남는다는 점이다. 남자들이 술만 마시면 군대 얘기를 재밌게 하듯 셀프 촬영을 하며 고생한 일은 부부의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도 둘이 어색하게 서서 셔터 타이머가 지나길 기다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남들은 전부 힘들었다고 기억하는 웨딩 촬영을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셀프 촬영의 가장 큰 장점이다. 스튜디오 촬영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고 훨씬 고생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밤에 술잔을 기울이며 그 때를 추억한다.


한가지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에 대해서다. 웨딩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가장 반대한 건 엄마였다. 지인들에게 보여줄 사진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짧은 생각에 결혼을 너무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했다. 웨딩 사진은 부모님에게 있어 '우리 자식이 이렇게 잘 컸어요'라고 자랑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평생을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부모님이 남들에게 가장 자랑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개인적인 이유로 빼앗았던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결국에는 내 편을 들어주셨지만 지금도 많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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