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마지막 밤 … 드러난 진실

울리지 않고 떨리는 거울의 비밀은?

by 부지깽이

다음 날 점심 무렵.

허둥이와 지둥이가 영혼을 안내한 일곱 번째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찜질방 창문으로 무지개가 사라지는 걸 본 허둥이는 지체없이 목에 건 거울을 앞발로 살살 문질렀다.


거울 안에서 가느다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염라의 얼굴이 나타났다.

허둥이가 일곱 영혼을 잘 보내줬다고 보고하자 염라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래, 수고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오너라.”

염라와 몇 마디를 더 나눈 허둥이는 기지개를 켜며 환하게 웃었다.

거울 속에서 염라가 사라지자, 허둥이는 계단 아래에 대고 소리쳤다.


“지둥아! 올라와. 오늘은 여기서 놀아도 된대.”

지둥이가 꼬리를 흔들며 부리나케 뛰어왔다.

“진짜야?”

“응, 오늘은 여기서 맘껏 놀자. 헤헤”


둘의 눈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음방으로 뛰어갔다. 징벌방 체험을 해 보기엔 매일 밤 30분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허둥이가 얼음방에 먼저 들어가자, 문이 탁 닫혔다.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지둥이가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으 추워. 빨리 열어줘” 허둥이가 비명을 질렀다.

“뭐라고? 안 들려! 형~ 해 봐. 형~그러면 열어줄게.”

지둥이가 입을 삐죽대며 놀렸다.


쾅!

허둥이가 몸을 던져 문을 밀치자 지둥이가 나동그라졌다. 허둥이가 잽싸게 지둥이를 잡아 얼음방에 밀어넣고 문을 쾅! 닫았다.

전세역전! 공수교대!

허둥이는 문 앞에서 휘파람을 불었고, 지둥이는 오들오들 떨며 앞발을 싹싹 빌었다.


“저렇게 잘 놀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대?”

사료자루를 옮기던 그냥이가 흐뭇하게 웃으며 허둥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만 꺼내 줘. 지둥이 얼어 죽겠다. 호호호~”

다음 날 헤어지는 걸 알게 된 그냥이는

매점 깊숙이 숨겨놓았던 귀한 특식들을 꺼냈다.

말린 황태포, 쫀득한 연어젤리, 그리고 소고기 맛 츄르까지.

접시에 하나하나 정성껏 담아 내오자 허둥이와 지둥이는 냠냠 쩝쩝 접시까지 핥으며 신나게 먹었다.


배가 부르자 둘은 찜질방 1층, 뜨끈한 바닥에 머리를 대고 나란히 엎드렸다.

배가 따뜻해지자 눈꺼풀이 절로 내려앉았다. 둘은 사르르 잠이 들었고, 찜질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그냥이가 사료주걱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와 두 녀석의 이마를 딱! 딱! 번갈아 때렸다.


“일어나! 너희 갈 데 있잖아.”

“갈 데?”

허둥이와 지둥이는 동시에 눈을 비볐다.

“… 아차! 그렇지!”

두 고양이는 벌떡 일어나 튀어나갔다.


찜질방 문이 쾅! 열렸다 닫히고 녀석들의 꼬리가 스르륵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둥이와 지둥이는 곧장 모카네 집으로 달려갔다.

익숙한 골목길을 가로질러, 담장을 타고, 베란다 옆 나무에 폴짝 뛰어올랐다.

둘은 가지 위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집 안을 들여다봤다.


외식하는 날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고양이 네 마리가 자기들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었다.

뚱뚱한 미남이는 푹신한 바구니에 몸을 욱여넣은 채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고, 밍꼬는 방문 앞에서 코를 킁킁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상남이와 모카는 오늘도 술래잡기 중이었다.

늘 그렇듯 모카가 일방적으로 쫓아가고, 상남이는 어쩔 수 없이 도망쳐 다녔다.

아이구, 모카야, 이제 좀 쉬자! 늙어 죽기 전에 숨차 죽겠다!”

상남이가 숨을 켁켁대며 미남이 옆에 픽― 쓰러져 죽은 척했다.


모카는 칫― 하고 눈을 흘기더니 와다다다다— 베란다 가운데 캣타워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이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던 모카는 깜짝 놀랐다.

나뭇가지에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하얀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낯설지 않은 기척과 낯설지만 따뜻한 시선.


모카는 어릴 적, 눈꺼풀이 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때를 떠올렸다.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오던 그 밤, 어디선가 다가왔던 따뜻한 품.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

그때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네 눈동자에 따스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것을.


모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작게,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때, 모카의 눈이 허둥이와 마주친 순간, 허둥이의 목에 걸린 거울이 떨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진동은 확실했다.


“어…?”

허둥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둥이도 눈썹을 찡그리며 거울을 바라봤다.

“이거 왜 이래?”

거울은 부르르 부르르 계속 떨렸다


허둥이는 잠시 거울을 내려다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앞발을 내밀어 거울을 문질렀다. 잠시 후, 거울 속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염라가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얼굴을 쓰윽~ 내밀었다.


“그래, 왜?”

“그게요… 거울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계속 떨려요.”


염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응. 그거? 내가 주는 선물이야.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게 보일 거다.”

할 말을 마친 염라는 다시 안개처럼 사라졌다.


“보이지 않던 것…?”

허둥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둥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 모카? 그냥이 아줌마?”

둘은 동시에 거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모카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가족들이 돌아왔고, 모카는 폴짝 뛰어내려 방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재윤이가 데려갔나 봐.”

허둥이가 작게 말했다.

둘은 한참을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가 찜질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는 길에 지둥이가 물었다.

“근데… 아줌마 전생, 꼭 봐야 해?”

“궁금하지 않아?”

“그다지…”

허둥이가 잠시 말없이 걷다가 대답했다.

“나도 아줌마가 전생에 뭐였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 다만, 왜 거울에 안 비치는지 그게 궁금할 뿐야.”


그 말에 지둥이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나도 궁금해… 염라 씨한테 물어보자. 이해가 되면 보고, 별거 아니면 안 볼래. 솔직히 남의 전생 보는 거, 좀 그렇긴 했어.”


찜질방에 도착한 둘은 입구 옆 그루터기에 나란히 앉았다. 허둥이가 거울을 꺼내서 문질렀다.

잠시 후, 염라가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또 뭐? 내일 보면 되지… 왜, 또?”


허둥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요… 왜 어떤 고양이들만 거울에 전생이 안 보이죠?”

염라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건 직전 전생이 너희랑 관련 있어서 그래. 그럼 됐지? 나 바빠.”

이번에도 자기 할 말만 하고 스르르 사라졌다.


“··· 직전 전생?”

허둥이와 지둥이는 천천히 서로를 바라봤다.

잠시 후 허둥이가 벌떡 일어났다.

“가자!”

“응.”

두 고양이는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이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은 감지 않았지만, 고개는 숙인 채였다.

허둥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냥이가 눈을 들어 바라봤고, 허둥이는 목에 걸린 거울을 내밀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냥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둥이는 한 걸음 더 다가가 거울을 조용히 비췄고, 세 고양이는 말없이 거울을 들여다봤다.


어느 추운 겨울밤, 골목 어귀를 힘없이 걷는 한 여자가 보였다. 여자의 얼굴은 그냥이와 비슷했다. 그녀는 손을 호호 불며 대문간에 붙은 단칸방 문을 열었다.


작은 방 안엔 어린 남매가 누워 있었다. 오빠는 허둥이를 닮았고, 동생은 모카 같았다.

남매는 이불 속에서 몸을 덜덜 떨면서 자고 있었다.



여자는 문 옆에 놓인 빈 연탄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때 얼굴에 목도리를 칭칭 감은 주인집 남자가 연탄집게를 들고 다가왔다.

“늦으셨네요. 추우시죠?”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연탄이 없어서… 한 장만, 빌려주시면…”

“걱정 마세요. 제가 갈아 드릴게요.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 주무세요.”

“죄송해요. 번번이… 너무 고마워서…”

여자가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고,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여자는 방으로 들어가 남매 가운데 누워 두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방문을 조금 열어 두고 눈을 감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집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연탄을 꺼내 연탄통에 담아 걸음을 재촉했다. 그것을 단칸방 아궁이에 조심스레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린 후 뚜껑을 닫았다.


잠시 후, 남자아이는 발이 시려워서 잠이 깼다. 자신의 발밑, 조금 열려 있는 문틈으로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방문을 탁― 닫았다.


방바닥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낡은 단칸방 구들장은 여기저기 깨져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희미한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기엔 연탄가스도 섞여 있었다.

따뜻한 방 안에서, 세 사람의 숨소리는 잠시 거칠어졌다가 점점 옅어졌고, 끝내 조용히 꺼져갔다.

전생 거울이 연기처럼 서서히 흐려졌고, 세 고양이는 말을 잃었다.

허둥이는 몸을 떨다가 울음을 터뜨렸고,

그냥이는 고개를 들어 천장만 멍하니 바라봤다.

지둥이는 어쩔 줄 몰라 둘을 번갈아 바라 보았다.

잠시 후 그냥이가 가만히 몸을 돌려 허둥이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줬다.


그 때 허둥이의 몸 옆으로 살짝 삐져나온 거울에 무언가가 비쳤다.

그건 바로― 지둥이의 얼굴이었다.

“어! 뭐야?… 내 얼굴이 왜 나와?”

허둥이와 그냥이가 고개를 돌려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에는, 연탄을 갈고는 손을 툭툭 턴 주인집 남자가 목도리를 풀어 손에 쥔 채,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허둥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 그게 너였구나!”


셋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허둥이와 지둥이의 찜질방 마지막 밤은, 그렇게 기묘하고 따뜻하게 깊어져 갔다.




*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는 직접 작성한 프롬프트를 바탕으로 제작된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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