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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Jun 08. 2022

내 과거로 향하게 하는 육아

육아경력 8년째.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웃게하고 재우는 1차원 육아를 하며 쳇바퀴같은 일상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 눈 떠보니 큰 아이가 초등학교 교문을 통과하는 시점이 왔다.

 

환경이 변화되고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유독 마음이 번잡해지는 나는 요즘들어 더더욱 시도때도 없이 샘솟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등하교길을 함께하는 것이 좋을까?', "학원을 더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낯가림이 심한 아이니 친구를 만들어줘야 하는 건 아닐까?" 등등.


그러면서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이 흔하디 흔한 말의 본질을 좀 더 깊이있게 되새기고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만큼이나 각자의 교육철학에 따른 아이들의 인성교육, 지식교육, 행동발달 방식도 다양하게 분화된 세상에 정말 내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조율하고 맞춰야 하는 이 과정은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함께 이뤄지는 모든 과정이 연기라서 차라리 대본이라도 있다면 밤새워 외우기라도 할텐데... 나의 행동과 리액션 하나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불안해지기 일쑤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는 '한낱 나약한 인간인데...  도대체 무엇을 따라 행동 해야하나' 싶다. 육아에는 정해진 각본과 대사가 없으니까.


고민 해결을 위해 육아 책이나 티비도 찾아보지만 내 아이에 맞는 정답이 아닌 것 같고, 동네 아줌마들에게 조언도 얻어보지만 그들의 육아팁에도 의심이 멈추질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본다. '내가 내 딸들만할 땐 어땠더라?', '나의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교육시켰나?' 나는 내가 우리 아이들만할 때 집에서 받았던 교육에 관한 것들을 드문드문 떠올려본다.


세대나 환경에서 오는 차이일까? 나는 내 딸들보다 결핍된 아이이긴 했었다.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있었으니 전업주부 엄마를 둔 우리 딸들보다 엄마의 보살핌이나 손길이 더 적었을 것이고, 물질적인 것은 비교가 안되게 차이가 났다. 우리 시대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가는 키즈카페나 놀이공원을 나는 몇 년에 한 번도 갈까말까 했다. 바쁜 엄마 탓에 무엇이 '먹고 싶다'거나 '입고 싶다'는 요구를 하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그것보다 그런 것들이 단번에 수락되는 경험과 기대를 별로 한 기억이 없다. 맏이라서 오히려 바쁜 엄마 대신 동생들의 숙제를 살펴줬다. 구시대적 할머니에게서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는 잔소리를 듣기도 일쑤였다. 아버지와 싸우거나 온종일 일하다 지쳐 "힘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도 그 시절엔 결핍에서 느껴지는 고귀한 온정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없이 꽤 먼 길을 통학하는 8살짜리와 학교를 같이 오가주던 옆집 큰 언니, 생일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경단이나 수수팥떡을 해주시던 보통의 전업주부보다 부지런하셨던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면 학교 생활이 궁금한듯 "학교에서 뭐 배웠나?"라고 물으시곤, 1학년짜리 책가방에서 각종 프린터물을 꺼내 앞뒤가 무분별하게 정리된 것들을 한참을 바라보며 "버리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두었다"던 문맹인 할머니. 지나고보면 그 시절 나의 결핍들은 그렇게 수많은 온정으로 채워졌던 것 같다.


잘못하면 무릎 끓고 손 들고 벌을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들었던 말들도 기억이 난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인성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회는 얼마나 더 힘든지 아느냐, 공부가 최선의 방책이다" "돈버는 건 힘들다. 돈을 쉽게 쓰지 말아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말들이 내 무의식에 쌓여서 지금의 나를 형성해오고 지탱해왔던 것일텐데, 왜 나는 그동안 그런 말들을 끄집어내지 못하고 묻어두고 있었나 싶다.


루틴처럼 반복되는 격려도 있었다. 엄마는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하는 힘들어하는 내 배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칩시다. 딩동댕!' 이러면서 간지럼을 태우며 동요를 불렀다. 할머니는 내가 밥을  다 먹으면 "예전부터 어른들이 이래줘야 한다더라~" 하시며, 대견한듯이 내 엉덩이를 톡톡 쳐주시곤 했다. "밥을 먹을 때 자꾸 돌아다니면 나중에 이사 자주 다닌단다.", "밥 먹을 때 다리를 떨면 복 나간단다." 등 잔소리처럼 들려오는 그 말들을 그 당시엔 '말도 안되는 고릿적 시대 거짓말'이라고 비웃었건만, 육아를 실제 하는 관점에서 보니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지혜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는 공장에서 옷감을 가져다 집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셨다. 시다들의 잦은 이동에 힘들어하던 엄마는 일손이 필요할 떈 언제든 나를 동원했다. 나는 처음엔 하기 싫다고 뒷걸음쳤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엄마의 설득에 못이겨 결국엔 주저앉아 실밥을 따고, 엄마가 미싱질한 것들을 뒤집었다. 어떤 날은 6시간 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미안함을 교육적으로 승화시켰다. "일을 해보면서 어려운 것도 겪어봐야 한다. 이래야 공부가 쉬운 줄 안다. 이렇게 일을 하면 수당을 주겠다"고 했다. 당시 돈 쓸 줄도 모르고, 수당이 많은지 적은지도 몰랐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묵묵히 앉아서 인내심과 끈기, 공부의 필요성을 절절히 체감하며 자기주도적 공부를 자연스레 익혔다.  


요즘의 육아환경에서 내 과거는 흔히 '가스라이팅'이나 '학대'라고 불릴만한 것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성장이나 채워짐을 수반하고 있다. 그런 측면을 지지할 때 풍족함이 안락함을 주는 것 이외에 육아에 크게 기여하는 것도 없어보인다. 오히려 성장을 더디게하고, 더 까다롭게 하고, 현실을 보는 눈을 가리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결핍에 대한 주제만으로도 이처럼 다양한 고려가 생기는데, 이러니 육아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싶다. 아니 사람만큼 복잡다난하고 예측불가능한 것이 또 있겠는가.)


풍족함 탓인지 결핍이 부족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측면에서 어린시절 이맘때의 나보다 성장이 늦긴 한 것 같다. 과거보다 더욱 편한 세상에서 자랐으니 부모의 수고로움에 대한 이해가 적으니 그런걸까?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알아서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더 큰 사람이 된다면 직접 설명이라도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해줘야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진다고 부르짖는 '오은영식 육아법'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는 육아법에 있어, '결핍으로 인한 성장'에 대한 논의가 '공감과 지지'보다 많이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론이 아닌 경험 속에서 나는 결핍의 필요성을 상당부분 느끼고 있다. 나는 내 과거를 들여다보며, 학교를 가고 사회에 발을 디디면서 어쩔 수 밖에 없이 겪게 될 아이의 결핍을 무던하게 바라볼 용기를 서서히 내보려한다. 그 결핍 속에서 얻어지고 채워지는 것들을 아이가 스스로 느껴가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보려고 한다. 뭐, 잘 될지는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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