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열한 번째 시 필사를 마쳤다. 고운 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언제나 마음을 다해 필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쓰다 보면 펜을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그 날 하루를 위해 정성껏 준비했을 작품이다. 그들 마음에 일어난 멈칫, 을 나누고 싶어 선정했을 것이다. 나도 이따금 내 차례가 돌아올 때면 이런저런 키워드로 시를 찾아본다. 지하철 역 스크린 도어에 새겨진 시들도 괜스레 오랫동안 바라본다. 우연히 마음을 치고 지나갈 시를 기다린다.
아직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때때로 학교 다니던 시절 지겹게 외웠던 '이 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한 송이 꽃이 되었다' 같은 주옥같은 시구절들(그리고 시구마다 형광펜으로 칠하고 이 곳은 역설법과 직유법, 은유와 상징들을 받아 적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오늘에 와서는 그런 짓거리가 다 쓸모없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나마라도 인생 시 한 두 편은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날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에서 시인은 그런 일상의 틈새를 깊은 눈빛으로 헤집어 보고 있나 보다. 영화 <패터슨>이 그런 이야기다. 패터슨 시 출신의 위대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은 그 시인을 흠모하는 '패터슨 시의 패터슨 씨'.(주인공의 직업은 버스 드라이버인데 배우의 이름이 아담 드라이버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는 버스 노선처럼 늘 규칙적인 패턴의 생활을 살고 있지만 그의 승객이나 아내, 술집의 단골들은 날마다 조금씩 변주를 만들어 낸다. 주인공은 그것을 포착해 그대로 눈에 담아 시를 쓴다. 패터슨 씨의(혹은 시의) 일주일을 그린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도저히 시는 쓸 수가 없다. 시 비슷한 것을 흉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몇 시간이고 언어를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는 집요함이 없다.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을 구분하는 밝음도 없고, 흔한 것이라 치부하는 것에서 낯섦을 발견하는 섬세함도 없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시를 필사하며 새삼 느낀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가 온몸을 쥐어짜 진액만 모아놓은 이 시를 이렇게 쉽게 써내고 있다는 것이 종종 부끄럽다. 필사를 거듭할수록 시인은 정말 존경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