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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Jun 16. 2022

누가 아줌마 앞에서 감히 우아함을 말하랴?

아.줌.마.

애초에 우아함이 어디에 있었던가? 아니, 남아있기는 한 걸까? 부끄러움을 상실한 듯한 이 집단...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체면이 상하더라도 상관없다. 순간순간의 복잡한 일상을 그나마 헤쳐가려면 체면보다는 효율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은 아줌마에게는 이미 어떤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치부를 누군가에게 드러내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그 치부를 드러낸 부끄러움은 그로 인해 얻어낸 생명에 대한 감동에 의해 자연스럽게 묻힌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는. 하긴, 부끄러움같은 소소한 감정이 이 고귀하고 거대한 생명체 앞에서 어떻게 머리를 들랴?


대단히 부지런하지 않은 보통의 아줌마라면 집에 있는 늘어진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고, 눈곱 하나만 떼고 아이의 등교길을 함께한다. 아이를 챙기다보면 감히 자신을 챙길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이가 간 뒤에 식탁을 정리하다 아이가 먹고 남는 음식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입으로 집어넣는 아줌마들의 몸은 출산 전과는 다른 부피를 자랑하고 있다. 어쩌다 발견한 옷의 김칫 국물은 빨면 되는 거고,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패션도 별로 거리낄 것 없다. '육아시대' 드라마의 주연도 아닌 조연이 뭐 그리 패션까지 생각하랴...


아줌마들과의 수다는 보통 본론부터 시작한다. 육아 얘기가 주된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자신 혹은 남편을 닮은 아이의 성향, 자신과 부모의 관계, 자신이 과거와 현재 중요시했던 감정과 가치관 등 육아에서 뻗어나간 얘기들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를 챙기다보면 전에 없던 수많은 디테일들이 보인다. 아이처럼 섬세해져서 말 하나하나에 새겨있는 마음들, 행동 하나하나의 여파들을 이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인지한다. 행동과 말은 다소 거칠기도 하지만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은 누구보다 깊어져 간다. 하루의 이야기와 감정의 양은 가슴 속에서 쌓이고 옹골져간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꺼내고 줄줄줄 이어가는 사람들도 대개는 아줌마들이다. 속에 뭉쳐있던 것들을 아이들이 오기 전에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 속도도 비교적 급한 편이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뒤돌아서는 나의 심정은 보통 똥을 싸고 가는 느낌이다. 더러운 걸 배출했으니 한편으로는 시원하지만 제대로 닦지 않은 것 같아 찝찝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닦지 않으면 또 어떠랴? 우리 인생의 문제들이, 육아의 문제들이 언제 제대로 닦이는 것이더냐?


언젠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줌마인 한 사이버 대학원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연구실에 앉아서 수줍게 책을 보는 독신 남성분이셨는데, 얼핏보면 화장실도 안가실 것 같은 느낌의 깔끔함과 꼿꼿함이 있었다. 똥같은 건 닦으실까? 아니, 그 이전에 싸긴 하실까? 뭐, 이런 생각들을 나는 했었던 것 같다. 그런 분이 어느 날, 술자리에서 고백하신다. "나는 아줌마들이 무섭다"고. 자기는 책만 읽고 세상을 이론적으로 해석만했지 직접 험한 세상에 뛰어들어서 뭐 하나 제대로 체득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 같은데 사실은 자기는 누군가를 제대로 돌본 적도 없는 아기 같은 존재라고. 우아한 교수님의 속사정은 대략 그러했다.


갑자기 어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청년이 길을 가다가 부딪친 한 아줌마에게 눈을 흘기며 그런다. "에이~ 아줌마!" 자신을 무시조로 대하는 그 청년에게 아줌마는 우아함을 떨쳐버리고 최대한 아줌마스럽게 응수한다. 있는 힘껏 날카롭게 째려보며 "뭐? 아줌마?" 라고 말이다. 그 기세에 청년은 머쓱해하더니 최대한 아줌마를 피해 갈 길을 간다. 그 청년은 가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아줌마는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끄러움과 우아함을 상대조차 안하는 아줌마는 무섭고 그것이 아줌마의 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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