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가 네 번째 거짓말을 하다 들켰을 때, 그녀의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애나에게 세 번까지만 봐주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를 했던 터였다. 그때마다 애나도 펑펑 울면서 두 번 다시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던 애가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약속했던 '세 번까지'가 이미 넘어 버렸고, 거짓말을 할 때 거리낌 없었던 표정으로 볼 때 애나는 세 번 보다 훨씬 더 많이 거짓말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제 애나의 엄마는 '봐주지 않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애나의 엄마도 육아에 있어 악역을 맡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단단히 혼을 내주어야 한다.
"애나, 어째서 또 거짓말을 한 거니?"
"... 잘못했어요 엄마, 두 번 다시 안 그럴게요."
"울지만 말고 말을 해보란 말이야. 왜 거짓말을 했냐고."
"그냥 생각 나는 대로 얘기한 거예요. 거짓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진한테 색연필을 뺏었다면서. 그러고 엄마한테는 선생님한테 상으로 받은 거라고 했잖니. 그게 어떻게 생각 나는 대로 이야기한 거야? 엄마한테 혼나기 싫으니까 거짓말한 거잖아."
"... 진한테 뺏은 게 아니에요. 진이 친구니까 괜찮다고 줬어요."
애나의 엄마는 잠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작 30분 전에 진의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애나의 엄마는 5분의 통화 시간 동안 적어도 열 번은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애나가 진의 것을 뺏는 걸 본 다른 아이도 있다고 했다. 그랬는데 애나는 지금 혼이 나면서도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애나의 엄마는 자신의 육아와 훈육에 문제가 있었는지, 애나가 태어났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돌이켜 보았다. 흡사 죽는 순간 지난 인생을 회고하듯이.
"애나, 엄마가 경고하는데 사실대로 말해. 아까 진의 엄마랑 통화를 했었고,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들었단 말이야. 얘가 왜 자꾸 거짓말을 하지?"
"엄마는, 애나 엄마면서 왜 애나 말은 믿지 않아요? 진의 엄마가 더 좋아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잘못을 했으면 죄송하다고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뭐? 엄마한테 그런 소리가 어딨어!"
애나의 소소한 반항은 엄마의 화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때부터 애나는 울면서 잘못했다고 웅얼거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나의 엄마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애나에게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애나의 방에 있던 장난감 상자와 커다란 무민 인형도 뺏어가고 말았다. 때문에 애나가 끌어안고 울 거라고는 베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애나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애나는 물론 자신이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은 스물네 가지 종류의 색연필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꼴 보기 싫게 자랑하고 다녔다. 다른 애들도 모두 진의 색연필을 부럽게 쳐다봤다. 심지어 선생님은 진의 그림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알록달록 너무 예쁘게 그렸죠? 모두들 진에게 박수를 쳐주세요!' 하지만 애나가 보기에 진의 그림은 볼품없었다. 애나라면, 그렇게 많은 색깔의 색연필이 있다면, 매기 선생님이 깜짝 놀랄 만큼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애나는 진에게 말했다. 우리는 친구니까 나도 네 색연필을 쓸 수 있는 거라고. 친구는 원래 서로 나누는 거니까 나도 선생님한테 칭찬받을 수 있게 이번엔 내가 그 색연필을 쓰겠다고. 진은 싫은 얼굴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색연필을 건네주는데 동의했다. 그렇다, 애나는 그저 진의 색연필을 빌리려고 했을 뿐이다! 그 애의 색연필로 엄마를 그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면 매기 선생님도 모두들 앞에서 애나가 우리 유치원에서 제일 훌륭한 화가라고 치켜세웠겠지. 엄마도 애나의 사소한 거짓말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고, 내 딸이 이렇게 훌륭하게 내 얼굴을 그려주었다며 자랑스러워했으리라. 하지만 이제 다 틀렸다. 애나는 거짓말쟁이! 선생님도 친구들도 놀릴 것이다. 엄마가 아까 그렇게 화가 났으니, 애나는 이제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친구들이 조금은 나를 보고 싶어 해 줄까?
그때 방문이 열렸다. 애나의 엄마였다. 애나는 또 혼날지도 몰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반듯하게 앉았다. 애나가 보기에 엄마의 화는 아직 덜 풀린 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애나는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애나, 아까는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어. 그건 엄마가 잘못했다."
애나는 안심이 되어 조금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침대맡에 앉아 애나를 감싸 안았다. 다독다독, 등도 두드려 주었다. 애나는 따뜻하다고 느꼈다.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애나의 엄마는 몸을 때고 아이의 눈을 바라 보았다. 그렁그렁한 딸의 눈을 보고 있는 건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하지만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고 진의 색연필을 뺏은 건 잘못했으니까, 벌로 3일 동안은 잠자리 전에 핫 초콜릿은 주지 않을 거야. 알았지? 물론 몰래 훔쳐 먹는다면 두 번 다시 우리 집에서 핫 초콜릿을 볼 일은 없을 거고 말이야."
애나는 잠시 핫 초콜릿을 못 먹게 되다니, 그런 비극이 다시 있을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고 대답했다. 엄마 옆에서 계속 사는 게 핫 초콜릿 3일 치 따위보다 훨씬 좋은 일이다.
"그리고 진에게 오늘 당장 색연필을 돌려주러 가자. 그 애에게도 미안하다고 해야지. 지금 바로 색연필을 챙겨서 진의 집으로 가자꾸나."
"... 네 엄마. 색연필 챙겨서 현관으로 나갈게요."
"그래, 우리 딸. 얼른 찾아서 나오렴."
엄마는 다시 한번 애나를 꼭 안아 주었다. 애나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엄마가 방을 나서고, 애나는 스물네 개의 색연필을 케이스에 잘 채워 넣었다. 진에게 다시 잘 보여야 하니까 일부러 신경 써서 색깔의 그러데이션도 맞추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예쁜 엽서를 찾아 진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진이 제일 좋아하는 녹색 색연필로. 사브작 사브작, 커다랗게 글씨를 쓰는 애나의 눈빛이 진지했다. 아임 쏘리, 진. 두번 다시 너를 괴롭히지 않을게. 오늘 일은 정말 미안했어. 거짓말쟁이 애나는 편지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