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건 작가에게 좋은 것이다
‘바라보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봄’을 떠올렸다. ‘바라보다’와 비슷한 형태의 작품으로 시간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인생의 봄을 의미하기도 하고, 삶에 눈을 뜨는 시간, ‘보다’의 확장된 의미로서 ‘눈을 뜨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life’의 포지티브 버전을 완성하고 나면, ‘봄’을 만들 것이다.
‘life’는 실루엣이 아이에서 젊은이로, 젊은이에서 노인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에 사람의 실루엣을 얹은 게 아니라 시선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했고, 그로써 인간과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빛이 없어도 변화를 알 수 있는 작품이고, 핵심은 여백에 들어앉은 형상이 변화하는 것이다. 시행착오가 계속됐고 수없이 떼고 붙이고를 반복했다. 다시 새로운 작업방식을 찾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전 작품 얼개는 대략 꾸렸다.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고, 내 삶의 지향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다. 시련 같은 인생이지만 소중한 꿈을 가슴에 품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한 사람의 일생을 하나의 작품 속에, 하나의 순간에 담아내는 것. 거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내면의 궁극을 추구하는 것. 춤추는 삶과 같은 인생.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사랑을 이야기해도 좋겠다.
어제는 아내가 이번 작품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간 사실들,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간 미술의 재료가 되지 못했던 그림자와 여백, 공간의 구석 같은 것들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선택하여, 우리 시대의 물질적인 질주에 반해 중앙에 편입되길 반대하는, 비물질적인 가치, 궁극에는 중심도 구석도 모두 다 소중함을 표현해 보고 싶다.
나이 든다는 건 작가에게 좋은 것이다. 삶의 퇴적물이 쌓일수록 표현이 풍부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젊은 시절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으나, 지금은 어떤 것을 먼저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그만큼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골라 써도 될 만큼 소재가 많아졌기에 예전보다 좋은 작품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의 호기심과 설렘이 점점 떨어져 가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을 마치 처음 보는 듯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잃지 않을 것. 어지간한 일엔 감동을 받지 않는 흐리멍덩한 마음도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공간, 음악, 음식, 사람, 배움. 외부에 무감각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 그런 자세를 계속 추구하며 늘 주의 깊게 볼 것. 생의 마지막 순간, 찰나로 기억될 인생이 춤을 춘 듯 경이롭기를.
글/작품 안경진
안경진은 조각가로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