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아이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던 것들이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 그땐 왜 그렇게 소변이 자주 마려웠는지 모르겠다. 쉬는 시간에 분명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수업 시간에 또 오줌이 마려운 것이다.


“선생님 화장실 좀 다녀올 게요”


화장실에 갔다 왔지만 다음 시간이면 또 오줌이 마려웠다. 한번은 선생님이 버럭 화를 내며 “야, 넌 왜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안 가고 수업시간마다 이래? 가지 마!” 하고 소리쳤다.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 2~30분가량 끙끙거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오줌을 참았다가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가면서 옆자리 친구도 밀치고 책상에 걸려 있던 가방도 떨어뜨리고, 조금 소란을 피웠다.


“야, 안경진! 너 앞으로 나와서 손 들고 서 있어!”


그 순간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선생님이 불러 세우더라도 급한 일부터 해치웠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칠판 앞에서 손을 들고 서 있는데, 맨 앞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자기 짝한테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쟤 왜 손 들고 있어? 오줌 싸서 그런 거야?”


창피함, 수치심. 그날 이후 학교에 가기 싫었다.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한테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학교에 가긴 했다.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반에서 꼴등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내내 우울했다.


나는 30대 후반에 결혼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직업이 조각가다 보니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나서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작품으로 먹고살 수 없었고, 오히려 작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였다.


신혼집으로 가져갈 것들과 그냥 둘 것들, 버려야 할 물건들을 정리하며 본가의 짐을 추스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위문편지를 발견했다. 보내지 못한 편지였다.


“아저씨 저는 나중에 커서 조각가가 될 거예요.”


거기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꼼짝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우울한 시절, 나는 조각가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고, 오랫동안 내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꿈은 20년 뒤의 내 모습을 결정했다. 그 꿈 덕에 지금껏 살고 있다.


과거에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던 것들이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림자나 여백에 주목하게 된 것이나 인간의 내면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조용히 꿈을 키워 가던 그림자 같은 아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Life 2, 2020


<여백의 무게> 브런치북 출간 전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각가의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 <여백의 무게>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본문에 실린 모든 작품은 안경진 조각가의 작품이며,
사진은 김민곤 @ MoGI Photo Studio에서 작업하였습니다.




글/작품 안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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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은 조각가로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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