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세상에서 오랫동안 바라볼 가치가 있는 것을 만든다
생각해보면 늘 뒤로 미뤄두는 일이 많았다. 급하지 않아서, 생활에 지장이 없어서, 그러니까, 돈이 되지 않아서. 다음으로 미뤄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일들이었으나, 해야겠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일들이기도 했다.
어떤 풀들은 꽃의 숫자만큼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열매가 크게 자라지는 않는다. 풀은 줄기를 말려 열매를 선발한다. 뭐 그렇다고 말라죽은 꽃과 열매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세상은 무언가를 주의 깊게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와중에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런 작품을 지속적으로만들어 내는 이유는, 한눈에 볼 수 있는 건 바라볼 가치가 그만큼 적다는 생각 때문이다. 바라볼 가치가 있는 것은 깊이 있게 오래 바라봐야 보인다.
사람을 깊이 바라보는 일, 오래 바라보는 일, 현상을 깊이 바라보는 일, 일상을 깊이 바라보는 일. 무언가를 깊이 바라보고 포착했다고 하지만 나중에 가면 오해였던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게 된다. 내가 이런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충분히 느리고 깊이 있게 살았던가?
하지만 내 삶의 태도를 더욱더 의심스럽게 하는 질문은 그게 아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작품만 만들면서 모든 사람에게 외면을 받아도, 정말로 상관없는 건가? 여백과 그림자를 작품 소재로 선택한 건 쉽게 스치고 지나갈 하찮은 것들을 귀하게 바라보자는 의미였다. 모든 게 볼수록 하찮지 않았다.
요즘의 날들만 봐도 그렇다. 인류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생활의 자세들이 커다란 폐단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의 가장 무거운 여백은 코로나다. 어떤 여백이든 가벼이 여기면 훗날 두려운 여백이 되어 돌아온다.
글/작품 안경진
안경진은 조각가로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