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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22. 2022

뒤돌아서기

-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깝게 지리산에 닿는 곳은 남원이었다. 남원까지는 기차를 타고 갔다. KTX도 있었지만, 나는 KTX를 탈 만큼의 돈은 여유롭지 않았고, 그보다 두 배 느린 기차를 탈 만큼의 시간은 여유가 넘쳤다. 첫차를 타고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남원역에 도착했다.


 지리산 둘레길에 진입하기 위해 우선 남원 주천 안내소에 찾아갔다. 안내소에서 1만 원을 주고 스탬프북을 구입하며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물었을 때 직원이 몇 코스에 갈 생각이냐 물었다. 그제야 알았지만 지리산 둘레길은 코스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주천에서 시작되어 운봉으로 향하는 1코스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리산을 둘러 다시 주천으로 돌아오는 스물한 개의 코스를 가지고 있었다.

 내겐 여행 기간이나 코스의 순번 같은 어떤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을 수 있는 곳까지 걸으려던 참이었다. 다만 예상하기로 그건 일주일 정도일 거고, 어느 곳에서 멈추더라도 집에 쉬이 오려면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전라선을 따라가는 것으로 방향만 정했다. 그러기 위해 주천 안내소로부터 산동을 향해가는 21코스로 가야 했다.

 주천 안내소에서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천 안내소에서 운봉을 향해가는 1코스로 갔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는 출발선에 서서 모두와 등을 지고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정한 출발점은 모두가 도착하는 곳이었고 내가 향한 곳은 모두의 반대 방향이었다. 여행을 떠나오던 시점의 나는 남들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인생을 비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떠나온 여행마저 나는 남들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가지 못했다. 출발부터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산 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 내 인생이 남들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잡은 건 아니지만, 어찌어찌 나의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그것도 만족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나는 내 인생을 비관하고 있었지만, 남에게는 응원의 말을 곧잘 하곤 했다. 그날도 지인 하나가 자신의 인생은 늘 꼴찌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에게 “뒤돌아 서면 네가 1등”이란 말을 했다.


 지리산 둘레길의 길을 안내하는 장승모양의 이정목은 순방향은 빨간색 화살표를, 역방향은 검은색 화살표를 가리킨다. 나는 3년에 걸쳐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 걸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완주를 해냈다. 방향도 속도도 상관이 없었다. 내게도 완주증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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