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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12. 2022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코스와 코스 사이 작은 마을들을 지나게 된다. 몇 가구가 없어서 작은 마을인 것도 맞지만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처음 지리산을 찾았던 11월엔 골목에서 깨 타작이 한창이었고, 두 번째 지리산을 찾았던 6월엔 뙤약볕 아래 모내기가 마무리 중이었으며, 세 번째 지리산을 찾았던 5월엔 담장마다 장미가 만개했었다. 때문에 마을을 지날 때마다 훈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집집마다 걸려있던 명패였다. 한자도 아닌 한글이었고, 아저씨뿐만 아니라 아주머니 이름까지 새겨있었다. 간혹 자녀들 이름도 구석에 매직으로 어설프게 써놓은 집도 있었다. 주소만으로도 그 집에 손님은 찾아갈 테고 우편물은 배달될 테지만 구태여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그리고 그 집은 아저씨네 집만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집이기도 하고 자녀들의 집이기도 했다. 이름을 명시함으로써 그 집에 사는 이들 모두를 잊지 않게 했다.     

 


 어느 TV광고에서 관객이 모두 퇴장한 영화 상영관에 남아 엔딩 크레딧 끄트머리에 자기들의 이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환호하는 젊은이들이 나온 적이 있다. 나에게도 여전히 소중한 물건 중 하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이 실린 공연 프로그램북이다. 선배들의 졸업공연이었고 우리만 볼 거였는 데다 역할도 아주 작아 나만 알 일이었지만 몇 권을 챙겨 꼭꼭 모셔두었다. (대학로에 내 이름 적힌 포스터가 붙은 날은, 날도 아닌 몇 시간은, 아직도 벅차다.)     


 이름이다, 이름. '키미노 나마에와?'를 연신 물어대던 그 애니메이션(<너의 이름은>)이나, '은조야,라고 불렀다'를 되뇌던 그 옛날 TV 드라마(<신데렐라 언니>)처럼.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300쪽)     

 어디에 새겨졌으면 좋겠고 계속 불렸으면 좋겠고 비싼 이름이면 더 좋겠고. 그리고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정성과 응원도 그 이름 잊지 않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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