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백마부대>
고문실 밖. 통창 너머로 백마부대 연대장 전두칠 대령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빳빳하게 다려진 군복 어깨엔 계급장이 번뜩였고, 군화는 흙 한 점 없이 광이 났다.
허리춤에 찬 권총과 오른손에 쥔 지휘봉은 그를 더없이 위압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의 곁엔 심복 장기동 중위가 조용히 서 있었다.
“저 친구가 전에 말씀드린 장춘동 하삽니다. 베트콩들이 ‘지옥의 고문관’이라 부른답니다. 포로들이 밀림 지도까지 그려냅니다.”
전두칠은 아무 말 없이, 고문실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고문실 문이 삐걱~ 열리고 장춘동이 피 묻은 손을 천으로 닦으며 나왔다.
장 중위가 앞으로 나섰다.
“연대장님이시다.”
장춘동은 순간 눈을 치켜뜨며 굳은 자세로 서서 목청을 곧추세워 외쳤다.
“백마! 연대장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전두칠이 천천히 다가와 장춘동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수고했네··· 고문이, 예술이더군.”
장춘동은 순간 말을 잃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충혈된 눈엔 핏줄기가 더 짙어졌다.
잠시 후, 그가 고문실로 돌아가자 전두칠이 옆에 선 장 중위에게 나직이 말했다.
“저 놈, 물건인데··· 키워 볼 만하겠어.”
* * *
그 날 오후 백마부대 연병장.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멎고, 하늘 위로 먹구름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평소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던 연병장은 빗물에 젖어 질척댔고, 여기저기 웅덩이가 패어 있었다.
눅눅한 공기, 축축한 땅. 그럼에도 병사들은 간만에 느슨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며칠간 이어진 밀림 수색작전이 막 끝났고, 내일은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이었다.
그러나—평온은 잠시였다.
연병장 중앙을 기준으로 양쪽에 도열한 병사들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축구 한 판! 휘슬만 울리면 곧바로 전쟁이 터질 판이었다.
본부중대와 경비중대.
전장에선 서로의 등 뒤에 목숨을 맡기는 전우였지만, 부대 안에선 공공연한 견제와 신경전이 오갔다.
작전병과, 정보병과, 취사병과 등으로 구성된 본부중대는 경비중대를 ‘땅이나 파는 무식한 노가다꾼들’이라 깔봤고, 경비중대는 본부중대를 ‘펜대 굴리며 잡담이나 하는 밥벌레들’이라 여겼다.
그런데—
명문대 출신 박규 병장은 뜻밖에도 경비중대 소속이었다.
모두들 고개를 갸웃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의 축구는, 축구가 아니었다.
규칙은 있었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공보다 몸이 더 많이 걷어차였고, 태클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다.
말 그대로, 전투였다.
육탄전, 전우끼리의 난투극.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상대를 일으켜 세워주고, 등을 쳐서 먼지를 털어주곤 했다.
그리고 PX로 몰려가 전리품을 나눠 먹었다. 물론 패자들은 승자들의 놀림까지 꾸역꾸역 삼켜야 했지만···.
본부중대 11명, 경비중대 11명.
연병장 한가운데 가상의 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한 눈빛이 번개처럼 튀었다.
본부중대 진영엔—
장춘동 하사가 눈에 불을 켠 채,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경비중대 쪽엔—
김창열 병장과 함돈혁 상병이 적토마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양보할 수 없는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려는 찰나—
“연대장님 오십니다!”
관람석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터졌고, 경비중대 3소대장이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붙였다.
“백마!”
그리고 잠시 후, 두 명의 군인이 연병장을 가로질러 정중앙으로 걸어왔다.
도열해 있던 병사들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제히 외쳤다.
“백마!”
칼같이 다려진 군복, 광이 번쩍이는 군화를 신은 전두칠이 병사들 앞에서 익숙한 듯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부대, 쉬어!”
짧은 침묵.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장기동 중위가 조용히 그의 곁에 섰다.
그때, 전두칠이 입을 열었다.
“나도 뛰겠다. 골키퍼로.”
찰나의 정적, 그리고··· 연병장을 뒤흔드는 환호성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