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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이 Oct 23. 2020

낯선 추석, 욕지섬에 가다.

나의 캠핑카 연대기 : 귀향의 본능을 자극하는 섬, 욕지섬


나에게 섬은 낯설기 그지없다. 그런데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이렇게라도 찾아가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만 같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공포와 더 힘겨워진 일상 때문이라 쉽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내 감정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일상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는 탈출구 그곳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욕지섬을 꿈꾸듯 찾아간다.


#섬, 나그네에겐 늘 동경이었다. 

욕지섬으로 가는 캠핑카

뭇사람이라면 한 번쯤 부푼 로망을 갖고 섬을 찾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지금 그런 심정으로 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객선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에 바람이 든다. 여객선을 타기 위해 승객은 길게 줄을 만들고 먹거리를 팔기 위해 늘어선 가게들과 여객선의 엔진 소리 그리고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소음들로 여객선 대합실에 서있는 나그네 가슴은 여행이란 풍미를 맛이 아닌 온몸으로 느끼 쿵쾅대며 뛰기 시작한다. 뒤처지지 않게 여객선에 오르고 잠시 뒤 천천히 움직이는 배를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 말 "이제 출발해볼까!"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 싶어, 주변을 비쭉거리며 본다. 이럴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면 민망하기 짝이 없을텐데.. 걱정하며 두리번 “역시 아무도 듣지 못했구나! 안도감이 드는 사이에 여객선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후미에선 새하얀 물거품으로 바닷길의 흔적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은 욕지도로 간다"


강원도에서 통영시까지 장거리를 달려온 터라 우리 가족은 지쳐있었고 일지감치 아내와 두 아이는 2층 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두어 번 제주도를 다녀온 것이 남해안 섬 여행 전부였던 나는 다도해를 오롯이 느끼고 싶어 갑판 위 3층에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다도해는 자갈을 뿌려 놓은 듯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얘기를 기억하고 있던 터라 기대는 한껏 되었으나 상상이 잘 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자란 곳은 동해안 바닷가이고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섬은 고작 한,두 개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아무리 많아도 다섯 개, 열개 이상의 섬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바다는 아무런 저항 없이 잔잔하였고 여객선은 힘 들이지 않고 미끄러지듯 통영항 방파제를 작에 으나 슴에 바람이든 나그네는 무엇에 정신을 팔고 있었는지 알아지 못한다. 바다는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 흐르듯 고요했고 지나가는 갈매기 한 마리가 늦은 여름 9월 통영 앞바다를 넋놓고 바라보 나그네 가슴에 쓸쓸한 흔적을 할퀴듯 남기고 여객선 선미를 낮게 가로질러 지나간다. 제는 왜 혼자 가! 다른 친구들은 어디에 있나! 이런, 저런 생각들로 용한 통영바다에 생각 잠시 멈추었 지나가는 갈매기를 따라 초점 없이 시선을 옮기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스치듯 지나가는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앗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갈매기가 아니고 남도 바다를 수놓듯 늘어선 섬들이었지! 생각이 퍼뜩 드는 순간 눈동자의 초점은 지나가는 섬들을 찾아 빠르게 요동친후 고정되었다. 순간 눈도, 머리도 멈칫한다. 보기 전까지 상상하기 힘들었던 다도해를 만났다.

한려수도 비경위로 펼쳐지는 모노레일을 따라 보이는 다도해의 풍경

바로 눈앞에서 지나치듯 섬을 보내면 그 뒤에 바쁘게 따라가는 섬, 꼬리는 물고 한 개, 두 개...  대여섯개, 말 그대로 섬들로 즐비한 바다. 자갈을 뿌려 놓은 다도해를 보며 난생처음이란 어색한 표현 이럴 때를 두고 쓰는구나 싶 놀라움이  나그네 두 눈과 가슴으로  크고 작은 섬, 길쭉하막한 섬이 파고 들어왔다.

몇 개의 섬을 지나쳤는지 세지 못한 아쉬움을 마음 한구석에 남기고 다도해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는 동안 우리는 욕지섬에 닿았다.

욕지도에서 본 풍경


# 일주도로, 마을 위로 자동차는 달린다.


나는 섬을 잘 모른다. 섬 없었기에 그런지 늘 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섬들 중 욕지도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주도로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욕지섬 여행을 결정하기까지 정보의 바다에서 나름 열심히 웹서핑을 하였으나 욕지섬 일주도로를 보는 순간, 정보검색을 멈춘다. 그리고 욕지에 대하여 찾아보기 시작한다. 섬을 찾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내가 섬을 찾는 기준은 이렇다. 가장 우선하는 것은 일주도로가 있느냐? 였고 다음은 공중화장실은 많은가? 였으며 다음은 깨끗한 바다였고 끝으로 캠핑이 가능한지?를 순서로 찾아보았다. 그 외에도 낚시, 맛집, 볼거리 등이 있는데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내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일주도로가 마을 위에 나아져 있고, 자동차는 섬의 중턱을 시원하게 달린다."


욕지도에 닿는 순간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내달린다. 도로를 따라 펼쳐진 바다가 우리를 반기는 것 같다. 시원한 바다. 일단 섬 전체를 돌아보고 캠핑할 장소를 찾기로 한다. 잠시 언덕이 시작되고 계속 오르막이다. 10여분 도로를 따라 올랐는데 섬 중턱까지 올랐다. 그렇게 섬 전체를 둘러보는 동안 일주도로는 해안선으로 내려가질 않고 섬 중턱을 가로질러 계속되었 욕지항에 다 달아서야 해안선으로 내려간다. 그 덕에 섬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이다. 아침 일출과 저녁 석양을 도로를 따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각에 따라 햇볕에 따라 그리도 구름에 따라 재각각 다르게 연출되는 풍경은 바다를 자주 찾는 나에게도 새로움과 신비함을 선사한다.

드라이브로 멋진 바닷 풍경소리를 귀가 아니 눈에 담고 싶다면 저녁 무렵 붉낙조로 가을바다를 물드린 욕지도 일주도로를 강추한다. 다만 일주도로를 따라 멋진 해변이라도 만난다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그렇게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이다.


#섬, 덕동 해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섬에 가서 뭐하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말이다.

섬에 놀러 가는 사람들을 TV에서 볼 때마다 습관처럼 튀어나왔던 말, 내가 쓰던 말이다. 그런 말을 쓰던 내가 올해 들어서 두 번째로 찾은 섬이 욕지섬이다. 욕지섬 여행을 결정하고 아들이 나와 똑같이 묻는다. 아빠, 섬에 가서 뭐할 거야? 내가 쓰던 말을 아이에게 들으니 그 말이 왜 그렇게 낯설게만 느껴지던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들 질문에 잠깐 할 말을 잃는다. 궁여지책으로 대답하기를...

섬에 가면 일단 낚시를 해야지. 참돔 잡고, 돌돔 잡고, 부시리도 잡고 그런 다음 밤엔 해루질해서 소라, 전복을 잡아야겠지. 그렇게 대답을 하고 나니 아이는 관심 없다는 둥 대꾸 없이 자기 방으로 그냥 들어간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성의 없는 댓꾸를 했나! 싶다. 사실 내가 한 말이지만 나 자신도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참고로 캠핑을 가면 남들처럼 낚시하는 시늉만 낼뿐 무엇을 잡겠다는 집념이랄까? 그런 게 별로 없는 나였기에 상당히 오랫동안 캠핑을 다니며 낚시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녀석들을 낚시로 잡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상 무계획으로 욕지도를 찾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덕동 해수욕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욕지항에 도착한 후 섬 일주한 끝에 우리가 캠핑할 장소로 덕동 해수욕장이 결정되었다. 섬, 중턱에 나있는 일주 도로를 따라 20분가량 달려 덕동 해수욕장에 길을 잡는다. 덕동 해변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저녁 6시경이다. 이미 이곳은 낚시를 하기 위해 차박 텐트를 치고 저녁 피딩 타임을 기다리는 조사들로 덕동 해수욕장 방파제는 붐비고 있었다. 작은 섬에 차박용 캠퍼가 이렇게 많을 줄 직접 보기 전까지 상상하지 못했다.


"섬, 작고 한적한 항구에 홀연 듯 떠있는 작은 배 한 척이 나그네의 두 눈에 들어오고 바닷가에 일렁이며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외로움을 달래주러 찾아온 스산한 바람과 더불어 나그네의 귓가에 맴도니, 사람이 찾지 않는 텅 빈 작은 항구는 사람이 그리울 만큼 한적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나그네의 상상은 덧없이 무너졌다."    


이 섬을 처음 찾은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덕동항 해변가는 우리 자리를 만들기에 넉넉함이 있었고 차박 캠퍼들과 거리를 두고 캠핑카를 세운 후 어닝과 테이블 등 분주하게 자리를 준비하던 사이 해는 기울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하나, 두~울.. 켜지는 가로등 불빛을 느끼며 그렇게 섬에서 첫째 날을 보내고 있을즈음 하나둘씩 차박 캠퍼들이 떠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처음 왔을 때와 상황이 반전되어 덕동 해수욕장은 몽돌에 부서지는 작은 파도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고 해변가 주변은 한적해졌다. 그들이 떠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주변은 고요할 뿐 누구에게 물을 처지가 않니다.


"왜 모두가 떠난 것일까?"


그 해답을 공중화장실에서 찾았다. 장거리 운전한 탓에 피곤함이 몰려 올 시간이다. 잘 준비를 마치고 공중화장실을 갔다. 그곳에서 지역주민을 만났고 인사를 나누었다. 기를 나누다 보니 근처 섬에 개 두 마리와 나 홀로 살고 있는 분으로 해수욕장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분은 주민들로부터 임대를 받아서 운영사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시작로 본인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3년 전 은퇴를 하고 섬으로 귀를 했고 해수욕장관리와 숙박 임대에 대하여 한참을 얘기해 주었다. 들려준 얘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캠핑을 다니면 안 되는 사람이 있더라.
해수욕장 임대사업을 하고 있지만 수익보다는 지출이 크다. 이유는 공중화장실 전기료 때문이다.
경치 좋은 곳에 잘 놀고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가는 사람이 아직 많다.
태풍 때 바다 쓰레기가 곳곳에 쌓이고 치우기를 반복하지만 힘이 많이 든다.


그렇게 한 시간이 되어갈 무렵, 공중화장실에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되었는지 딸아이와 아내가 번갈아 나를 찾아 공중화장실을 다녀간다. 이야기 끝나갈 무렵 왜 조사들이 낚시하다 말고 모두 떠나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낚시가 잘 안된다고 한다. 참다랑어를 인공 양식하는 바다어장이 있지만 참돔 같은 양식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낚시는 참돔과 같은 양식장 근처가 좋다고 말을 덧붙여 준다. 결국 하루 종일 낚시하던 조사님들이 손맛을 보지 못하니 떠난다는 것을 그분의 이야기를 1시간가량 듣고 난 후 알게 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덕동 해변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추석이다. 늦은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처음 추도 예배를 드렸는데 그외에도 처음은 많았다. 추석에 섬에 들어간 것도 처음이고 추도 예배를 우리 가족만 드린 것도 처음이고 이를 섬에서 치른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니 오전 10시경이다. 이곳 덕동 해변은 아주 작은 항구이다. 낚시점도, 식당도 없다. 욕지항에서 지렁이를 구입해 오지 않았다면 낚시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낚시채비를 간단히 갖추고 방파제로 향한다. 어제 해수욕장 관리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 찌낚시는 접고 원투 낚시를 해보려고 한다. 바닥에 광어나 우럭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원투 대를 날렸다. 그로부터 1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그렇게 시간을 낚고 있는데 밥 먹고 낚시하란다. 막 포기하려고 했는데... 일단 밥 먹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1시가 넘어가고 있을 무렵 원투대는 그냥 두고 카약킹을 준비한다.

점심을 간단히 챙겨 먹고 아이들과 카약킹을 하려고 카약을 내리고 낚시도 챙겨서 바다로 나간다. 2시경에 출발해서 4시경에 들어왔는데 소득이 없다. 섬이라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이곳은 낚시가 안된다.  

모두 정리하고 저녁시간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 저녁을 준비한다. 그렇게 섬에서 두 번째 날,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한 마리도 낚지 못한 바다낚시


# 발아래 펼쳐진 백만 불짜리 경치들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물을 한 아름 받은 느낌이다. 섬 중턱으로 놓아져있는 일주도로는 그야말로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로 손색이 없을 듯싶다. 욕지항에 도착과 동시에 오롯이 섬을 느끼기 위해 지도에서 봤던 일주도로를 따라 달린다. 가장 먼저 일주도로를 따라 해안선을 즐기며 옛날 지명 좌부랑게였던 자부마을을 지나 한적한 해안선을 따라 흰작살해변방향으로 달리던 캠핑카는 언덕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고 흰작살해변 위를 지나가면서 운전석 너머로 들어오는 바다와 섬들로 아내와 난 준비 안된 감탄사를 날리는 사이 캠핑카는 오르막 일주도로를 따라 섬 중턱까지 올라와 달리기 시작한다. 탁 트인 다도해의 시원한 바다, 한낮 내리쬐는 햇볕에 반사되는 물결은 일렁일 때마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 연실 반짝거리며 달리는 내내 핸들 너머로 펼쳐진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놀라며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보네. 싱글 벙글 얼굴엔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러던 사이 탁트인 도로 한곁에 차를 세운다.


" 발아래 깔린, 상노대도와 하노대도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많은 섬들이 장관을 이른다."


이곳은 대송마을 섬 중턱이다.

그곳에 차량 1대가 우리보다 먼저 감탄사를 날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맘껏 감탄사를 날리라는 듯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 같다. 차를 세우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우~와 대박! 저 멀리 통영까지 보일 것 같은 탁트인 바다, 가까이 보이는 상노대도와 하노대도 일 것으로 추정되는 섬들이 검푸른 바다와 햇볕으로 일렁이는 물결 사이를 가로막듯 떠있다. 끝까지 보일 것 같은 시원한 바다와 그림 같은 섬들이 나와 아내, 투덜 되던 두 아이의 눈과 가슴으로 파고든다. 기분 좋은 환호성이 주변을 채운다.

욕지도 출렁다리를 건너며

일몰시간에 찾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냥 주저앉았을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그러던 사이 다른 차량과 일행이 도착한다. 앞에서 다른 이가 그랬듯, 우리도 자리 비켜 준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감탄사를 날리라고...

섬 중턱에 있는 일주도로가 이런 매력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핸들 아래 소담한 작은 항구 도동 해변이 보이고 알 수 없는 둥근원 여러 개가 오륜기처럼 보이는 것이 바다에 떠있다. 거게 뭘까! 생각하다 보니

이내 작은 항구가 또 보인다. 저곳은 차량과 차박 텐트가 여럿 보인다. 바로 덕동 해수욕장인데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만난 마을은 유동해변이다. 이곳은 펜션도 많고 관광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상당해 보여서 마음과는 달리 내려가는 것을 포기한다.

삼여 전망대에서 만난 경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삼여도의 전설이 있는 이곳은 용왕의 세 딸과 이무기 총각의 전설을 간직한 채 삼여도가 눈에 들어온다. 삼여도 너머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저 멀리 출렁다리가 있는 펠리컨 바위가 보인다.

아쉽다. 이곳 일출 때 왔다면 아무래도 넋을 놓고 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새천년기념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을 갈 수 있다. 정상에서는 주변의 모든 섬이 내려다 보인다.

그곳을 내려와 노적 해변으로 가늘길에 만나 비렁길과 출렁다리는 명소 중에 명소라 할 수 있다. 노적과 혼곡 사이를 잇는 길을 비렁길이라 부르는 것 같다. 이유는 찾아보기로 하고 비렁길에서 출렁다리를 지나면 너른 큰 바위가 나오고 그 앞은 1000m 낭떠러지다. 낭떠러지 절벽의 끝으로 따라가면 절벽에 붙이치는 파도를 만난다. 이곳은 남태평양. 끝없는 바다가 펼쳐지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자부마을(좌부랑께)의 근대 어업의 흔적들


낯선 섬에서 낯선 추석을 보내고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의 끝에서 짐을 챙기는 시간에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것을 써야하는 글은 더 어렵다.)

덕동 해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곳에 정이 들고 떠날 때가 되어 짐을 챙떠나 시간은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된다. 그게 사람의 정인가 보다. 아쉬움의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사이 우리 가족은 욕지항 근처인 자부마을에 도착했다. 여객선은 다음날 아침 11시에 예약되어 있었다.

자부마을 근처에서 낚시를 할 예정이었고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해지기 전에 아내 자부마을을 둘러보자고 다.

자부마을의 전경

이곳 자부마을의 옛 지명은 좌부랑게로 불렸는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던 옛날 한국 어업 근대화를 이루었던 역사 깊은 곳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좌부랑게는 너무도 생소한 곳인지라 아무런 정보도 지식도 없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네이버신의 도움을 받아 낯선 곳의 자료를 찾아 좌부랑게의 정보, 이해를 넓히기 시작한다. 자료를 찾을수록 당시 좌부랑게가 어업 근대화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등 얼마나 대단했던 마을이었는지 실감 나기 시작한다.


"1970년대 한국 어업의 전진기지였고 어업 근대화 모델이 된 마을, 좌부랑게"

"당시 좌부랑게는 일본인도 거주했었다?"

"1915년경에 인구가 2만 명을 훌쩍넘어 3만 명 가까이 육박!"

 

좌부랑게의 역사를 보여주는 안방술집거리

 좌부랑게 마을은 고려시대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를 거쳐 조선초에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이주정책을 실시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었고, 조선말 1887년 고종 24년에 공식적으로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옛 지명은 녹도였으며 이름의 유례는 당시 숲이 우거지고 사슴이 많이 살아서 녹도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욕지도 인근에는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1895년~1900년대 초반에 소수의 일본인들이 정착해서 우리와 함께 살았을 정도로라고 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규모였을지 궁금해진다. 3면이 바다우리나라는 동해, 서해, 남해 어디 불문하고 당시 어족자원 풍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일본, 중국, 만주 등 지리적 특성이 좋았던 서, 남해안은 많은 지역에서 큰 전성기를 누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좌부랑게의 산업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좌부랑게를 대표할 수 있는 인구통계를 찾아보니 1915년 당시 인구는 소수의 일본인을 포함해서 2만 3천 명을 넘어 3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 후 한참 뒤 1973년 당시, 좌부랑게의 전성기를 지나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가구수는 1,400여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초등학생이 1,500여 명, 중학생이 450여 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당시의 통계는 잠시 머무르는 사람, 미취학 아동 그리고 당시 교육 수준 등 감안한다면 많은 수의 인구가 통계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통계방식의 한계, 힘든 삶을 살아가던 당시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실제 살았던 사람은 추정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작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세워졌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 좌부랑게는 국내 최초로 고등어 양식을 성공시켰다."


그러했던 욕지섬의 전성기는 서, 남해안 지역에서 호황을 누렸던 여타 지역 중 뒤처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하여 욕지섬 내항에서 고등어 양식을 하여 일본, 만주 등 지역으로 수출 하게 되면서 당시 남해안 어업의 전진기지로써 좌부랑게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1900년대 초 어촌의 근대화 모델이 되었던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전성기, 과거의 영광이 남긴 흔적들"


아내와 함께 자부마을을 걷는 40~50분 동안 그때의 인걸과 풍류는 찾을수 없지만 그들의 자취는 여러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흔적들은 나그네의 걸음을 불러 세우고 귀속말로 과거의 영광을 속삭이는 듯싶다.  

마을 입구, 들어서는 순간부터 과거로 빨려 들어 가듯 대표적인 흔적들이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보자. 술집이 즐비했을 명월관과 안방술집 골목 좁은 길을 따라 길게 늘어술집 골목. 그곳을 걷는 동안 이름에서부터 나의 상상을 자극하고 있었다. 좁은 길가 양쪽으로 즐비했던 선술집과 고급주점 등 술을 파는 상점들로 북적였을 좁은 골목길엔 술에 취해 싸우는 사람의 고함소리와 술값을 흥정하는 사람들로 떠들섞 했을 뿐 아니라 힘든 삶에 지쳐있던 토박이의 한숨과 나그네의 설움이 뒤엉켜 술과 흥에 취한 노랫소리 담장을 넘기고 누가 더 크게 부르나 핏대를 세워가며 불렀을 노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들로 골목을 나와 섬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을 것이다. 그렇게 안방술집 골목을 지나게 되면 만나게 되는 주재소는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 낸다. 술과 흥에 취해서 밤새도록 뒤엉켜 싸운 취객은 간밤에 있었던 사건사고를 잊은 채,  내가 왜! 주재소에 붙들려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렇게 상을 이어가던 중 당구장이 보인다. 1910년대에 당구장이라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는다. 밤샘 고기잡이로 잡은 돈을 내기 당구로 하룻밤에 털린 빈털터리는 복수를 다짐하듯 안방술집 골목에서 외상술을 퍼먹었을 것이다. 그랬던 거리에 이어 일본인이 살았던 판자촌지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등어를 염장했던 간독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소학교는 이제 돌아가는 배가 들어서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소학교로 보이는 학교 건물도 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가보진 못했지만 자부마을 근처에 우리에게 생소한 모밀잣밤나무 군락지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럭저럭 바쁘진 않았지만 부지런히 아내와 난 자부마을을 걷었고 마을을 빠져나올 때쯤 문뜩 "좌부랑게"가 뭐지? 물었다.

이곳의 옛 지명은 녹도에서 좌부랑게로 변했는데 좌부랑게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진다.

지명을 따로 찾아보질 않아 알 수는 없으나 난 이 말과 비슷한 사투리를 알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지역 사투리 일 것 같은데 사투리의 의미는 "무엇을 잡다" 란 의미의 명령어로 사용이다 그 말이 맞다면 무엇을 잡다는 말은 이곳이 어촌이었고 고등어가 풍부했으니 "고등어를 잡아라" 란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며 자부마을을 떠난다.


# 나그네, 섬과 하나 된 듯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다.


늦은 저녁, 자부마을을 둘러보고 저녁을 주변 식당에서 회덮밥과 고등어조림을 맛있게 먹고 낚시하러 간다. 연실 불가사리만 올라온다. 그렇게 늦은 저녁을 보내고 욕지섬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낚시와 함께 보낸 마지막 밤

다음날 아침, 주변이 소란스럽다. 여객선이 항구로 들어와서 관광객을 풀어놓은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들로 욕지 항구는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이고 섬은 생기를 찾는다. 우리 가족은 아침을 적당히 챙기고 고구마도 사고 떠날 짐을 주점 주섬 챙긴다.


섬을 찾을 때 답답했던 가슴은 탁 트인 듯 시원했고 하늘도 높고 날씨도 좋다.

자, 이곳의 우리가 왔던 흔적은 완전히 없애는 거야. 장난처럼 아이들에게 말하고 여객선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아쉬움이 쉬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난 돌아오는 시간 내내 3층 갑판 위에서 올 때와 같이 대도해에 떠있는 섬들을 보고 있었다.  


욕지섬 캠핑카 투어 Tip!
1. 캠핑카를 운전해 본 사람은 안다. 경사가 가파를수록 운전이 힘들다는 것을! 욕지섬은 일주도로가 섬 꼭대기에 위치해있다. 따라서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섬을 돌고 돌아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고 해도 내려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캠핑카로 무작정 내려가기보단 일단 먼저 사람이 내려 경사도와 길을 확인하고 내려갈 것을 추천한다. 잘못하단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욕지섬은 일주도로는 드라이브코스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달리던 차를 세울 용기만 있다면 그곳이 바로 포토존이다. 그러나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해안가로는 상당히 많이 내려가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2. 생각보다 낚시가 잘 되지 않는다.
 3. 1,2를 제외하고 일출과 일몰의 낙조를 추천한다.
욕지섬 모노레일을 타면서 받은 관광 안내도
섬을 품고 달리는 욕지섬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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