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신혼여행은 화성으로

by 달을읊다

"우리 신혼여행 말이야, 화성 어때?"

"화성? 경기도 화성? 거기 뭐가 있는데?"

"아니 저기 우주에 있는 화성 말이야. 붉은 행성."


기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민아의 생각은 가끔 알 수가 없긴 했지만 이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는 처음이었다. 민아의 얼굴을 바라보니 평소와 같이 조금 풀린듯한 눈매의 무표정이었다. 화장을 싹 지운 민아의 눈매는 조금 아래로 쳐져 있어 졸려 보이곤 했다. 때문에 표정만 봐서는 어느 만큼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기영이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민아는 답답한 듯 말했다.


"어때? 좋아? 싫어?"

"아니, 일단 화성으로 간다고 하면 이미 신혼여행이 아닌 거 아냐? 거기까지 편도로만 몇 년은 걸리지 않아?"

"어디서 보니까 큐리오시티 있잖아, 화성 탐사선. 그게 비행한 시간도 1년이 안 걸렸대. 지금은 더 기술이 발전했을 테니까 좀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같은 민간인이 우주선을 탈 수나 있어?"

"무슨 글로벌 기업에서 민간 우주여행 사업도 준비한다고 봤던 거 같아. 화성도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지."

"돈도 엄청 들 텐데."


민아는 잠시 입을 다물고 기영의 눈을 쏘아보았다.


"오빠, 화성 싫어?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 자꾸 딴지만 걸지 말고."

"아니, 그게 아니라, 싫고 좋고를 떠나서 너무 황당하잖아. 왜 갑자기 화성이야? 모리셔스나 몰디브는 안돼?"

"지겨워 그런 거. 지구 따위."


민아는 짜증이 한껏 섞인 표정으로 돌아 누웠다. 기영이 그녀의 팔을 잡아 보았다. 민아는 그 손을 '예의 바르게' 뿌리쳤다. 때문에 기영은 민아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걸 알았다.


민아는 스튜어디스이다. 해외 노선을 담당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1등석 전담이었다.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 유효했다. 스튜어디스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단단한 몸매에 우아한 걸음걸이, 방긋 미소 지을 때의 친절함과 함박웃음을 지을 때의 의외의 순박함이 매력적이었다. 기영은 소개팅에서 민아를 만나고 세 번째 만남에서 사귀자고 말했다. 늘 잔잔한 미소를 띠고 친절하면서도 신중하게 말하는 모습에 푹 빠졌던 것이다. 때문에 사귀고 난 후 첫 데이트에서 민아가 시종일관 무표정을 하고 있어 걱정스러웠다. 심지어 민아는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오빠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하던 순간에도, 먼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던 순간에도 웃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던 기영이 혹시 기분이 언짢은지 묻자 민아는 답했다.


"오빠도 그런 영업용 미소가 좋아요? 저에게 그저 '승객 여러분' 중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같이 있으면 한없이 편하길래, 웃고 싶을 때만 웃어도 좋아할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 봤나 봐요."


물론 기영은 민아가 웃고 싶을 때 웃길 바랬다. 때문에 결혼을 청했을 때 민아가 정말 크게 웃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정말로 기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아는 그 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웃었다.


어쩌면 민아는 직업 특성상 지구의 흔해빠진 여행지는 싫은지로 모른다. 모리셔스라고 해봐야 거기까지 가는 비행기의 기내식이 무엇인지, 기장과 부기장은 어떤 사람인지, 그 날 근무 중인 스튜어디스가 그녀의 맨얼굴을 비웃지 않을 사람인지, 그런 모든 것들을 아는 게 피곤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기영은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팔을 잡아 보았다. 이번에는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민아야, 우리 와인 한 잔 하고 잘까? 너 좋아하는 거 얼마 전에 사다 놨잖아."

"... 됐어, 나 내일 11시 비행이잖아. 잘 거야."

"아 그렇네. 술 마시면 피곤하겠구나. 그러면 불 끌까?"

"응."


기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끄고 민아의 곁에 누웠다. 여전히 등을 돌린 채였다. 민아는 기영이 뒤에서 끌어 안자 성가신 듯 몸을 뒤척이다, 갑자기 정전이 된 것처럼 잠들었다. 어쩌면 자는 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영은 가만히 손가락으로 민아의 볼을 쓸어 보았다. 다행히 울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화성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던가, 거기에 공기는 있던가, 물도 존재한다고는 했던 거 같은데. 기영은 그런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꿈에서 기영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민아를 보았다. 민아는 웨딩드레스를 입고는 발목이 밧줄에 묶인 채 풍선처럼 둥실 떠올라 있었다. 발목의 한쪽 끝은 자유의 여신상에 메여 있다. 민아는 제법 높은 고도에 있는 것 같았다. 저 아래로는 까마득하게 도시가 보였다. 도시의 오른편으로는 대서양이 새파란 물살을 빼곡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구름조차도 한참 발아래에 있고, 지상은 낮이지만 민아의 머리 위로는 검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민아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발에 묶인 밧줄을 풀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기영은 우주복을 입고 민아의 앞에 나란히 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아를 도와주기 위해 겉 주머니를 뒤져보니 칼이 하나 나왔다. 손에 칼을 쥐고 밧줄을 잡았다. 그 때 조금 있으면 산소가 떨어진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삑삑 삑삑! 기영은 신경 쓰지 않고 칼로 열심히 밧줄을 끊어냈다. 그동안 민아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밧줄이 완전히 잘리자 민아는 둥실둥실 위로 떠올랐다. [민아야, 화성으로 가는 거야?] [응, 오빠. 지구는 재미없잖아.] 민아는 능숙하게 헤엄치는 듯한 모습으로 화성을 향해 나아갔다. 기영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산소가 부족하다는 경고음이 들려왔다. 삑삑 삑삑! 기영이 허둥대는 사이에 민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져 갔다. [왜 안 따라와? 화성은 싫어?] 민아에게 카톡이 온 모양이다. 기영은 민아에게 답을 하고 싶었지만 우주복을 입은 채로는 어떻게 카톡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민아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My battery is low and it's getting dark.] 삑삑 삑삑!


삑삑 삑삑!


"이제 좀 일어나! 알람 계속 울리는데 마냥 자고 있어?!"


기영은 번쩍 눈을 떴다. 민아는 부은 눈을 한 채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어느새 그를 향해서 돌아 누워 있었다. 반사적으로 민아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흔적 없이 뽀얗게 예쁘기만 했다. 기영은 와락 민아를 끌어안았다.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순간적으로 민아는 헉하는 소리를 냈다.


"자는 동안에 생각해 봤는데, 화성도 신혼 여행지로 괜찮은 거 같아. 그러니까 나 혼자 두고 가지 말고 꼭 같이 가야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침부터. 화성은 그냥 해본 소리였지, 당연히.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야? 바-보."


기영은 민아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잠은 덜 깨 보였지만 그게 정말 잠 때문인지 그녀의 처진 눈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입술은 선명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실룩실룩, 웃음이 터지기 직전인 것 같았다. 기영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윽고 민아의 웃음소리가 아침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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