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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Jan 09. 2024

38. 마음의 숨을 내어뱉다.

통증. 복수. 펜타닐 패치. 요즘의 일상.

'집'이라는 섬이 있다.


어딘가를 다녀와서 몸을 뉘일 수 있고, 가족과 마주할 수 있는 '집'이라는 섬이 있다. 그 섬에 우리는 마치 갇힌 것 같다.


연말에 한 번 그리고 얼마 전 한 번. 그렇게 남편의 눈물을 봤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고 이불 안을 눕지도 앉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너무 아파' '왜 아프지?'를 연발하며 남편의 눈에는 여과 없이 고통의 눈물이 배어 나왔다.


얼마 전, 남편은 윗 배가 이상하다고 했다. 뭔가 딱딱하면서 부풀어 오른 것 같다고 했다. 마약 진통제의 부작용인 변비인가 싶었지만, 남편은 뭔가 다르다고 했다.


만져본 남편의 윗배는 살짝 보다 조금 더 부풀어 올랐다. 하루에 뉴케어 2개를- 좀 더 여건이 되면 단백질 요플레 1개 더 먹는 수준으로 간신히 먹고사는데, 배가 부른 건 말이 안 된다.


남편도 나도 복수를 의심했다. 그래도 어떤 경우는 가스가 찬 케이스가 있다고 해서- 그래도 가스였으면 했다.


가스도 좋은 건 아니지만, 남편이 거의 24시간 못 움직이고 있으니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러면 좀 억지로 걸어보게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했다.


내과에 가 검사를 하니 복수가 1.5L 정도 찼다고 했다. 선생님이 이 정도면 고통이 상당히 심하고, 뭘 못 먹을 거고, 먹어도 영양분 흡수가 안 됐을 거라고 했다.


마약 진통제 복용 횟수도 듣더니, 증량해야 한다고 환자가 많이 힘들 거라고 했다.


아직도 임상 스크리닝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복수를 확인하던 그날, 임상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간호사님의 잘못은 아니지만-


항암치료를 표준이든 임상이든 빨리 해야 하는데 결과가 너무 지체되는 건- 그 임상약 회사가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 아니냐는 과격한 표현을 써서 말했다. 그리고 또 울었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미안했다. 간호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근데, 정말 우리의 상황은 좋지가 않아서, '우는 아이 젖 한 번 더 준다'는 옛말에 기대 그렇게 울며 하소연을 하고 끝에는 미안하다 했다.


복수는 3가지 정도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크게 우리 집 상황과 관련해서 내가 파악한 건 2개였다.


하나는 간 기능 이상, 다른 하나는 복막 전이. 남편이 간전이가 가장 빠르게 진행돼서 간이 원인이라도 이상할 게 없지만, 만약 간이 제기능을 아예 못한다면, 남편은 항암을 못하게 될 수 있다.


복막 전이는 복막에는 혈관이 없다. 항암제의 영향력이 미치질 못한다. 전이암이 뭉쳐 있는 경우면 외과적? 방사선? 적 조치로 제거가 가능한 것도 같았지만, 보통은 흩뿌려져 있어 손쓰기 어렵다고 한다.


복수는 2L 이상이 되어야 복수 천자를 할 수 있다. 2L 이상이 되어야 안전히 뽑을 수 있는 단계가 되는 듯했다. 그전에는 이뇨제로 빼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반강제로 뽑는 거고, 이 과정에서 단백질 소실이 있어 잘 먹어야 한다.


현재는 3L 이상 빼야 알부민이 처방된다. 그리고 여러 번 뽑는 건 좋은 일이 아니며, 너무 복수가 빠르게 차거나 자주 방문하게 될 시는 배액관이 설치될 수 있다.


복수가 차는 속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도 알 수가 없지만, 차면 찰수록 호흡이 어려워지고, 고통은 배가 되고, 먹지 못한다.


인터넷을 치면 정보가 나오기는 하지만, 혹시 내 글을 췌장암 환자의 복수 문제로 보는 분이 있다면, 참고해 대응을 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정리해 보았다.


다른 암 종의 경우는 의사와 좀 더 상의해서 알아보셨으면 좋겠다. (다른 암 종이라도 기본적인 내용은 비슷할 거라고 본다. - 단 치료법이 좀 더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남편의 전이암들 중에 피하고 싶다고 생각 한 건, 뼈전이와 복막전이였다. 뼈전이는 고통이 심하다 해서 그랬고, 복막 전이는... 치료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좀 들었다.


복수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처음으로 췌장암으로 가족을 보낸 분께 연락을 드렸다.


사실 그분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같은 환우의 아픔을 더 헤집는 것 같아서 정말 연락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정한 그 선을 넘어야만 했다.


예상했던 대로 복수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건널목에서 신호등의 초록불이 점멸돼 가는 그런 단계로의 진입 같았다.


그 분과 대화하며 공통은 '고통'을 어떻게 줄여주느냐- 였다. 다른 암도 괴로운 것 안다. 아픈 것도 안다.


췌장암이 근데 다른 암보다 좀 더 고통스럽다고 많이 알려져 있다. 그 고통을 지켜보는 앞에서는 모든 게 욕심 같이 느껴진다.


더 살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욕심 같고, 배가 고픈 것도, 고프지 않아도 살아야 해서 뭔가 입에 넣는 것도, 재밌는 걸 보며 웃는 것도, 잠이 오는 것도. 호사다.


그리고 내 걱정을 하셨다. 같은 췌장암 환우 보호자 입장이다 보니,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마음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그때 본인은 어떤 심정이셨는지.


그리고 대응이 필요할 때, 방법을 모르겠으면 상의해 신다고 언제든 연락하라 하셨다. 본인 마음이 채 여물지도 않으셨는데 말이다.


남편이 쓸 수 있는 마약 진통제를 최고치로 사용하고도 몸이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아팠다. 아픈 정도를 넘어서 평상시 강도가 아무리 높아도 10점 만점에 5-6이었는데, 나중에 말하길 7-8이었다고 할 정도로 아팠던 날이 있었다.


임상 결과가 나오지 않아 외래 진료도 잡힌 게 없었고, 응급실은 이제 집 근처 병원은 가지 못한다. 암환자의 전원은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결국 난 멀더라도 응급실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했다. 다행히 그 20분 사이에 극적으로 남편의 고통이 잦아들었다.


급히 외래를 잡아 진통제를 상의하고 우리는 드디어 펜타닐 패치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응급으로 CT도 찍었는데, 빠르게 결과를 확인해 주시겠다 했다.


선생님의 조치에 이제는 피해오던 펜타닐을 쓰게 됐는데도. 이제 CT결과에서 무슨 나쁜 얘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그냥 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의사 선생님이 바쁜 중에 들여봐 주고 빠르게 움직여 준 것뿐인데도, 그게 보호자인 내 마음에는 위안이 되었다.


남편의 고통은 밤에 심해진다. 잠을 들지 못한다. 지속형 마약을 먹고 2-3 시간 뒤에 잠잠해지면 그제야 억지로 뉴케어를 천천히 마신다.


통증과 배부름과 약간의 메슥거림이 늘 있어서, 먹는 건 두려움이다. 물 마시는 것조차 그렇다. 그리고 그걸 먹고 아파서 아이알코돈(속효성 마약)을 먹기 시작한다.


나는 우선 잠을 잔다. 그리고 알람을 맞춰놓고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남편의 상태를 체크한다. 가끔은 알람 전에 그냥 깨기도 한다.


어디선가 남편의 신음소리가 들리면 일어난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약을 챙겨주고, 아픈데 본인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을 눌러주며 기도해 준다.


그러다 잦아들면 다시 가서 잠을 자고 또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지속형 마약을 먹기 2시간 전부터는 30분 단위의 알람이 세팅되어 있다. 가장 아픈 시간이어서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아침 8시에 지속형 마약을 먹는데, 보통 9시 가까이 되어 통증이 잦아들고 남편은 그제야 잠이 든다.


잠을 들어 고통을 잊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후 3시가 되기 전에는 깨우지 않는다. 못 먹는 것보다 고통에 찌들어, 이제는 고통이 지겹고, 고통이 있으니 그 어느 것에도 흥미를 잃고, 조금은 무기력해지는 남편을 보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오후 3시에 눈을 뜨는 건, 그동안 잠과 먀악으로 잊은 고통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얼른 뉴케어를 들이밀고, 남편은 또 고통과 사투하는 시간을 그렇게 시작한다.


가끔 혼자 조용히 있는 남편이 이상해서 가보면 정신을 잃고 아파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픈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신음소리도 못 내고 그저 정신을 잃고 땀을 흘리고 있다.


흔들어 깨우면 작은 소리로 아프다고 겨우 말한다. 빨리 타월을 가져다 땀을 닦아내고, 약을 챙기고, 남편 옆에 있어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남편과 나는 '집'에 갇혀버렸다. 소음이 커지면 남편의 신경이 예민해져 더 힘들어해서 사람들과의 전화 통화도 줄였고, 톡 대화도 내가 집안일해가며 남편 케어하면서 할 여유가 적어서 많이 줄였다.


다리 근육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남편이 몇 번 밖에 나가 걷는 걸 시도했다. 걸어봤자 10분 걷는데, 통증으로 걷기 어려워 아마 정상인이 걸으면 5분 코스일 것이다.


공기가 상쾌하다고 좋아하고, 바깥의 이것저것을 보면서 남편의 마음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지금 이 일은 혹시 잠시 넘어가는 작은 산이라면 좋겠다. 아직도 남편과 걷고 싶다. 이 인생길을. 남편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나와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점잖게 꿋꿋이 이 고통을 잠잠히 견뎌가는 남편을 존경한다.


써 내려가지 않으면, 너무 힘이 들어 마음의 참았던 숨을 내어 뱉는 마음으로 오늘의 일기를 뒤죽박죽 쓴다.


* 덧붙임. 펜타닐 패치에 관해.

펜타닐 패치를 이용하는 암환우가 있다면, 펜타닐이 빠르게 흡수될 수 있으므로 전기장판과 함께 쓰거나 핫팩을 댄다면 피해야 한다고 하네요. 패치 부착 시, 고온의 열 노출은 피해야 합니다.


 암환우들이 추위를 많이 타지만 펜타닐도 위험도가 높은 마약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정도 고통이... 마약 중독을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까지 삶의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제가 아는 주의 사항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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