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백마부대>
전두칠은 군복 상의를 벗어 던졌다.
탄탄하고 다부진 상체가 드러나자, 연병장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는 군화도 벗고, 장 중위가 건넨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복장을 정리하며 몸을 푸는 사이, 장 중위가 미리 준비해 둔 골키퍼 장갑 두 벌을 건넸다.
전두칠은 한 쌍을 천천히 착용하고, 남은 한 쌍은 경비중대 골키퍼에게 던졌다.
“다치지 말라고 주는 거야.”
순간, 연병장이 또 한 번 환호성에 휩싸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설의 골키퍼’가, 지금 이 전장에서 진짜로 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슛.
두 번째 슛.
그는 모두 막아냈다—몸을 날려서.
진흙투성이가 된 유니폼, 땀과 흙이 엉겨 붙은 얼굴.
그는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내가 육사 11기, 전설의 수문장이야!”
장춘동은 연병장을 미친개처럼 내달리면서도, 시선은 단 한 곳-전설의 골키퍼에게만 꽂혀 있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 그의 고함 하나하나가 장춘동의 심장에 비수처럼 박혔다.
그리고—
센터링된 공이 그의 발 앞에 떨어진 순간,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을 뻗었다.
골망이 흔들렸다.
본부중대 첫 골! 장춘동은 공을 안고 흙탕물이 튀든 말든 골대 앞까지 내달렸다.
그리고—
흙투성이 얼굴로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충~성!!!”
그건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백마부대의 경례구호가 아니라, 장춘동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맹세였다.
“삑~ 삑~ 삐익!”
휘슬이 울렸다. 전쟁 같던 축구경기가 끝났다.
진흙탕 연병장 위로 한 줄기 햇살이 쏟아졌다.
전두칠은 중앙 연단에 올라 장갑을 벗고, 진흙과 땀이 엉킨 얼굴을 쓱 문질렀다.
그리고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돼지 한 마리 잡는다. 술도 허용. 단, 경계는 철통같이. 살아서 돌아가야—오늘이 전설이 되니까.”
“우와아!”
“만세!”
“연대장님 최고!”
짧고 강렬한 연설이 연병장을, 병사들의 심장을, 그리고 곧 태풍처럼 밀려올 밤을 뜨겁게 달궜다.
그 순간─
전두칠의 뒤편, 산허리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무지개다!”
누군가 외치자, 병사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고, 연병장은 금세 들뜬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장춘동은 넋을 놓고 무지개를 올려다봤다. 전두칠의 머리 뒤로 펼쳐진 무지개는, 장춘동의 눈에 후광처럼 번졌다.
가슴 속에서 숭배와 두려움의 감정이 동시에 솟구쳤다.
“저건··· 신의 명령이다. 저 분은 내가 지켜야 할 무지개야!”
그의 눈동자에 순종을 넘어선 복종, 맹목적인 믿음이 차올랐다.
잠시 후, 연병장은 잔치판으로 변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병사들 앞에 PX에서 공수된 맥주와 통조림이 놓였다.
“꾸에에엑~!”
취사장 쪽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렸다.
“저녁엔 막걸리도 한 잔씩 주십쇼~!”
누군가 외치자, 전두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함성이 연병장을 뒤흔들었다.
* * *
규는 김 병장, 함 상병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김 일병은 늘 그렇듯 잔뜩 들떠서, 흙바닥에 술과 안주를 깔아놓기 바빴다.
“오랜만에 목구녕에 기름칠 좀 하겠네~ 흐흐흐.”
함 상병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하자 김 병장이 씩 웃으며 한 마디 날렸다.
“뚱땡아, 목구녕 기름때나 벗기고 쳐먹어라~”
규는 맥주캔을 입에 대며 웃음을 삼키듯 목을 축였다.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장춘동의 시선이 날카롭게 함 상병을 파고들었다. 눈빛은 혼탁하고 음습했으며,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함 상병은 못 본 척, 일부러 더 시끄럽게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전두칠과 장춘동, 장 중위가 앉은 자리에도 맥주와 통조림이 가지런히 놓였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뚫고, 전두칠이 벌떡 일어나 맥주캔을 들고 외쳤다.
“살아서 돌아가자!”
연병장 여기저기서 “살아서 돌아가자!”는 함성이 메아리쳤다.
규는 만담콤비의 음담패설과 쉴 새 없이 쫑알대는 김 일병의 수다를 흘려들으며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장 하사, 정말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연대장님은··· 무지개십니다. 저는 무지개를 지키는 개가 되겠습니다. 저를 써 주십시오!”
이어진 전두칠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오싹했다.
“허허! 그래··· 그럼 나와 함께 무지개 너머에 가 보지 않겠나?”
“넵!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옆자리에서 울려 퍼진 기묘한 충성서약에 규의 눈이 부릅떠졌다.
무지-개!
그 단어가 장춘동의 입에 담기는 순간, 규는 알았다.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무지개의 악몽'이 지금 막 시작됐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