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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Nov 15. 2023

내년의 다이어리

아날로그의 매력은 쇼핑을 부른다.

늘 그 해 연도의 숫자가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다음 해가 코앞이다. '2023'도 어색해 식품 유통기한을 살필 때 다시 돌아보곤 했는데, 이제는 '2024'로 갈 날이 50일 정도 남은 것 같다.


겨울은 아날로그 감성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괜스레 알록달록 두툼한 털실 제품도 기웃거리게 되고, 근처에 가지도 못했으나 스위스에나 있을 법한 모닥불이 있는 통나무 집도 떠올려 보고, 그 앞에 마시멜로우를 듬뿍 넣은 코코아나 시나몬 스틱이 담궈진 뱅쇼도 마셔보고 싶어 진다.


요즘 백화점들마다 경쟁적으로 유니크한 크리스마스 데코를 큰돈을 들여 설치하고, 이걸 즐기기 위해 집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OTT를 보던 사람들이 대기표까지 끊어가며 그곳을 찾아간다. 따뜻한 레드와 포근한 눈 같은 화이트, 추운 계절에도 가늘고 뾰족한 전나무의 그린은 그곳에서 빠지지 않고 자리한다.


집에 있더라도 우리는 아날로그를 옆에 두고 있다. 포근한 이불속에 몸을 집어넣고는 옆에는 고구마, 귤, 붕어빵을 챙겨놓는다. 확실히 아날로그가 승기를 들 수 있는 게 겨울 갬성~이다.


11월이 되면 자동적으로 내년의 다이어리 탐색에 들어간다. 다꾸족(다이어리를 꾸미는 사람들)은 아니다. 글씨도 막 쓰고, 일정이나 할 일 등을 체크할 뿐인데, 그래도 옆에 두기에 괜히 맘에 드는 다이어리를 고르는 건 꽤 신중한 일이다. 다꾸족에게는 정말 중요 이벤트다.


작년까지는 꽤 비싼 다이어리를 사용했는데, 올해는 내 마음이 아날로그에 레트로 감성까지 더해졌다. 그냥 예전에 보험사나 회사에서 영업용으로 나누어주던 얇은 가죽에 한문 글씨가 있는 그런 가벼운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값없이 받기도 했는데, 요새는 그냥 산다. 내 취향에 맞춰서 다이어리가 쥐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이어리를 받을 만큼 어디에 실적을 쌓지도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그때가 그립다. 이번 내 감성이 그래선지 공짜로 어디선가 그 옛날 수첩이 들어왔으면 했지만-,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국내의 전통을 자랑하는 다이어리 회사에서 주문했다. 사이트를 들어가니 내가 딱 기다리던 고 녀석!이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다이어리 값에 1/3밖에 안 하는데, 내 취향은 다 맞춰주니 올해는 내 취향이 실속 있어진 것 같아 은근히 흐뭇하다.


그리고는 얼마 전 처음 알았는데, 나의 가장 쿨한 친구가 다이어리에 마음을 담은 일기를 쓴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알고 장난을 치자 캠핑 가서 지난 다이어리를 모닥불에 태우겠다는 귀여운 나의 쿨한 친구에게- 나의 스*사 프리퀀시를 올해도 전달해 주었다.


일기 또 쓰라고 보낸다. 그리고 지난 다이어리는 절대 모닥불에 태우지 말고 금고에 보관하라고 말이다. 혹여 너와 내가 말했듯 이 세상의 마지막 날, 취향 일치로 마지막에 먹고 싶은 그 음식- 떡볶이를 같이 만나 먹게 되거든- 너의 금고를 열어 너의 다이어리 속 비밀을 공유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그날은 여름이 아닌 겨울이어야 할 것이다. 감성이 그렇다. 꼭 그 스*사의 비싼 다이어리를 받아 내년에는 기쁜 마음의 고백들을 적어나가길 바래어본다. 친구야.


그래도 너무 레트로라 조금은 심심한 다이어리에 그동안 쟁여둔 캐릭터 스티커를 열심히 붙였다. 되는대로 붙이니, 꼭 되지도 않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는 꼬맹이가 된 것 같지만, 나름 화사한 다이어리가 됐다.


나랑 똑같이 붙이는 사람은 없을 테니, 나만의 다이어리가 됐다. 우리 내년에도 잘 지내보자! (뒷면은 스티커 붙이기의 특허(?)를 내기 위해 공개하지 않는 걸로~)


남편이 살이 많이 빠져서, 예전 바지는 입으면 그냥 내려가고, 중후한 멋을 내던 겉옷들은 무겁게 됐다. 요새는 남자용 기모 청바지도 나와서 참 좋다.


체면을 차리며 자신은 기모 따위는 안 입을 거라던 라떼 남편은 한번 입은 후, 겨울이 되면 기모청바지를 찾고 있다. 쇼핑 리스트에 남편이 군대 제대 후 잠시 보고 못 본 허리사이즈의 기모청바지가 올라간다.


아픈 판국에 무게를 지고 다닐 수는 없다. 가벼운 파카도 좋아하는 색깔로 주문해 줬더니, 너무 좋아한다. 아마 그냥 건강한 상태였다면, 왜 입는지 이해 못 했을 옷이 올해는 다 이해가 되게 되었다. 아마 남편은 이 투병생활이 끝나면, 쇼핑을 하는 관점이 바뀔 것이다.


잠깐 볼일을 보다 만난 친구는 매일 스콘을 굽는다는 아파트 상가의 작은 카페에 나를 데려갔다. 직접 구운 그 스콘에 버터와 딸기잼이 올려져 나오는데, 커피와 함께 음미하니 브리튼(britain) 감성에 녹아든다. 맛있어서 더 행복하다. 커피에 살짝 적셔진 에이스 비스킷처럼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내년의 다이어리는 아날로그 감성 쇼핑의 시작이었다.

  


시나모롤이 다이어리에 반짝이며 안착했다!


그래, 이 맛이야! 정겨운 다이어리 내지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난 옛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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