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서C Jul 10. 2016

2016. 열세 번째 책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 용경식 / 까치

1.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쓴 제1부 비밀 노트, 제2부 타인의 증거, 제3부 50년의 고독이라는 연작 3편이 묶여 있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 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고 제목을 아직도 모르겠으나(출판사가 연작을 묶고 난 후 알아서 지은 것 같은데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소소한 문제라고 느낄 만큼, 이 작품 참 어마 무시한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2.

두 가지 면에서 어마 무시하다고 느꼈습니다. 우선 작법이 대단합니다. 제 1부 비밀노트를 관통하는 크리스토프의 서술 방식은 압권입니다. 최대한 느낌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문장을 기술합니다. 이 방식이 너무나 작가에게는 중요한 것이어서 주인공인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작문 공부를 빌려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말이죠.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p35)

그렇습니다. 우리는 문장을 기술할 때 느낌 위주로 말합니다. '이 꽃은 예뻐.' 또는 '그 사람은 나쁜 사람 같아.'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문장은 나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텍스트는 작자와 독자와의 거래이기에 나에게서 떠난 글은 상대방에게 해석의 여지가 제공되어 각자 다르게 판단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낸 글에 내 의도를 아예 실어 보내기에 읽는 이에 따라서 강요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문장 속의 실체가 오독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는 나쁜 사람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때로는 독자들은 글 속에 빠져서 글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글 표면을 떠돌면서 작가를 비판하고 싸우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문학은 그런 장치를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문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좋은 문장이 아닙니다. 제1부 비밀노트의 이러한 실험은 완벽하게 성공합니다. 독자들이 정신 못 차리거든요. 사실 문장을 따라가다 글 속에 빠져 허우적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페이지에 와서는 완벽하게 독자를 무너뜨립니다. 사실 문장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엄청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거든요. 1부의 끝을 읽고서 한참 동안 멍 때리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보여줍니다.  


3.

이러한 놀라운 작법만큼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또 다른 면은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내용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부 비밀노트의 내용은 가히 충격입니다. 루카스와 클라우스 형제의 팍팍하고 불안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펼치는 그들만의 기행과 그 주위를 둘러싼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행위는 숨이 턱턱 막힙니다. 학대, 동성애, 수간, 폭력, 위선, 살인이 책 전체적으로 뒤엉켜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통념상 통용되는 윤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행동하는 쌍둥이 형제가 그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오히려 잔인할 만큼 감정이 없는 그 쌍둥이 형제의 행동이 더 윤리적으로 비치기까지 합니다. 항상 함께했던 쌍둥이 형제는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갈라집니다. 아버지를 희생의 매개체로 활용하면서 둘이 이별하는 이 장면 역시 압권입니다. 우리가 흔히 윤리라 부르는 가치를 끝까지 1부에서는 거부하면서 마무리짓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윤리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쌍둥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루카스와 클라우스 형제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일게 하죠.


4.

크게 1부는 함께하는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면, 2부 <타인이 증거>는 국경을 넘지 않은 남게 된 루카스와 루카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3부 <50년의 고독>은 국경을 넘은 클라우스의 이야기이긴 한데,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반전에 반전이 숨겨져 있고요. 그런데 제가 1부 이야기만 주구장창 한 까닭은 그만큼 2,3부에 비해 넘사벽이기 때문입니다. 떼어놓고 읽어도 충분히 2부와 3부가 매력 있는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1부가 정말 강렬했기에 2부와 3부 이야기가 그리 임팩트 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2부 루카스와 마티아스의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만 1부에 이어 바로 읽어서 그런지 1부의 감동이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인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부를 86년에 2부를 88년에 3부를 91년에 출간했습니다. 동시 출간이 아니고 기간을 두고 연작한 것이어서 작법도 바뀌었고,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좀 욕심도 부린 느낌입니다. 1부를 너무 거대하게 만들어놓아서 2부와 3부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게 버거웠을 거라는 느낌도 듭니다. 솔직히 3부에서 1부와 2부 이야기가 거짓말임을 알려줄 때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3부를 읽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물론 3부에서 모든 실제가 드러나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라 할까요. 1부의 루카스와 클라우스 형제가 참으로 그리웠습니다.


5.

결론입니다. 오싹한 공포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읽고 무더운 여름을 나는 독서족들은 이번 여름에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내용도 그렇고 문체도 그렇고 술술 읽히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니까요. 삶의 윤리를 생각해보게 하고 인물들에 몰입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싹합니다. 굳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 이력을 살펴보실 필요까진 없겠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었지만 그냥 이야기와 인물에 빠져 보셔도 충분합니다. 바쁘시면 1부만이라도 읽어도 됩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제가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낀 루카스와 클라우스 형제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마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저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 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난  너희만 사랑할 거야..... 영원히..... 너희는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 말들이 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비밀노트, P27)


우리가 먹을 것과 모포를 가지고 그에게로 다시 가자, 그는 말했다.
"너희는 정말 친절하구나."
우리는 말했다.
"우리는 친절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다만 아저씨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들이니가 가져다주는 거죠. 그뿐이에요."
(비밀노트, p49)


순찰대가 멀어졌다. 우리가 말했다.
"가세요, 아빠. 다음번 순찰은 이십 분 후에 있어요."
아빠는 옆구리에 판자 두 개를 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판자 하나를 바리케이드에 기대 놓고 기어올라간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손으로 귀를 막고 이을 벌린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물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비밀노트, p192)




매거진의 이전글 2016. 열두 번째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