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후, 모카네 아파트 5층에 살던 작은 스코티시 폴드가 사라졌다. 다정하면서도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 고양이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날 할머니는 작은방 창문을 열어둔 걸 깜빡하고 외출했고, 호기심 많은 폴드는 창문을 폴짝 뛰어넘어 세상 구경에 나섰다.
아파트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온 폴드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동네 끝 낡은 공장 앞에 멈춰 섰다. 문이 반쯤 열린 그곳은 잡초가 무성했고, 먼지가 잔뜩 쌓인 기계들이 잠들어 있었다. 폴드는 처음 맡아보는 기름 냄새를 따라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섰다.
“야, 고양이다!”
“진짜 귀엽게 생겼네!”
공장을 자기들 놀이터처럼 드나들던 개구쟁이 형제였다. 형제는 처음 보는 고양이를 향해 달려갔다. 개구쟁이들에게 작고 통통한 폴드는 움직이는 장난감 같았다.
폴드는 낯선 손길이 다가오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작은 발톱을 세웠고, 낯선 손길이 다가오자 앞발을 휘둘렀다. 형의 손등에 금세 붉은 줄이 생겼다.
“아야! 피 난다. 진짜 짜증 나!”
“못된 고양이네. 벌 주자!”
형이 쓰레기더미에서 가느다란 노끈 하나를 주워 왔다. 그것을 폴드의 목에 둘둘 감고 줄 끝을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작은 막대기로 폴드의 몸 이곳저곳을 쿡쿡 찔렀다. 마당에는 형제의 웃음소리와 폴드의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공장 마당이 점점 어둑어둑해졌다.
“형, 이제 집에 가자. 엄마한테 혼나겠다.”
동생이 말하자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형, 저 고양이 어떡할까? 풀어줄까?”
동생이 묻자, 형은 폴드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냐! 재밌는데… 내일 와서 또 놀자.”
“추울 텐데…”
“안 추워. 털이 저렇게 많은데 뭐.”
“배고플 텐데…”
형은 눈살을 찌푸리고 툭 내뱉었다.
“하루쯤 굶어도 안 죽어. 우리는 엄마 집 나갔을 때 며칠씩 굶었잖아.”
그렇게 둘은 조잘대며 공장 문을 나섰다.
형제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시끄럽던 공장은 금세 조용해졌다.
혼자 남겨진 폴드는 춥고 배고프고 무서웠다.
작은 몸은 덜덜 떨렸고, 기름 묻은 발은 자꾸 미끄러졌다.
“야옹~ 냐~~옹”
“끄르륵~ 캬앙!!”
폴드는 애타게 울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때 공장 안쪽에서 스스슥, 찌익—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에 날린 비닐이 녹슨 기둥에 부딪히는 소리였지만, 폴드의 접힌 귀엔 괴물의 숨소리처럼 들렸다.
폴드는 겁에 질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도망치려고 움직일수록 목에 감긴 노끈이 더 세게, 더 깊이 조여왔다.
“냐악… 켁… 끄윽…”
목에 감긴 노끈을 끊어보려 몸부림치던 폴드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파르르—
아파트 담장 위를 걷던 허둥이의 목에 걸린 거울이 작게 울렸고, 가늘고 길게 떨렸다.
“또야…”
허둥이는 폴짝 뛰어내려 진동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렸다. 골목을 지나 낮은 담을 뛰어넘고,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도착한 곳은 낡은 공장이었다.
녹슬어 부서진 철문 틈 사이로 작은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공장 구석, 깡통더미 옆에 작고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때, 스르르—
지둥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폴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흰 고양이와,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가쁘게 숨쉬던 그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입을 뗐다.
“내가, 왜?… 왜 이렇게 죽어야 해?”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억울함,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 아이들에 대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허둥이는 살며시 거울을 들어 폴드의 눈 앞에 내밀었다. 거울을 삼킨 어둠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폴드의 지난 생이 떠올랐다
작은 연못가.
한 소년이 개구리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하얀 배를 드러내며 둥둥 떠오르는 개구리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잠시 후, 소년은 돌팔매질이 싫증났는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연못으로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에 잠자리들이 앉아 있었다.
소년은 살금살금 다가가 잠자리를 잡아 꼬리를 뗐다. 그리고 몸통에 지푸라기를 끼워 날려 보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소년은 그렇게 ‘잔인한 장난’을 치며 놀았다.
폴드의 눈이 바르르 떨렸다.
“…저 아이가, 나였구나.”
지둥이는 말없이 다가가 폴드 곁에 섰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폴드가 허둥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좀 더 착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응, 꼭 그렇게 될 거야.”
허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폴드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지둥이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공장에 돌아온 형제는 고양이가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동생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형은 오는 길에 본 벽보를 떠올렸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습니다』
벽보엔 폴드의 사진과 주인이 사는 곳이 적혀 있었다. 형제는 폴드를 품에 안고, 벽보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죄송해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형제는 고개를 숙여 할머니에게 사과했다.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를 받아 안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고양이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새 빳빳해진 폴드의 털을 여러 번 쓸어내렸다.
할머니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을 골랐다.
고양이를 안은 두 팔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렸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제야 고개 숙인 형과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동생에게 시선이 닿았다.
매서웠던 할머니의 눈빛은 차츰 아프고 아련한 연민으로 물들었다.
그날 밤, 찜질방은 평소와 다르게 조용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지둥이였다.
“오늘은… 그냥 좀, 마음이 많이 무거웠어.”
허둥이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괜히 울컥했어.”
그냥이가 사료 그릇을 밀어주며 말했다.
“그런 날 있잖아. 다친 데도 없는데 많이 아픈 날….”
허둥이가 입에 사료를 한 알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너무 속상했어. 그 고양이,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그냥… 사람들이 장난으로 괴롭히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지둥이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허둥이를 바라봤다.
“그래서?”
허둥이가 깊게 들이쉰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도 아팠어. 폴드의 마음이 내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어.”
지둥이는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빡거렸다.
그 눈 속엔 말없이 흔들리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걸 본 허둥이가 살며시 웃었다.
“너도 그랬구나. 너도… 그 마음이 느껴졌구나.”
지둥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허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없이 눈을 감았다. 허둥이도 살며시 웃고 눈을 감았다.
그릇을 정리하던 그냥이도 벽에 기대 어느새 젖은 눈을 감았다.
매일 이 시간이면 녀석들의 수다로 시끄럽던 찜질방이 조용해졌다. 어색한 침묵을 못 참고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른 건―
댕~ 댕~ 댕~ 댕~ 괘종시계였다.
*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는 직접 작성한 프롬프트를 바탕으로 제작된 AI 생성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