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전생 거울의 무게

"어떤 인간들은 너무 잔인해… 악마 같아!"

by 부지깽이

그날도 허둥이는 아침에 찜질방을 나와 골목을 돌아다녔다. 햇살은 따뜻했고, 마주친 길냥이들은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다.


저녁 무렵, 허둥이는 모카네 아파트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베란다 옆에 있는 나뭇가지에 폴짝 뛰어올라 거실 유리창에 입김을 호~ 불고, 앞발로 콩~ 출근도장을 찍었다.


거실에서는 아줌마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모카는 그녀의 무릎 위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녀석은 하루 종일 상남이 오빠랑 숨바꼭질하느라 피곤했는지 깊이 잠든 것 같았다.


그 때, TV를 보던 아줌마가 갑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 어떻게 저 어린 냥이들을?… 불쌍해서 어떡해…”

그녀의 젖은 눈에서 이슬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졸지에 눈물비를 맞은 모카가 잠결에 작은 몸을 부르르 떨고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천장에서 물이 새냐~~오옹" 가르릉~가르릉~


그 때, 파르르―

허둥이의 목에 걸린 전생 거울이 작게 울렸다.

진동도 작은 것을 보니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허둥이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풀숲을 박차고 달렸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느 폐건물 뒤편이었다. 찢어진 철망 틈 사이로, 폭이 제법 넓은 개울이 어렴풋이 보였다.

철망 앞 작은 공터엔 흰색 털뭉치가 흩어져 있고, 핏자국 같은 얼룩도 보였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듯한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불길한 기운에 사로잡힌 허둥이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고, 온 몸의 털이 쭈뼛 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퍼뜩 정신을 차린 허둥이가 용기를 내서 다리를 움직였다.

온몸의 감각을 열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공터를 살폈지만 주변 어디에도 생명의 흔적은 없었다.


그 때, 거울이 다시 한 번 울리고, 스르르― 지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다른 허둥이의 모습에 지둥이도 당황했다.

허둥이를 나무 아래 앉혀 두고, 이리저리 뛰어다녀 봤지만 죽어가는 고양이도, 쉼터로 안내할 영혼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었다.

허둥이 옆에 돌아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지둥이가 입을 열었다.


“허둥아, 넌 여기 잠깐 앉아 있어. 나는 찜질방에 좀 다녀올게.”

“찜질방에? 왜?”

“선배들이 그랬어. 문제가 생기면… 그냥이 아줌마한테 물어보라고. 아줌마는 뭐든 다 알고 있다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둥이의 몸이 스르르 사라졌다.


허둥이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둥이가 다시 올 걸 생각하니 두려움도 사라지고 용기도 솟았다.

허둥이는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터 옆 풀숲부터 철조망 너머 강둑까지 다시 다 뒤졌다. 하지만 철망에 엉킨 피묻은 털뭉치만 찾았을 뿐이었다.


찜질방에 올라온 지둥이를 본 그냥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벌써 끝났어?”

지둥이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철망에서 빼온 작은 털뭉치를 내밀었다.

그냥이는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 보다가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사료 주걱을 내려놓고 말했다.


“… 어떤 인간들은 너무 잔인해. 악마 같아!”

그녀의 꼬리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고양이를 죽이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고, 그걸 단톡방 같은 데 올린다더라. 그런데 정말 슬픈 건…”


그냥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 그렇게 당한 아이들은 여기로 오지 못한다는 거야.” 지둥이는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본 그냥이가 곧장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있어. 하나는, 육신을 찾는 것, 다른 하나는— 아직 흩어지지 않은 영혼을 찾는 것.”

그녀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그렇게 당한 애들은 대부분 너무 빨리, 너무 심하게 훼손돼. 그래서 서둘러야 해. 영혼의 흔적도 오래 버티지 못하거든.”


지둥이는 그 말을 곱씹듯 되뇌었다.

“흩어지지 않은… 영혼의 흔적.”

그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없어. 어서 가!”

지둥이는 곧장 몸을 돌렸다.


개울가 주변을 뒤지던 허둥이 앞에 스르르— 지둥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허둥이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없어…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도 없어…”


지둥이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냥이 아줌마가 그랬어. 방법은 두 가지래. 육신을 찾거나, 흩어지지 않은 영혼의 흔적을 찾는 것.”

말을 이으며 그는 개울가를 바라봤다.

“아마 개울에 버렸을 거야. 물에 떠내려갔을 거고… 그래서 육신은 찾기 힘들 거야.”

허둥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제발… 영혼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그 순간, 거울이 세 번째로 울렸다.

세 번째 울림은 이제 3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허둥이와 지둥이의 눈빛이 동시에 달라졌다.

이젠 말이 필요 없었다.


“찾자.”

“응! 꼭.”


둘은 곧장 흩어졌다.

허둥이는 개울 아래로, 지둥이는 철망 안쪽 폐건물 주변으로….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고, 개울가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던 중 작은 소리 하나가 지둥이의 귀를 스쳤다.


“… 엄마… …추워…”


지둥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철망 끝에 달린 작은 털뭉치 아래였다.

그곳에 덜덜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의 영혼이 웅크리고 있었다.


지둥이는 단숨에 달려가 그 작은 영혼을 번쩍 들어 꼭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많이 추웠지? 이제 따뜻한 데로 가자!”

그리고 고개를 들어 외쳤다.

“허둥아! 여기야, 여기!”


지둥이가 새끼 고양이의 영혼 곁에 앉아 등을 토닥여 주고 있을 때, 풀숲을 헤치며 허둥이가 달려왔다.

둘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애썼는지,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허둥이는 숨을 고르고 속삭였다.

“여기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지둥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영혼은 이제는 떨고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지둥이가 새끼 고양이의 영혼을 안고 발을 떼려고 할 때―

옆에서 “나 무서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둥이가 고개를 돌렸을 때, 허둥이는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었다.


눈물이 뚝, 뚝… 목에 걸린 거울을 타고 떨어졌다. 지둥이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허둥이 앞에 섰다.


“… 무겁지?”


지둥이는 허둥이의 목에서 조심스레 거울을 풀어 손에 쥐었다.

마치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슬픔을 언제든 대신 들어주겠다는 약속 같았다.


지둥이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울은 내가 갖고 올라갈게. 천천히 와…”

허둥이가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지둥이는 허둥이의 처진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발걸음을 돌렸다.


지둥이가 사라지자 허둥이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고마워, 지둥아! 새끼고양이의 전생을… 차마 볼 수 없었어.”

강둑에 내려가 한참을 울고 올라온 허둥이는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허둥이가 찜질방에 돌아왔을 때―

작은 테이블에는 사료 대신 따뜻한 참치죽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엔 어느새 말끔해진 새끼고양이도 앉아 있었다.


허둥이가 지둥이를 향해 빙그레 미소지었다.

옆에 앉은 그냥이가 새끼냥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깽아! 많이 먹어. 내일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멋진 세상이 펼쳐질 거야!”

“야옹~” 새끼냥이 행복하게 웃었다.


“거울이 세 번 울린 건 처음이야.”

지둥이의 말에 허둥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처음엔 엄청 당황했어… 그래도 우리 잘 했지?”


둘의 대화를 듣던 그냥이가 탁자를 콩콩 치며 소리쳤다.

“그럼! 완전 잘 했지. 너희들 오늘 이름 바꾸자!”

허둥이와 지둥이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우리 이름을요? 갑자기요? 뭐로요?”


그냥이가 덩치에 안 어울리게 히힛 웃었다.

“너희들 오늘 그 상황에서도 허둥지둥대지 않았잖아! 염라씨가 그걸 봤어야 하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그냥이가 혀를 차며 웃었고, 두 고양이는 괜히 우쭐해졌다.


“그러면 뭘로 바꿀까요? 뭐가 좋을까?”

그냥이가 이미 생각해 둔 것을 냉큼 내뱉었다.

“갈팡이와 질팡이! 어때?”

“뭐라구욧? 아줌마! 진짜~”


넷이 웃음을 터트리자―

댕~ 댕~ 댕~ 괘종시계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





*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는 직접 작성한 프롬프트를 바탕으로 제작된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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