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거북이

작업의 순수성, 작품의 순수성을 잃었는가?

어제의 기록 마지막이 ‘나는 신이어야 한다’였다. 이 무슨 자신감이었던가. 오늘 아침은 일단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작업을 그리 치열하게 한 것도 아니고 아이가 지쳐 쓰러질 만큼 열정적으로 놀아 준 것도 아닌데 자고 일어나니 허리 통증이 심하다. 너저분하게 깔린 일들도 산적해 있다. 이제 날이 쌀쌀해져 해가 지면 보일러를 돌려야 하는데 겨우 그걸로 마음이 작아진다. 마음의 부침이 이렇게 심할 바에 차라리 자아도취라도 있었다면 좋을 뻔했다.


뭐 그렇더라도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치우치지 않게 생각하고 현재를 충실히 느끼고 싶다. 생각보다는 느낌에 열려 있고, 그 느낌을 올바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나보다 더 잘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감탄한다. 에너지를 느끼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물론 아직은 편한 사람 앞에서만 그렇게 행동하지만, 아이에게 배우는 게 많다.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고 몸을 부대끼는 것도 거칠다. 안아주는 게 아니라 움켜쥐는 것 같다. 몸에 너무 힘을 주고 살아서 그런가. 기지개를 켜니 온몸이 뚜두둑거린다. 몸이 잔뜩 경직되어 있다.



3D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면 현실 세계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만들어 둔 작품들을 하드 케이스 하나에 담으면 그만이니, 쌓여 가는 작품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차후에 작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고, 다시 꺼내서 활용하기도 적절해 보인다. 크기를 조절해 구현할 수 있다. 추후 디벨롭이 가능하다. 이런 이점들을 생각하다 지브러쉬라는 3D프로그램을 배우기로 했다.


흙으로 하는 작업은 재미있지만 캐스팅이 고되고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을 매번 반복해야 한다. 요새는 좀 벗어나고 싶다. 무엇보다 다음 날 온몸이 굳어버린다. 3D는 이런 면에서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마음 한편에 영악한 길을 선택하려는 것은 아닌지 찜찜함은 있다.


작업의 순수성, 작품의 순수성을 잃은 작가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내가 작품을 만들며 이루고자 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돈, 명성, 자기실현. 아마 모든 것이겠지. 혹시 이제 와 작품을 통해서는 이중 어느 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회의가 밀려와 다른 해결 방안을 찾는 건 아닌지. 하지만 어쨌건 무언가 바꾸려 한다면 현실의 문제점부터 인식해야 한다.


요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또다시 습관에 젖어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작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어떨 때 작품의 영감이 떠오르는 걸까? 넓은 수영장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는 작은 거북이 같다.


신의 바람, 2019.




글/작품 안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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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은 조각가로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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