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캠핑카 연대기: 놀이하는 인간의 탄생
이제 나의 캠핑카에 대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캠핑카를 2013년 겨울에 소유하게 되었다.
소유의 동기라면 캠핑에 빠져있던 차에 아이들이 크면서 더 넓은 곳을 다니고 싶어 졌다. 텐트만의 감성이 있다. 그러나 텐트가 가진 불편함도 있다. 가장 큰 불편함은 이동을 못한다는 점이다. 숲 속에서 텐트를 치고, 해먹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산책과 해먹에서 책을 읽거나 밤이 되면 고기를 굽는 일이다! 물론 그 일도 즐겁다. 그런데 점점 일주일을 한 곳에 있는다고 가정해도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더라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단조로움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액티브 한 활동을 좋아하는 나는 텐트를 치고 여느 레저활동을 즐기고 싶었다. 주변 관광도 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아이들과 텐트를 들고 치면서 망치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텐트를 치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에어매트리스에 바람을 넣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시간은 저녁때가 되었고,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저녁을 먹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그대로 몰려왔다. 이건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다. 이뿐이랴 다음날은 월요일 출근이 있으니 그 힘들게 친 텐트를 걷어야 했다. 다음 캠핑을 위해 장비를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가 오면 더 최악이다. 그 힘들게 정리한 것을 베란다에 널어 말려야 했다.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점점 장비는 많아졌고 우리 집 베란다는 캠핑 용품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야.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하는 인간을 설명한다. 놀이는 뭘까? 잘 논다는 것은 뭐지?
놀이는 단지 '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놀이에는 인류의 문화가 들어있는데 '호모 파베르', 즉 도구를 사용하여 일하는 인간과는 구별된다. 나는 텐트를 치고 걷는 것이 어느 날 노동처럼 느껴졌다. 분명 잘 놀고 싶어서 캠핑을 나왔는데 고도로 전문화된 자본주의 하에 최대 이윤 추구를 목표로 근대사회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던 호모 파베르가 텐트를 치고 걷는 내 행위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되는 느낌이었다. 난 분명 놀려고 이것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캠핑은 노동이 되어있었다. 가족의 만족을 위해 텐트를 걷고 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더 많은 장비들이 필요했고, 캠핑장 내의 보이지 않는 장비 경쟁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좋은 사이트를 확보하고 엇비슷한 텐트들이 캠핑장 내에 들어서 있는 것 같지만 실로 그곳은 장비 전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캠핑 용품은 고가의 물건들이 많다. 또한 브랜드에 따라 캠핑계의 명품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경쟁 아닌 경쟁을 치르고 난 주말의 캠핑은 주중에 내가 받은 노동과 결이 다를 뿐 본질은 엇비슷하게 느껴졌다.
놀이는 자발적인 행위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결코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놀이는 언제라도 미루거나 그만둘 수 있다. 육체적 필요나 도덕적 의무에 의해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의무로 수행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자유 시간에 한가롭게 할 수 있는 행위다.
-호모 루덴스, 하위징아 (이형빈 글에서 옮김)
나에게 캠핑은 놀이일까? 아님 강요된 노동 일까? 생각해보면 여유와 자유로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이의 본질이 캠핑을 하는 나의 모습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캠핑장이라는 다닥다닥 붙은 캠핑장의 제한된 공간과 타인과 엇비슷한 장비들, 비슷한 캠핑요리(고기 굽기)는 주말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남들이 캠핑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행위들을 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고 거기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이번 주만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캠핑의 문화 속에서는 계속해서 주말마다 비슷한 일정들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원하던 캠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내가 구축한 캠핑이란 세계는 나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담은 나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어떤 공간을 꿈꾸는 것이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의 특징인 열광, 한가로움, 무목적성이 내 캠핑을 통해 고스란히 담기길 원했다. 무위(無爲)를 위함. 내가 꿈꾸는 건 놀이였는데...
그 당시 국내 캠핑카 시장은 말 그대로 불모지였다. 제조업체도 몇 없었고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모델도 없었다. 박람회를 다니며 제한된 상품을 보러 다녔고, 유튜브를 통해 제조업체에서 올린 홍보용 영상을 보면서 캠핑카를 갖기 위한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강원도 원주시)에 괜찮은 업체가 보였다. k-1 캠핑카라는 제조업체인데 봉고(포터)를 기반으로 업무용 자동차를 완제품으로 제작하는 업체였다. 이곳도 여느 업체와 마찬가지로 보트를 생산하다 캠핑카 제작에 뛰어든 업체다.
나는 애초부터 카라반은 고려하지 않았다. 주차도 불편하지만 여기저기 이동을 많이 하고 싶은 목적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지역 이동을 하면서 보고 싶은 곳들을 관광하고 싶었다. 그래서 완제품을 만드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가까운 곳에 제조업체가 있었으니 얼마나 반갑던지! 공장을 둘러보고 구조 변경을 위한 몇 가지 협의 후 캠핑카를 구입했다.
처음 캠핑카를 구매할 때 실수하는 부분은 용도와 취향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용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캠퍼의 사용 목적에 따라 일반적인 용도와 개인별 취향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렇게 구매한 캠핑카는 오래도록 불편함과 아쉬움이 크지 않을 것이다.
1. 일반적인 용도에 맞는가?
일반적인 용도라 하면 난방은 되는지, 온수는 나오는지, 필수품 수납은 좋은지 등이다. 부부의 경우, 여기서 가장 주된 이용자는 남성과 여성 중 여성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난방과 온수, 그리고 주방과 욕실의 편리성과 실용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 개인별 취향에 맞는가?
일반적인 용도가 충족되었다면 다음은 개인별 취향이라 할 수 있다. 부부의 경우, 여기서 가장 주된 이용자는 남성과 여성중 남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낚싯대, 자전거, 서핑보드, 오토바이, 스쿠버 장비, 사진 촬영장비 등의 수납과 거치대, 장박을 한다면 세탁기, 동절기에 이용이 많다면 결로와 각종 배관의 단열 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3. 그 외 비용은 적절한가? 혹은 AS는 잘 되는가 등등..?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1,2 두 가지는 꼭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될 부분이다. 나의 경험상 캠핑카 구매는 5년마다 위기가 온다. 이유는 1,2 두 가지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10년은 무난하게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위의 유의점에 일반적인 구매 유의점에 관한 첨언을 조금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캠핑카는 사용자에 따라 사용현황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매일 사용하는 사람과 두 달에 한번 사용하는 사람 등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제품이므로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캠핑카 구매에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스스로 통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용도에 맞는 캠핑카를 만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을 좋아하는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지, 레저활동을 좋아하는지, 요리를 좋아하는지.... 등등 테스 형이 말한 '너 자신을 알라'가 중요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면 감성캠핑, 레저를 좋아한다면 수납과 편의시설을 고려할 것이며, 쉼이 목적이라면 무엇보다 안락한 캠핑카를 찾아야 한다. 즉, 캠핑카란 제품의 기능과 용도는 소유자의 이용 목적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며 목적에 따라 위에 언급된 1,2를 균형 있게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게 캠핑은 레저였고, 아내에게 캠핑은 관광이었다. 나는 캠핑카를 세우고 서핑을 하거나 카약을 타거나 낚시를 해야 했고, 아내는 주변 관광지를 둘러봐야 했다. 따라서 이 둘의 목적을 충족시키기에는 이동이 빠르고 정돈된 캠핑장이 아니어도 주차가 편한 캠핑카가 필요했다.
둘째, 비용 문제다. 이는 초기 구입 시에만 고민하는 부분이다. 비용 문제는 개개인의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무어라 조언할 수 없다. 4인 가족인 우리 가족에게 적절한 것은 고가의 수입제품이 아니었다. 그럴 형편이 못된다. 1억이 넘는 돈을 투자하기엔 부담이었다. 그래서 포터를 기반한 캠핑카를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캠핑카가 아니라 업무용 자동차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캠핑카가 비좁지만 그래도 7년째 잘 굴러가고 있다.
셋째, 캠핑카 고장 시 수리 문제이다. 캠핑카의 기반은 자동차이므로 고장 시 현대, 기아 등 상용차로 들어가면 된다. 다만 캠핑카는 작은 원룸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가구로 꽉 채워져 있다. 가구의 고장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동절기 월동 문제로 난방용 호스 혹은 수도꼭지의 동파가 자주 일어난다. 그 외는 타이어라 할 수 있다. 무거운 중량을 싣고 움직이는 제품이므로 첫 출고된 신차는 2만 km에 교체를 권한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는 관리상 부지런함을 캠핑카 소유자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적인 자동차가 갖는 수리와 고장에 대한 문제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도록 캠핑카를 제작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포함된다. 나는 배를 싣기 위해 지붕에 캐리어를 설치했다. 자전거는 3대를 싣도록 캐리어를 설치했고, 외부 샤워시설을 설치해 모래를 털거나 수월하도록 개선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만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긴 캠핑카가 되었다.
나는 이런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조나 수리 공장이 멀다면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캠핑카는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지 내 삶이 캠핑카가 만들어진 대로 맞춰 굴러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캠핑에 대한 나만의 질서를 만들고 캠핑카는 이런 나만의 질서를 담아내는 도구니까. 아니 엄밀히 우리 가족의 삶을 담는 그릇이니까.
캠핑카.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상상을 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자연을 만지고 느낀다. 누가 시켰다면 이것이 가능했겠는가? 또는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해서 모방했다면 이런 재미가 있었겠는가 싶다. 나의 캠핑카 연대기는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