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인공지능 시대의 추격전

by 달을읊다

범인은 신중하게 복제해 온 다른 사람의 아이덴티티로 소형 우주선을 빌리는 데 성공한다. 수배령이 내려졌을 테니 어차피 자신의 우주선을 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가깝고 물가가 싼 행성으로 빨리 달아나서 몸을 숨기는 게 낫다. 그의 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대여용 우주선은 그가 안전 슈트를 착용할 때까지 이륙할 생각을 않는다. 마침내 스무 가지 정도의 안전 수칙도 모두 언급이 끝나고 우주선은 이륙을 시작한다.


그 뒤로 형사가 뒤를 쫓는다. 경찰 우주선을 타고 싶지만 바로 앞에서 놓친 범인을 생각하면 기다리고 싶지가 않다. 형사도 대여용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원하시는 도착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 우주선을 쫓아! 범인이 저기 있다!"

[우주법에 따라 다른 개인의 우주 비행을 방해하는 목적의 항로는 허가되지 않습니다.]

"그럼 저 놈이 도착지로 설정한 곳으로 도착지를 설정해!"

[우주법에 따라 다른 개인의 출입 행성 간 기록은 터미널 간 시스템에서만 취급되며 탑승자 본인의 허가 없이 이를 열람하실 수 없습니다.]

"... 말을 말지, 그러면 수사 협조를 요청한다. 저 우주선에 타고 있는 놈은 이 사건 용의자로 수배령이 내려져 있다. 아마 신분 조작을 통해 탑승했을 테니 3단계 신분 확인을 해서 그 놈이 맞다면 다시 우리 행성으로 돌려보내줘."

[수사 요청 접수를 위해 사건 기록 및 탑승자의 2단계 아이덴티티 확인을 시작합니다.]


형사가 탑승한 우주선은 그의 데이터를 조사한다. 그리고 수사 협조가 가능한 건으로 판단한다. 터미널은 사건을 접수하고 앞서 출항한 우주선 탑승자의 3단계 아이덴티티 확인 및 필요시 귀항 요청을 전송한다. 범인이 안전 슈트 안에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그가 탄 우주선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터미널로부터 전송된 요청이 있습니다. 승객께서는 현재 특정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되는 상황으로 수사에 협조를 요청드립니다. 3단계 아이덴티티 확인을 위해 착용하신 밴드를 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 거부한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야. 1단계 아이덴티티 검증으로는 부족한가?"

[수사 목적의 아이덴티티 검증에는 반드시 3단계 아이덴티티 확인이 요청됩니다. 3단계 아이덴티티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이미 본 기체 탑승 시 확인 서명하신 바가 있습니다. 항공 사고로 인한 본인 사망이나 1, 2단계 아이덴티티 판독이 불가한 정도의 부상 시 신분 확인 용도 및 2등급 이상 범죄로 인한 인터폴 수사 요청에 대응하는 경우입니다. 본 항공기내에서 확인을 거부하시는 경우 본사 방침에 따라 우선 귀항 처리됩니다.]


범인은 한숨을 쉰다. 1단계 아이덴티티 복제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이 기체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안드로이드로 전이된 몸으로는 밀폐된 공간 내에서 자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그는 옷을 전부 탈의하고는 목 부근과 허리, 양쪽 허벅지와 종아리의 밴드를 제거한다. 그리고 안전 슈트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몸을 옮기고 처음 슈트 안에서 눈 떴을 때 같다. 기체는 슈트 내에서 밴드가 제거된 영역으로 체크할 수 있는 그의 고유 아이덴티티를 판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빨간 신호를 터미널로 보낸다. 터미널은 우주선에 강제 귀항 신호를 보낸다. 우주선은 우아하게 유턴을 시작한다. 그리고 슈트 내의 범인의 이탈 방지를 위해 안정제를 투입한다. 이런 시대의 추격전은 이렇듯 늘 싱겁기 짝이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24. 봄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