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천사 거리 산책

by 달을읊다

소천동 인근에 사는 주민 이은희 씨는 매일 천사 거리를 산책한다. 소천동에는 시에서 조성한 약 100m 길이의 디저트 거리가 있다. 커피와 음료는 그 거리 내에 장애인 바리스타로 운영되는 시영 카페 것만 마실 수 있어, 실제 입주한 가게들은 음료 제외하고 순수하게 디저트로만 승부한다. 디저트 가게들은 대체로 하얗거나 파스텔톤으로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를 해서, <소천 디저트 거리>라는 이름 대신 <천사 거리>라고 불린다. 천사 거리의 입구에는 3단 케이크와 그걸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 보고 있는 아이들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보통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아이들 동상 맞은편에서 같이 케이크를 찍어먹는 포즈로 인증샷을 남긴다. 뭘 먹지 않는다 해도 천사 거리 양 옆으로 펼쳐진 아기자기한 색색의 가게 사이를 걷는 일은, 조그만 테마파크를 거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혹은 유럽의 어느 거리라던가.


때문에 은희 씨는 이 거리를 아주 좋아한다. 퇴근 이후에 식사를 하고 남자 친구를 데려가거나,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디저트를 먹으러 오기도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마음에 드는 가게에서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하나 사서, 시영 카페에서는 커피를 받아 들고 거리에 조성된 벤치에 앉아서 먹는다. 요즘같이 벚꽃 좋은 계절이면 사람이 바글바글 해서 조금 불편하긴 하가. 그래도 이 시즌에는 은희 씨가 제일 좋아하는 가게인 ‘레베카스 핑거’에서 4월 한정으로 체리 블러섬 케이크가 나온다. 케이크 시트 사이로 얇게 저민 딸기가 수북하게 들어가 있고, 벚꽃 모양을 섬세하게 재현한 아이싱이 올라간다. 엷은 핑크빛의 생크림에서는 딸기향과 아릿하게 벚꽃향이 난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체리 블러섬 케이크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인생 사진을 건질 수도 있다. 뒤편으로는 레베카스 핑거의 연보랏빛 벽이 수줍게 찍히기도 한다.


하지만 은희 씨는 이제 이 천사 거리를 산책하는 걸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한동안 야근이 많아서 잘 움직이지 못했더니 살이 금세 6kg가 찌고 말았다. 스트레스를 천사 거리에서 먹는 디저트로 푸는 것도 체중 증가에 일조한 듯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에 자꾸 그런 달다구리가 보이니 살이 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은희 씨는, 그날부터는 천사 거리 대신에 그 옆 강둑을 따라 조금 빨리 걸어보기로 했다. 달리기를 할 생각이었으나 신발도 러닝화를 새로 사야 하고 달릴 때 입을 옷도 사야 하기 때문에 바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은희 씨는 멀리서 반짝반짝 빛나는 천사 거리의 3단 케이크 동상을 보며 아쉬운 마음으로 옆 길로 들어섰다.


그 전에는 몰랐던 일이지만 강둑길은 천사 거리의 뒤쪽 편에 나란하게 나 있었다. 때문에 천사 거리 뒤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지저분했다. 생각해보면 디저트 거리가 조성되기 전에 그곳은 별 특색 없이 늘어선 오래된 상가였다. 은희 씨 할머니가 자주 이용하시던 방앗간도 거기 있었다. 뒤편까지 예쁜 색으로 치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인지 때 묻은 벽들에는 특색 없는 철제문이 달려 있었다. 가게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은희 씨는 좀 더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산책길을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맞은편에서는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뒤에 박스 같은 것을 싣고 있는 것 같았다. 은희 씨는 조금 옆으로 붙어서 걸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는 조금 속도를 줄였다. 은희 씨는 은연중에 상의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힘껏 쥐었다. 자전거는 은희 씨를 지나쳐 얼마 안가 끼익 하고 멈췄다. 은희 씨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자전거에서 내려 강둑길로 자전거를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은희 씨는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은희 씨가 뒤돌아 보자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남자가 자전거는 버려둔 채 은희 씨 쪽으로 몇 걸음 걸어오고 있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낮인데도 남자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은희 씨는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남자가 뭐라고 외치며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희 씨는 발목이 꺾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단숨에 강둑 비탈길을 올라 천사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천사 거리는 벚꽃 가로수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은희 씨는 황망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나풀나풀한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한 여자들과 잘 차려입은 남자들 뿐이었다. 누군가는 예쁘게 인테리어 된 가게 앞에서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른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마카롱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은희 씨는 혹시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보이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황망히 레베카스 핑거로 들어갔다. 얼굴이 익은 친절한 주인 여자가 생긋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러면서 마침 새로 개발해서 오늘 진열한 케이크가 딱 하나 남았다고 했다. 은희 씨는 바로 먹고 가겠다고 했다. 주인 여자는 이내 예쁜 접시에 케이크를 담아 왔다. 하트 모양에 기본적으로는 하얀 생크림으로 덮여 있었고, 위에는 체리 두 조각을 얹었다. 황금 화살 모양의 장식도 꽂혀 있었다. 은희 씨는 포크로 한쪽 모서리를 베어 냈다. 그러자 안에서 꿀럭하고 새빨간 산딸기 시럽이 흘러나왔다. 점도가 제법 있는지 시럽은 천천히 접시 위를 적셨다. 은희 씨는 더 이상 케이크를 먹을 수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17. 더들리는 돌고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