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20일 저녁 8시
매일 아들과의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점점 대화에서 교훈을 줘야 한다, 학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밀려왔다.
그래서 꽤나 피곤해졌다. 둘 다.
좋아, 원래 교실에서 하는 공부가 있으면, 또 운동장에서 하는 공부가 있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체육 시간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운동장 공사라고 하는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나 : 학교에서 체육 시간은 어떻게 보내?
아들 : 운동장 공사 중이라 체육을 못 해요. 태블릿으로 앱 하거나, 스포츠 영상 보거나, 빙고 같은 게임 해요.
나 : 사실상 체육 시간이 아닌 거네.
아들 : 맞아요. 대신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체육을 하죠.
나 : 교실에서 체육을?
아들 : 네, 요즘 야구 인기 좋으니깐 애들이 교실에서 야구하고 놀아요. 그런데 지난주에 반 애들 3분의 1이 교실에서 야구하다가 걸려서 혼났어요.
나 : 배트 돌리고 야구공치고 하면 교실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아들 : 그래서 종이로 공 만들고, 의자 부품 떼서 배트 만들고. 의자 밑에 은색 지지봉을 떼서 배트로 썼어요.
나 : 야, 그건 진짜 위험하겠다. 옆에 애들 맞을 수도 있었겠네.
아들 : 맞기도 해요. 그래서 혼난 거죠. 근데 몇몇은 웃으면서 혼나더라고요.
나 : 걔들은 놀기라도 했으니깐 웃었겠지? 너는 그 상황이 불편하진 않았어?
아들 : 야구를 한 건 혼날 만했는데, 그래도 공간이 없으니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 공사 중이라 운동장을 못 쓰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한창 친구들과 땀 흘리며 뛰어놀고 운동하며 성장하는 인생에 한 번뿐인 시기인데. 적어도 체육시간은 어디에서라도 제대로 운동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
나 : 넌 그럼 친구들이랑 스포츠는 안 하니?
아들 : 아뇨, 오늘도 친구들이랑 탁구 쳤어요.
나 : 오늘 일요일이잖아. 탁구장에는 누가 가자고 한 거야? 몇 명이랑 갔어?
아들 :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넷이서 갔죠.
나 : 탁구장에 갔어? 요즘 유행하는 무인탁구장이야?
아들 : 아뇨, 친구 중 한 애가 사는 아파트 지하에 있는 탁구장이요.
나 : 아파트에 그냥 탁구대가 있어? 탁구라켓도 거기에 있었어?
아들 : 네, 다 같이 쓰는 탁구라켓이 있었어요.
나 : 오, 그러면 공짜로 쳤겠네?
아들 : 맞아요. 공짜예요. 그래서 에어컨도 없었고 모기도 많았어요.
나 : 그러면 힘들었겠네. 그래도 재미있었어? 얼마나 쳤어?
아들 : 네. 1시간 반 정도 했어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 우리 아파트 1층에도 공용 탁구대가 있었다. 신혼 때 장인어른이 탁구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셔서 거기서 곧잘 쳤었는데, 외부인들이 자꾸 드나들고 뒷정리가 안된다고 민원이 들어오다 결국 폐쇄됐다. )
나 : 탁구 영어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아들 : 검색하니깐 테이블 테니스랑 핑퐁 나오네요? 둘 중에 뭐예요?
나 : 공식적으로는 테이블 테니스라고 하지. 가볍게 부를 땐 핑퐁이라 하기도 해.
아들 : 아하, 확실히 테니스랑 비슷하네요.
나 : 탁구라켓은 두 종류가 있어. 그중에서 뭘 썼니?
아들 :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잡는 거랑, 밥주걱처럼 잡는 종류 두 가지가 있던데요.
나 : 집게 모양으로 잡는 라켓은 펜홀더, 밥주걱처럼 잡는 라켓은 셰이크핸드.
아들 : 아하, 저는 셰이크핸드로 잡았어요. 펜홀더로 잡는 건 불편해서요.
나 : 악수하는 모양으로 잡는 다 해서 Shakehand고, 라켓을 펜을 쥐는 것처럼 잡아서 Penholder라 하지.
아들 : 아하, 처음이라서 마음대로 쳤는데 재미났어요.
나 : 탁구 치는 규칙은 알고 있어? 서브할 때 공을 공중에 띄우고 테이블에 두 번 맞추는 거라던지.
아들 : 그건 친구들이랑 치면서 알았어요. 여럿이서 칠 때 규칙도 있더라고요.
나 : 복식은 단식하고 다르지. 반드시 서브를 대각선으로 넣고 공을 돌아가면서 쳐야 해.
아들 : 그건 처음 알았어요. 저희는 그냥 재미로 쳐서 그런 규칙은 몰랐어요.
나 : 탁구는 어떤 운동 같아?
아들 : 재미있어요. 그냥 주고받는 게요.
나 : 축구나 농구처럼 많이 안 뛰니깐 덜 힘들지?
( 아들은 축구와 농구를 배우고 곧잘 한다. )
아들 : 그래도 옆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던데. 그래서 발이 아팠어요.
나 : 그래도 친구랑 랠리하고, 뜬 공은 강하게 스매시하면 스트레스 풀리지 않니?
아들 : 네, 그래서 잘 안 맞아도 계속 치게 돼요.
( 그래, 이제 한 번 꼬셔볼까? 기술 들어가야겠는데 )
나 : 잠깐만, 잘 치게 되면 공에 회전도 넣을 수 있어. 이렇게.
( 라켓을 꺼내와서 공중에서 탁구공을 튕기며 좌우로 회전을 걸어서 공이 휘어가는 걸 보여줬다. )
나 : 축구할 때도 공의 좌우를 차면 공이 휘는데 쉽지 않지. 탁구는 공도 작고 휘어지기 시작하면 금방 표시 나서 치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모두 쏠쏠해.
아들 : 아하! 재미있어 보이네요.
나 : 맞아. 나중에 아빠랑 탁구장 가볼래?
아들 : ( 무표정한 얼굴로 ) 그건 생각해 볼게요.
무뚝뚝한 대답이었지만 그게 어디냐.
나는 10년 구력의 즐탁러다. 탁구장에 아들을 데려와 랠리하고 시합하는 아빠들이 부러웠다. 나도 아들과의 탁구 라이프를 꿈꾼다.
사실 탁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탁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정년퇴임 하시고 탁구 삼매경에 빠지신 아버지는 탁구장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고, 주변 분들께 부자가 함께 탁구 치는 걸 보여주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새삼 아파트에 없어진 1층 탁구장이 무척 아쉬웠다. 매일 저녁 데리고 같이 탁구 치자고 졸랐을 텐데. 하지만 그랬다면 아들이 피곤해 했겠지?
아직 혈기왕성한 아들은 역시 또래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더 잘 어울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