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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20. 2022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됐다

-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제일 처음 지리산을 가게 된 건 어떤 수행이나 고행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서른이었고 그것은 내가 기대하던 것과 다른 서른이었다. 직장도 없었고 애인도 없었으며 돈도 없고 희망도 없어지고 있었다. 있는 건 살 뿐이었다. 어쩜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뚱뚱해지는지 몸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더니 앞자리 수를 바꾸고도 한참을 더 올랐다. 물론 직장과 애인과 돈을 얻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고 궁지에 몰린 참에 떠오른 건 지리산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내가 등산을 즐기던 것도 아니었고 지리산에 가 본 적이라곤 구례에 있는 온천에 갔던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지리산보다 돌아오는 길에 광주에서 먹은 오리탕이 더 기억에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지리산을 가기로 했던 건지 모르겠다.



 이유가 생각나지 않지만 벌어진 일들이 몇 가지 있다. 나는 그것들을 그냥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학 3학년 여름 방학 때,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예술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던 일. 그 이후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지만, 그 시작을, 시작의 이유를 떠올리자면 알 수가 없다. 바람이 불었을 뿐이다.



 처음 지리산으로 떠난 일도 그랬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고, 내일부터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거라 했을 때, 엄마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가 잘 풀리지 않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의 의견은 아주 큰 보탬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유가 어쨌든지 간에 아주 좋은 생각이라는 엄마의 말은 진짜로 나를 지리산에 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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