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강남역 지하상가에 있는 걸 좋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까 재미있거든. 젊은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들 예쁜지 몰라. 남자 애들이고 여자 애들이고 하나같이 예쁘게 차려입고 놀러 나왔나 봐. 나이는 좀 있어도 멀쩡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노인네들도 멋있지. 결혼식이라도 왔나 봐. 며느리, 사위될 사람들이 이쁜 정장이라도 한 벌 사줬는지 아주 폼을 내고 나왔어. 그런 사람들이 내 앞을 또각또각, 저벅저벅 지나가지. 다들 멀쩡한 두 다리로, 계단도 마음껏 올라 다니면서.
나는 다리도 허리도 불편해. 그래서 여기 주저앉아 있는 거야. 물론 껌이라도 하나 사주면 고맙지. 잘 버는 날에는 순댓국집에 가서 한 그릇 시켜놓고 소주도 한 잔 해. 너무 그렇게 눈살 찌푸리고 지나가지 말라고. 나도 다리 다치기 전에는 공장에서 파이프도 만들고 그랬어. 워낙 없는 집에서 태어났고, 말도 못 하고, 생긴 것도 못났으니 장가는 못 갔어도 말이야. 가끔 같이 돈 벌러 다니는 영감들이 평소에는 내내 자식 욕을 하더니만 술만 마시면 그래도 우리 막내는 착하다는 둥, 그런 소리를 해. 나는 그런 소리를 믿지를 않아요. 그렇게 착한 막내가 왜 지 아버지 찾아와 보지도 않겠어. 나는 마누라 없고 자식이 없으니 그 양반들 보다야 상팔자지, 암.
오늘은 말이야, 여느 때처럼 지하상가 구석에 앉아 있었어. 내 지정석이 하나 있거든. 목 좋은 자리에는 웬 할멈 하나가 들어앉아 있어. 지가 키웠는지 검은 봉투 가져와서 풀떼기도 팔고 그러더라고. 그런걸 이 동네에서 팔면 팔리나 싶은데도 은근히 사람들이 사줘. 그게 좀 얄밉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할멈인데 내가 양보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나는 거기 말고 좀 사람들 덜 다니는 데에 앉아 있거든.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놀러 나온 사람이 많데. 밖에는 더운가 봐. 벌써 반팔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그때 너를 봤어. 아무래도 네가 맞는 것 같았어. 그래 너 말이야, 내 동생. 하나밖에 없는. 내가 서울 올라와서 공장 취직하고 얼마 안 있다가 네가 배 타러 나간다고 들었거든. 그러고 소식이 끊어져서 한참을 찾았는데도 못 찾았는데, 글쎄 네가 어렸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을 쓱 지나가지 않겠어? 키는 조그마한 놈이 발만 이만큼 커서는 커다란 신발을 신고, 건들건들 걸어가는 모습이 똑 네 발걸음을 닮았더라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너를 좇아갔어.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네가 아직도 그렇게 젊을 리는 없으니, 네 손자라도 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 그래서 그 젊은 애한테 혹시 네 할아버지가 손삼근이가 맞는지 물어보려고 했지. 이 놈의 다리는 왜 오늘따라 이렇게 안 움직이는지 말이야.
아니, 그런데 좇아가는데 아무래도 너를 따라잡을 수가 없단 말이지. 그럴 수밖에, 나는 칠십 먹은 늙은이고 너는 기껏해야 스무 살이나 될까 싶은 젊은 애고. 게다가 나는 오른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없단 말이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너를 소리쳐서 부르려고 했어. 나는 말을 못 해서 소리를 잘 안 내는데 말이야, 모처럼 찾은 내 조카 손주일 지도 모르니까. 나는 분명 '거기 키 작은 젊은이!' 하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들 귀에는 그냥 괴성처럼 들렸나 봐.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쳐다보대. 너도 저만치 앞에서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돌아봤어. 아무래도 얼굴을 보니 네가 맞아. 그래서 나는 허겁지겁 걸어갔어. '삼근아! 형이야 형!' 사람들이 형제간의 상봉을 알아보았는지 길을 양 옆으로 터주었어. 나는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꾸벅하고 걸어갔지.
그랬는데 말이야. 갑자기 네가 겁먹은 얼굴을 하는 거야. 혹시 내가 너무 늙어서 못 알아보는 건가? 나는 얼굴이 잘 보이게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지. 그리고 다시 '이놈아, 내가 네 형이야!' 하고 말했어. 내가 말을 못 해도 너는 철석같이 알아듣곤 했으니까 이제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기대했지. 어쩐지 어제 이발을 좀 하고 싶더라니만. 저 앞에서 너는 우물쭈물하고 있었어. 아무래도 내가 똑바로 자기만 바라보면서 오고 있으니까 아는 사람인가 잘 살피고 있는 중이었을 거야. 너는 눈이 나쁜지 이렇게 눈을 찌푸리고 나를 보더라고. 나는 절뚝절뚝 열심히 걸어갔어. 그리고 간신히 네 바로 앞까지 왔지. 어쩐지 주변 사람들도 어디 안 가고 쳐다보고 있고 말이야. 나는 네 손목을 잡았어. '삼근아, 삼근아!'
하지만 너는 내 손을 뿌리치고 두어 걸음 물러섰어. 그러더니만 주섬 주섬 품에서 지갑을 꺼냈지. 그 안에서 오천 원 한 장을 꺼냈어. 그리고 그걸 나한테 주는 거야. 내가 영문을 몰라서 이렇게 보고만 있었더니만 너는 내 손을 잡고 손바닥 위에 그 돈을 건네었어. 나는 그게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어. '나 니 형이야, 이게 무슨 짓이야. 나 못 알아보겠어?' 너는 인상 쓴 얼굴로 그대로 뒤돌아 갔어. 너는 중얼거린다고 중얼거린 거겠지만 나는 똑똑히 들었지.
"뭐야, 재수 없게..."
그 말을 들으니 좇아갈 기운이 다 사라지더라. 어떻게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니? 나는 너무 서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 꺽꺽 울음이 나더라. 옷 가게 주인이 나와서 등을 좀 밀면서 저리 가시래. 너한테 들은 말이 너무 아파서 화도 안 나. '쟤가 제 동생이에요, 동생 놈인데 글쎄...' 가게 주인이 안 좋은 얼굴을 하더니 들어가 버렸어. 그리고 조금 있었더니 경찰인지가 달려와. 그러더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오라고 하더라. 내가 그냥 있으니까 양 옆에서 한 팔씩 끼고는 번쩍 들어 올렸어. 저항하는데도 소용이 없어. 나는 개처럼 질질 끌려 가. 여기 있어야 그래도 너를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너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보고 싶었다고, 정말 보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