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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Sep 07. 2023

모험의 아이.밤의 바다(2)

난 매우 높은 빌딩의 옥상 꼭대기 모서리에 서있다. 어디 달리기 시합에 나가는 아이처럼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그 빌딩 꼭대기에 서있다. 드. 디. 어. 나는 꿈의 세계에 입성했다.


빌딩 꼭대기에 서있는 나는 무섭지 않다.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족히 100층은 될 것 같은 높이의 이 빌딩은 유선형으로 뻗어있고, 유리창이 많은지 쏟아지는 햇빛에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윽고 나는 빌딩 다이빙을 한다. 난 내가 죽지 않을걸 알고 있다. 그냥 뛰어내린다. 꿈이니까.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던데, 아직 나 더 클 수 있는 걸까?' 꿈속에서도 키가 크고 싶은지, 이렇게 뛰어내리면 몇 센티나 더 클지 궁금해하고 있다. 허공의 바람을 가르며 내려가고 있다.

  

갑자기 저 멀리서 물이 가득 들어온다. 빌딩의 절반이 물로 순식간에 덮인다. 그 물은 강물 같다. 물이 파도치지 않는다. 물이 수족관의 물처럼 정적인 느낌이다. 나는 아무 장치도 하지 않았는데, 물속에서 태연히 숨을 쉰다. 심지어 눈도 뜰 수 있다. 욕조 속에서도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때도 한 번도 눈을 떠보지 못했는데, 꿈속의 나는 눈을 뜨고 그 물속 안에서 태연히 헤엄을 치고 있다. 발에 마치 긴 오리발이 달린 것 같은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 물속을 헤엄치고 있다. 내 옆에 정말 영화에서 보던 큰 심해 해양생물들이 지나간다.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큰 고래, 큰 오징어, 그리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나와 함께 헤엄을 치고 있다. 무서워서 차마 만지지 못하지만, 그냥 나를 헤칠 생각은 아무도 없다. 나는 그렇게 그렇게 그 물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이 물속의 끝은 어디일까? 그러나 물속은 부드럽다. 물은 날카롭지 않다. 물은 그냥 내 몸에 부드럽게 닿아 있다. 꿈속의 바다는 그런 바다였다. 이윽고 나는 그 바다를 급작스럽게 빠져나온다. 그 끝은 큰 어항의 끝이었다.


옆으로 눕혀진 그 큰 세상을 다 담을 듯한 그 어항의 주둥이로 나와 큰 고래도 물고기들도 다 빠져나온다. 갑자기 빠져나온 그곳은 육지다. 전쟁이 난 육지다. 이윽고 난 생각난다. 난 원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땅이 갈라지고 전쟁이 난 그 땅에서 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달려가야 한다. 갑자기 아빠 엄마 생각이 난다. 동생 생각도 난다. 같이 피난 가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 걸까? 꿈인데도 같이 피난을 가고 싶어 가족들을 찾는다. 보이지 않는다. 눈물이 난다. "어디에 있어?" 그렇게 울다 갑자기 잠에서 깬다. 베개에 내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꿈속의 바다에서 빠져나온 나는 눈물을 닦고 양치를 하러 침대 밖으로 나온다.


엄마는 주방에서 과일 주스를 만들고, 아빠는 체조를 하고 있고, 동생은 나보다 먼저 양치질을 하러 들어가 있다. 차마 창피해서 꿈 얘기는 할 수도 없다. 그렇게 같이 피난 가려고 슬퍼할 거면, 평소에 더 잘할 것을... 늘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다. 밤에만 갈 수 있는 꿈의 바다는 아직도 현실을 구분 못하고 상상 속에서 사는 유치한 나를 그대로 보여준다.


빨리 짝사랑을 그만해야겠다. 꿈보다 더 유치해질 것 같다. 어른이 되면 그때 해야지.


 


난 회사 회식에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그렇게 마시고 왔다. 그들은 왜 나를 그렇게 괴롭힐까. 말은 못 하고 속상한 마음에 누가 따라주지도 않은 소주잔에 그렇게 소주를 붓고, 남들은 취하지도 않을 잔 수에 나는 가뜩 취해 집에 온다.


다시 바다를 닮은 검푸른색 바탕에 하얀 조개껍데기 색깔이 흩뿌려진 추상화 같은 이불과 베개가 세트로 깔린 그 침대에 몸을 던진다. 화장을 지우기엔 너무 졸리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어야지..


어린 날 보았던 그 칠흑 같은 밤바다가 나타난다. 밤바다 위에 난 멋진 배를 타고 있다. '이 배 어디서 봤는데.., 분명히 봤는데..' 생각은 나는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다. 흰 돛이 너무 멋지게 펼쳐진 큰 배다. 그 배 위에 내가 있다. 파도가 넘실 댄다. 배도 파도를 타고 넘실 대고, 나도 흔들흔들한다. 배 위에 내가 있다. 계속 흔들린다. 이제는 이 배에서 내리고 싶다. '난 바다 한가운데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내리지...'  


순간 꿈에서 퍼뜩 깨어난다. 속을 게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화장실로 달려간다. 울렁이던 내 속은 꿈속에서 파도를 타던 그 배였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다. 꿈속의 그 배는.. 어릴 적 친집 찬장에서 보았던 그 양주병의 그 배였음을.


그렇게 난 30대의 꿈의 바다 속을 빠져나온다. [밤의 바다. 끝.]


그 양주... 이미지. 퍼온 출처는 사진에 표기됐으므로 생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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