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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그 Dec 09. 2022

홀로 설 땐,

독립출판 플랜비매거진 VOL.4 시도 편 <일상수집가의 색> 참여 글

살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 쉬는 것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나 스스로 만 든 채찍에 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앞뒤 보지 않고 달려온 건 아닌데.... 느지막이 온 권태에 난 인생을 다 산 것만 같았다. 내가 힘들게 걸어온 이 길이 한순간에 엉망이 된 기분이었다. 책임감 없는 사람들, 서로의 탓만 하며 사내정치가 끊이지 않는 날들, 정치쇼 앞잡이로 세워질 뻔한 순간들, 줏대 없이 마구 흔들리며 되려 누구보다 앞서서 회사 다닐 맛을 잃게 하던 사장.... 모든 게 꼴 보기 싫었다. 성실한 사람 붙들고 앞으로 너만 고생할 일은 없을 거란 격려와 그 앞으로 눈에 훤히 펼쳐지던 거짓 미래는 대화할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몇 달 동안 문제를 해결하려던 건 다 쓸모없는 일이었다. 이전엔 몇 년이 걸려도 참아냈는데. 아, 모든 게 귀찮아져 버렸다. 그렇게 퇴사의 문을 열고 말았다. 과감하게, 벌컥. ‘모두 잘 살아요’, 동료로서 남은 자들에게 던진 마지막 인사였다.



잘 살 수 있을까. 무얼 해야 하나. 회사는 이제 지긋지긋해져 버렸다. 이렇게 대책 없이 나와서 생각 없이 쉬어도 좋은지 걱정이었다. 충분히 예고된 일이었으나, 퇴사하기 전엔 어찌할 수 없었다. 왜 고생은 실컷 하고 이제 설렁설렁해도 되는데 나가려 하느냐며 붙잡아주는 이도 있었지만 이성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엔 내 사기가 돌아올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 후였다. 사회생활 10년 차, 아니 학생 때부터 일했던 걸 치면 사회생활 15년 차. 회사 밥벌이는 그만두겠다며 쉬기 시작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났다. 그만큼도 견딜 수 없어 그간 하지 못한 여행, 뮤지컬, 연극, 독서, 이벤트 응모, 리뷰 체험까지 글자 기반으로 연상되는 문화생활을 보이는 족족 해치우고 있다. 그 와중에 짧은 글 몇 개를 업체에 납품하고 책 몇 권 사지도 못할 돈을 통장으로 입금 받았다. 얼떨 결에 프리랜서 업무도 제안받았다. 두 시간 이상 제대로 고민하지도 않고서 이거 관심 있던 분야인데 건드려 볼까, 커리어 범주는 얇고 넓어지겠다며 혼잣말을 흘렸다. ‘고!’ 하고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리다, 아차, 싶었다. 


이 답답한 인간. 또 이러고 있네. 좀 쉬라니깐. 돈을 얼마나 번다고, 인생 즐기며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많다고 또 구렁텅이로 몸을 던지나. 넌 평생 공부만 하다 죽을래, 신경질 내던 ‘전 여사’의 새된 잔소리가 생생히 머리에 와 꽂혔다. 지금도 바쁘지, 하던 친구의 숨죽인 질문이 들려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지금껏 잘못 살아온 게 아닐까. 나 어떡해! 


이제 잡생각은 버릴 때도 됐는데. 하나로 채울 때도 됐는데.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이제 그만 느긋할 만도 한데. 


마음을 바로잡아 세워본다. 심장을 내놓고 즐겨본다. 멈추고 들어 본다. 실패야. 인정하는 게 이렇게 신나서야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늘 같은 곳 적당한 거리에서 자리만 지킬 거라면 미련은 꿀떡 삼키고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처음부터 다시 하면 어때. 

이 삶을 사는 건 나인데. 내가 주인인데.

기운차고 때깔 좋게 살 수 있다면. 가슴에서 싱싱한 냄새 맡을 수 있다면. 그렇게 채울 수 있다면.

아, 생각만으로도 맛나다. 

달다, 내 인생! 


그럼에도 생각지 못한 실수를 계속하고 앞날은 뿌옇게 보일 테지만...

나는 날이 밝아 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새벽 이슬엔 창문도 흐려지지 않나.

지금 나는 아침해를 한껏 안으려고 새벽 악몽을 발버둥 치며 걷어내는 거라고 믿는다. 내가 스스로 빠진 구덩이에서 탈출해서 내 인생의 주인답게, 나답게,

과감하게 내일을 맞이하고 싶다. 


실컷 울고 넘어진 만큼 힘껏 당길 거다. 목 넘김 좋게, 달달하고 상쾌할,

내 두 번째 삶을.




몇 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다시 본 내 사진과 글. 이때 이후로 난 어떤 노력을 해왔나, 돌이켜보는 날. 내 삶의 뒤를 보며 앞을 계획해 보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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