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내가 죽으면

by 달을읊다

죽음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을 했지만, 죽은 후 나의 장례를 어떻게 치르면 좋을지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직접 참석했던 장례식장의 풍경을 떠올리며 누군가 와서 울어도 주고 육개장도 먹고 가고 하겠지, 하는 막연한 이미지뿐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매장을 원하는지, 화장 후 납골당에 들어가기를 원하는지, 혹은 옛날 바이킹처럼 배에 띄워 불화살을 쏘아 주길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가족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 한번 고민해볼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남자 친구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봤을 때는 아무래도 수목장 쪽이 제일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결론이었다. 어쨌거나 나무도 심고, 한 사람만 남았을 때도 그 곁을 걸어 보거나 앉아 보기도 할 수 있을 테니. 문제가 있다면 그런 수목장 사업을 하는 주체가 믿을만한 곳일까 하는 것이다. 어느 문화 시설처럼 권력자의 오촌 정도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거나, 비합리적으로 폭리를 취하는 곳이면 곤란한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장례 문화에 대해 검색해 보니 우주장이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없고 일본에 상품이 있다고 한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유골을 로켓으로 쏘아 우주 공간으로 날려 주는 방식은 450만 원밖에(?) 하지 않고, 240년간 인공위성을 타고 지구를 도는 것은 950만 원이라고 한다.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렇게 유골을 막 버려도 되는가 하는 우려도 들지만, 의외로 이 인공위성에 실려 지구를 공전하는 것은 제법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이따금 지나며, 그들에게 무한히 축복을 내려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한편 살아 있는 사람들은 종종 하늘을 바라보며, 한때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이 (실제 물리적으로) 저 위에 있다는 안도감이랄지, 서글픔을 느끼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우주장을 택하게 될지는 좀 더 살아 보면서 고민해야 겠다. 이 지구의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는 것도 우주를 유영하는 것 못지 않게 의미 있고 멋진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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