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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그 Jan 19. 2023

블로거-지가 웬 말, 협업하려는 거-지가 늘어났다

아침부터 기가 빨린 하루였다.


나는 일이 힘든 날보다 상대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나 일방적인 통지를 공유라는 말로 가려 압박을 받을 때 어깨나 축 처진다. 그런 날은 아무리 크고 작은 일을 많이 해내도 이렇게 일해서 뭐 하나 싶다. 오늘이 그런 날 들 중 하나였다. 


블로거-지 라는 말을 자주 듣던 때가 있었다.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생기기 몇 년 몇 십 년 전일 거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플랫폼에 글을 쓰고 이를 경제나 업무활동 면에서 활용하기가 꺼려졌다. 기록을 하면서도 회사 대표님이나 직속 상사 또 누구누구는 안 봤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블로거-지 보다 협업한다는 협업하려는 거-지가 더 많은 때이지 않을까. 플랫폼도 다양해졌고 공인 외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도 아이들이 장래희망이라고 당당히 적어낼 정도의 시대이니. 


실제로 내가 겪어온 일만 해도 그렇다. 나는 홍보용 콘텐츠 제작 관련 문의가 들어올 때는 가급적 내 필요 경비와 내 노동 투여 시간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제작비(안)을 상대에게 공유한다. 그런데 메일함을 들여다보면 무분별한 광고 협업이나 무료 포스팅 요구 메일이 넘쳐난다. 어떤 곳엔 제안서 검토라는 식의 제목으로 메일이 오기도 한다. 대체 어떤 면이 협업이며 제안이라는 걸까. 


어떤 기업은 자신들이 선심 쓰는 것 마냥 이런 체험을 준비했으니 어서 확인해 보고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대로 홍보 글을 빨리 올리도록 해,라는 뉘앙스를 가득 담아 보낸다. 그 내용들은 보면 볼수록 선의의 진행보단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광고를 돈 안 주고 브랜드 혹은 무료 제품 등에 혈안이 된 사람들을 아주 단물 쓴 물 쪽 빼가겠단 의도가 뚝뚝 떨어진다. 정말 특정 기업의 브랜드나 제품에 충성을 다할 찐 팬이여서 참여를 하거나 그저 생활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성향이 강해서 앞서 말한 상대의 목적을 알면서도 기꺼이 당해주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그런 일방적인 메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내 메일함에 쌓이는 거겠지. 


그런 짠 내 폴폴 나는 메일들이 오늘도 내 메일함에서 썩고 있다. 짠내도 그냥 짠 내가 아니라 글쓴이의 미안함이나 고마움이라곤 빵 부스러기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짠 내다. 이런 게 기본적인 개인정보보호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글쓴이가 임의로 긁어모은 이메일 목록을 받는 이나 참조로 걸어 무작위하게 보내고 이를 해당자들이 다 같이 확인할 수 있을 때는 정말이지 속 깊은 곳으로부터 쾨쾨한 한숨이 밀려나온다. 적어도 시대에 맞는 메일 형태라도 갖출 것이지, 싶어서. 


물론 나도 그런 메일을 받고 참여를 해본 적도 있다. 지금도 이따금 정말 정말 내가 관심 있는 내용이라면 참여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체험에 유독 집중해서 일부러 찾아 해보기도 한 적도 있다. 이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각 직무를 행하는 이들은 어떤 처우를 받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보와 마케팅 관련 일을 하면서 내가 광고 전문 회사나 바이럴 마케팅 회사에 기획안을 넘겨줄 때에 한편으로는 직장인 외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면서 건너건너오는 일을 받아하는 최하단의 하청기업 혹은 프리랜서로서 일을 해보기도 했다. 하는 일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받고 몸 편히 치루어낸 일도 있고 적정한 거래 공급가로 일한 적도 있지만 시급도 제대로 쳐주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비에 실시간으로 밤낮없이 수정을 요청받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때는 재밌었다. 일을 시키는 자와 일을 받는 자 양측을 전부 경험하면서 직무에 대한 이해가 커질 거란 믿음에서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런 체험에 대해 유독 경계를 하고 있다. 내가 찍은 사진과 글 그리고 이로써 만들어지는 콘텐츠에는 내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 일을 한 데 대한 기회비용이 있다. 내 노하우가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식으로 접근을 해오는 이들 대다수는 그 가치를 폄하한다. 이해할 정도가 아니라 상식 밖의 수준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각자의 일과 시간과 그 노동력을 담은 그 사람이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급함과 절실함은 가장 중요하다 하면서 상대에게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작년에 나는 인플루언서 초대를 받아 어떤 공간을 찾으면서 가기 전에도 담당자와 전화 연락을 하여 해당 일정을 한 번 더 점검하고 갔음에도 문전 박대 당한 일이 몇 번 있었다. 담당자가 해당 내용을 제대로 인계하지 않았거나 전체 일정 변동에 대해 돈 들어가는 부분은 신속히 처리하고 이와 같이 비용 절감한 부분은 신경 써서 일 처리하지 않은 데 있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다. 그걸 일로 생각하지 않은 이들의 가치관 문제라 본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무신경한 이런 사람들로서 디지털 노동자인 나는 매번 낙담한다. 디지털 사회이지만 아직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시대에 걸맞게 움직이려면 아직도 많이 멀었다, 싶어서. 그 뒤로는 그런 무상 체험을 굉장히 선별하여 가거나 아니면 웬만하면 거절하고 있다. 



세상, 행복하려고 사는 건데. 

내가 블로거-지일 필요가 있나. 

블로거-지 뒤에 숨어 

협업하려는 거-지가 많은 세상에.


다행이다, 그런 참여를 안 해도 매출을 일으키는 일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만, 안심하진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할 거고 

내 몸이나 생각도 계속해서 변해갈 것이기에.


그런 까닭에, 

나는 오늘도 나만을 위한 밤길을 걸었고

나는 오늘도 나만을 위한 생각을 정리했으며

나는 오늘도 나만을 위한 공부를 했고

나는 오늘도 나만을 위한 기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나만을 위한 길을 걸을 것이다.


아침부터 기가 빨린 하루였지만, 그 기를 다시 보충하고, 내일을 상큼하게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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