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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그 Dec 14. 2022

사진을 좋아한다면, 사서 고생을

언제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중 하나는 카메라를 들고 걸었을 때다. 언제 힘들었냐고 물어도 그중 하나는 카메라를 들고 걸었을 때다. 한여름 땡볕에도 물 한 병 초콜릿 하나 가방에 넣고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설 때면, 난, 운동화에 열기가 꽉 찰 때까지 걷고 걸었다. 이마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다리가 풀릴 정도로. 때론 퇴근길에 청계천 따라 종로에서 혜화로 걸어가 낯선 골목길을 돌아 아현과 신촌을 거쳐 홍대로 내려오곤 했다. 이 모든 고통과 이 모든 경이는 모두 카메라 덕이다.



카메라를 들을 때면, 나는 이렇게 사서 고생을 했다. 그런데 이때,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기 전, 전문가도 아니면서 사진을 1일 1컷 이상 찍고 디지털 기록을 남기던 때, 나는 사진 찍는 스킬을 익히기보단 서울 구석구석을 돌며 마음이 덜컹거리는 찰나를 잡기 위해 무던히도 걸었다. 햇살이 너무 강렬해 땀이 주르륵 흐르더라도 혹은 장갑 낀 손이 얼어 손가락을 제대로 못 움직이더라도 말이다. 그랬기에 카메라를 오랫동안 들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내 생애 스마트폰을 쥔 날보다 카메라를 든 날이 더 많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내 집에 있는 아주 단순한 소품을 사진 찍어도 마찬가지다. 뚜벅이를 격렬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이렇게 사진을 찍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촬영을 계획하고 준비했더라도, 사진을 찍으면서 다양한 각도와 배경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보면... 집 안에서 카메라를 들 때면 평소 걸을 때보다 더 왔다 갔다 하고 팔과 손가락이 분주해진다. 내공이 탄탄한 이는 주변을 훑어보고 필요한 준비만 깔끔하게 마친 뒤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몇 십 번 몇 백 번의 셔터를 누른 뒤 촬영을 마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렇게 일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치기엔 아쉬운 생각이 들어, 매번 한 번 더 또 한 번 더를 내뱉으며 카메라를 들여다보곤 한다. 이처럼, 


예전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느리게 셔터를 누른다. 다행이다 싶다. 사진을 잘 찍기 보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거 말이다. 이렇게 천천히 내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소재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 속에서 발견한 나만의 생각을 좀 더 표현해 볼 수 있어서.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분들에게 사진 촬영과 보정에 대한 요령이 있는 콘텐츠를 들여다보기 보다 사진작가의 사진집이나 사진전을 더 들여다보라 권한다. 그들이 사진 속에 메시지 하나를 남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에, 카메라를 든 이들이 그 생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스타일 대로 사진을 담는 눈을 찾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니, 햇살 좋은 날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들고 천천히 걸어보기를.

찍고 싶은 공간과 소재를 구석구석 들여다 보기를.


아무튼, 사진을 좋아한다면, 사서 고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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