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과 바람은 다양한 단어들로 풍부한 표현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긴 하지만 결국 체득되는 단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많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아는 것은 그 단어가 글이 되는 것과 상관이 없었다. 문장을 만들 순 있지만 내 생각과 느낌이 녹아들진 못했던 것이다.
언어엔 젬병이라 모국어마저 서툴지만, 언뜻 눈치챈 자연의 언어들이 있다. 헷갈리는 길에선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지칠 때쯤 물소리가 들리고, 그 물가엔 쉴만한 터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오르면 내려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출근길을 걸을 땐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쳤을 테지만, 자연을 거닐 땐 발에 차이던 나뭇가지에서, 흘려보낸 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된다.
또 지식으로만 알던 단어의 의미를 몸소 깨닫는 순간도 있다. 아침에 걷기 시작할 때부터 오던 비가 저녁이 되고 새벽을 지나는 동안 끊임없이 내려서 뜨는 해와 함께 겨우 그쳤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맞이한 지리산은 매우 상쾌했다. 사방이 촉촉하게 젖어 시원한 공기에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오고 비 온 뒤 더 푸르러진 풀숲 사이로 들어가는 그 순간, 상쾌하다는 말의 의미를 눈과 코와 귀 그리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용택, <섬진강11>
구례와 하동 코스를 걷다 보면 섬진강을 만나게 된다. 왜인지 익숙하고 벅찬 건 김용택 시인 덕분이리라. 지리산을 왼편에 섬진강을 오른편에 두고 걸으면 그가 왜, 어떻게 시인이 됐는지 알 것만 같다. 섬진강, 이름부터 문학적인 그 강은, 내 걸음 자체를 문학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