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더들리는 돌고래다

by 달을읊다

더들리는 웰링턴 거리의 펍 '댄싱 조이'에 가면 대체로 만날 수 있었다. 그 펍은 모자와 타이를 착용하지 않고는 입장이 제한되는 곳으로, 더들리는 언제나 바의 한 구석에서 멋진 스코틀랜드 식의 녹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제법 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잘 다듬은 콧수염을 한 채 코 안경을 걸치고 있어도 그의 두터운 팔과 가슴을 숨기기는 어려웠다. 펍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손님들은 더들리가 조용히 테이블 곁으로 다가가기만 해도 목소리를 죽였다. 그럴 정신이 없을 만큼 취한 사람들은 그대로 덜미를 잡혀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하지만 평소에는 늘 조용하게 그저 구석에서 뭔가를 읽고 있을 뿐 더들리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가끔 펍의 여주인이 도와 달라고 하면 창고에서 에일 맥주가 가득 든 오크통을 지고 왔고, 바텐더가 자리를 비우면 손님 접객을 하기도 했다. 그 밖의 대부분의 시간은 조용히 바의 자리를 지키며 뭔가를 읽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손님들 쪽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단골들은 그를 조용한 정원사라고 불렀다. 그가 파수꾼 노릇을 하며 펍을 지키는 한 잡초들은 얼씬도 못할터였다.


그러므로 '댄싱 조이'가 시끌시끌했던, 그날은 무척 예외적인 날이었다. 펍으로 경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더들리의 덩치에 주눅이 든 얼굴이었다. 경관들은 예의 없게 소리를 질러가며 식사 중인 손님들에게 밖으로 피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더들리는 '떠돌이 해골'의 살해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쉽게 포박을 할 수 있도록 무릎까지 꿇어 주었다. 그는 얌전히 있었지만 혹시 모를 난동에 대비하여 경관 두 명이 총구를 겨눈 채 눈을 떼지 않았다. 다른 경관 하나가 그의 팔목을 뒤로 돌려 단단한 밧줄로 묶었다. 펍의 주인은 이 사람은 대단한 신사로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고 설득했지만, 더들리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경관들은 그를 끌고 가 마차에 앉혔다.


헌트 경관은 '떠돌이 해골'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떠돌이 해골'은 뒷 세계에서 유명한 놈이었다. 그가 이 마을로 흘러 들어왔다는 제보를 받아 그의 아지트를 덮쳤을 때, 그는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상태였다. 피부는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멍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마와 눈 부위가 함몰되고, 갈비뼈도 몇 개 부러져 있었다. 정말 지독히 맞아 죽은 모양이었다. 뿐만 아니라 허리는 뒤로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그게 아마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 같았다. 헌트 경관은 시체를 보자마자 이런 짓을 한 놈은 대단히 미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헌트 경관은 마차에 오른 이후 맞은편의 덩치 큰 남자를 향해, 줄곧 옷자락 아래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경관님, 힘드실 텐데 총은 이제 내려놓으시죠. 보시다시피 저는 마차의 부속품처럼 묶여 있으니까요."


더들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헌트 경관은 뜨끔했지만 그의 말대로 총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저는 사형입니까?"

"그렇게 처참하게 사람을 죽여놓고 본인이 죽는 건 무서운가 보지?"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편이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죽고 싶었다면 혼자 목이라도 메지 그랬나. 자살의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죽여서야 원."


헌트 경관은 빈정거렸다. 하지만 더들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경관님, 혹시 돌고래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돌고래라면... 그 배에 따라붙는다는 동글동글하고 주둥이 뾰족한 물고기 말인가?"

"물고기라기에는 꽤 큽니다. 2m는 넘지요."

"... 나는 바다에 나가본 적은 없어서."

"저는 좀 더 젊을 때는 배를 탔었습니다. 녀석들을 종종 봤었죠. 재주도 부리고,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고 꽤 귀엽습니다."


경관은 그림으로밖에 돌고래를 본 적이 없었다. 웰링턴은 바다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뱃사람을 볼 일도 없었다. 더들리는 그 마을 토박이가 아니고 몇 년 전부터 살았던 외지인이었으므로, 그의 말이 진실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돌고래 이야기는 왜 하는 거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사형수의 유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좋아, 해봐.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감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체의 상태를 보면 성모 마리아가 오셔도 네 놈을 지옥으로 보내 달라고 청하실 테니."


더들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돌고래는 아가미가 아니고 폐로 호흡합니다. 물고기처럼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낳지요. 그런 녀석들이 물에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종종 수면으로 솟구쳐 숨을 쉬어야 합니다. 새끼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면 암컷들이 등으로 떠받쳐 새끼를 물 위로 올려 주기도 하지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러면 잘 때는 물 위에 떠 있는 건가?"

"한쪽 뇌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다른 쪽 뇌는 깨어 있는 거죠. 양쪽 뇌가 완전히 잠들게 되면 가라앉을 것이고, 그러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익사하게 됩니다."

"그것 참 신기하군 그래."


헌트 경관은 잠시 상상해 보았다. 반쪽 뇌는 잠을 자고 다른 반쪽 뇌는 깨어 있는 생물을. 그런 생물은 꿈을 꿀 수 있을까?


"...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돌고래가 아닌가 하고요."

"돌고래보다는 곰에 가까운 것 같은데."


경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더들리도 빙긋 미소 지었다.


"뱃사람들은 대체로 덩치가 크지요."

"왜 본인이 돌고래라고 생각하는 거지? 말해두겠지만 미친 척을 하려는 거라면 좀 늦었다네."


더들리는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헌트 경관은 질겁했고, 말의 고삐를 쥐고 있는 동료 경관이 무슨 일이냐고 외치기까지 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큰 소리로 대답해 주고 헌트 경관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총을 쥔 손에 조금 땀이 밴 것이 느껴졌다.


"... 저는 이따금 생생하게 바다에 있는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물살을 제 몸을 스치는 것을 느끼고, 눈 앞에 아득하고 시퍼런 바다도 보입니다. 깊은 바다에서는 한낮에도 그 아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옥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지요."

"뱃사람의 추억 같은 건가."

"아뇨, 아닙니다..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생생한 감각입니다. 그런 감각에 휩싸여 있다 보면 곧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요. 그래서 위로 뛰어올라 크게 심호흡을 하는 순간, 제가 여기 앉아 있는 더들리라는 걸 알게 됩니다."

"호흡 곤란이 오는 것 아닌가?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경관님 말씀대로 일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심장에 문제가 있고, 여러 차례 심장마비의 위협이 찾아왔던 것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쩌면 제가 실제로 돌고래이고, 지금 이 더들리로서의 삶은 잠들어 있는 돌고래의 반쪽 뇌가 꾸는 꿈이라면 어떨까요."

"그럼 나도 돌고래의 꿈속에 있는 인간일 뿐, 허상이라는 말인가?"

"제가 느끼는 바와 같다면, 그렇습니다."

"웃기는 소리."


헌트 경관은 품에서 담배 파이프를 찾기 시작했다. 미친놈이야, 진짜로 미친놈이다. 건장한 남자를 맨손으로 때려죽일 만큼 잔인하고, 자기가 돌고래라는 꿈을 꾸는 미친놈.


"그래서 경관님께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돌고래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더들리는 시선을 조금 아래로 향했다.


"경관님께서 가지고 계신 총으로 저를 쏴주십시오. 제가 돌고래라면 총을 맞은 충격으로 깨어날 것이고, 아니라면 경관님은 피 흘리는 곰 같은 남자의 시체를 보시게 되겠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리 네 놈이 살인자라고 해도 내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돼!"

"정당방위는 인정됩니까?"

"그야 물론..."


헌트 경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더들리의 한 팔이 밧줄에서 풀려 나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단단히 묶었는데 어떻게, 하는 생각과 이런 악력이라면 곧 자신이 죽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공포심이 척추를 타고 그의 등을 훑어 올라왔다. 더들리는 악마같이 웃고 있었다.


'이 미친 살인자를 죽여야 해...'


헌트 경관은 떨리는 손으로 총을 꺼내 더들리의 가슴을 겨누었다. 그래도 더들리는 손에 쥔 힘을 풀지 않았다. 경관은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두들겨 맞아 죽은 '떠돌이 해골'의 모습이 떠올랐다. 헌트 경관은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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