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에의 비유

정상이 뭐라고.

by 단정

인생을 종종 산을 오르는 데에 비교하곤 한다. 성공에 이르는 데에 있어서도 곧잘 정상에 비유한다. 삶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성공이란 부단한 노력과 경쟁, 그 끝에 자리한 높고도 좁은 꼭대기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내 인생을 그 비유에 껴두고 싶지 않다고 느끼고 만다. 지극히 일반적인 이 비유가 누구에게나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내 인생을 거기에 꽂아놓으면 내 것이 영 볼품이 없어져 버린다고 느끼는 거다. 아니 그치만 실제 내 인생은 그것보다는 낫거든?


산을 오른다는 생각 대신, 산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나의 하루와 또 하루, 그렇게 나의 온 생을 쏟아부어 단 하나의 산을 만들고 떠나는 거라면.


등산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산은 경주의 남산이다. 스물넷의 청춘들은 전날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여전히 주취 중에 산에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체내의 알코올이 날아가나 싶더니 금세 울고 싶은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겨우 내디뎠다.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목적지를 점찍어둔 여행에서 술에 취한 채 등산이라니. 그런데도 내가 우격다짐으로 이 일정을 넣어둔 것은 그 산에는 볼거리가 충만했기 때문이다. 늘 등산이라는 건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올랐는데, 이 산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이것은 등산이기보다는 그저 여행지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석각 육존불을 보아야 했고, 선각 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등등을 지나, 궁극적으로는 (정상을 찍고) 용장사터의 삼층석탑까지 도달해야 했다.


나는 남산의 이런 것들이 좋았다. 물론 등산이란 어느 산이든, 어느 높이에서든 매 순간 그만이 가진 풍광을 자랑하지만, 이건 조금 색다르니까.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보물찾기 하듯 숨은 유적들을 발견하며 어느샌가 정상에 도달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가! 그렇게 우리는 피곤함에 쩔쩔매면서도, 고단함에 땀방울을 눈물처럼 흘리면서도 남산의 숨은 곳곳을 눈에 담았다.


그런 산을 쌓아가고 싶다. 그저 위로, 위로, 또 위로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길 대신, 누구나 지칠 만한 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는 벤치를 놓아보고, 또 조금 더 올라 기념 촬영을 하면 좋을 꽃밭도 가꾸어 보고, 이제쯤 슬슬 지겨운 사람들을 위해 샛길을 내어 느긋이 집으로 돌려보낼 재미난 둘레길도 만들고 싶다. 그렇게 높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가파르지도, 고되지도 않은, 다만 편안한 그런 산을 쌓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싶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떠나야 하는 세상은 아니다.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등산의 끝이 아니듯, 생의 끝도 꼭 하산일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아름다운 산을 가꾸며 살아가면 좋겠다. 높낮이도, 정상의 모습도, 그 풍광도, 모두 우리, 각자가 정하는 만큼 개성이 넘친다면 좋겠다. 남의 것과 비교하기보다는 그냥 조금 더 좋은 기획을 가진 재미있는 산을 만들어가다가, 그 정상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않은 채로 떠난다면 참 아름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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