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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Jan 16. 2024

39. 경적. 클락션.

고장 난 분노는 마음의 먼지만 남겼을 뿐.

원래 자동차의 경적(클락션)은 "위험해요"를 알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사실 대다수의 "빠앙-" 하는 경적 소리는 분노의 표시다. '당신 뭔데 새치기해.' '어디서 여기를 끼어들어.' '왜 빨리 안 가는 거야.' '너 때문에 놀랬잖아. 죽으려고 그래?' '내가 갈꺼니너는 비켜' 등등.. 나도 그랬고, 남들도 그랬다.


서로 대화할 수 없는 도로에서 우리는 경적소리로 말을 하는데, 그 경적소리는 대다수 분노다. 결국 도로 위의 차들은 분노의 질주를 하는 셈이다.


우리는 경적 소리로 타인을 가르치려 한다. 도로의 예절과 질서는 이것이다-를. 그리고 이 사회에서 남들의 시간을 빼앗는 운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기에서 사회 적응을 배우세요-를.


어느 날부터 그런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경적을 울리는 걸 좀 참게 되었다. 경적 소리를 듣고 뉘우치냐면 사실 잘못하거나 서투른 게 아닌 이상 뉘우치지 않는다. 결국 효과적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공포를 살짝 느끼고, 그 후에는 수치감이 느껴지고, 그 뒤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분석하는 시간에 돌입하다가-


최종적으로는 내 잘못이 아니네. 경적을 울린 저 사람이 별로네- 정도 된다. 좀 참아주면 안 되나? 생각하게 된다.


마치 범죄자들이 그냥 상황이 내몰려서 그랬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다. 내 죄가 그렇게 큰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서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요새 10-20대들은 부모님의 간병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한다. 심심치 않게 젊은이들 있는 카페에서 가끔씩 그런 을 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을 때도 있다.


라떼는..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면, 고려장인줄 알았다(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감당이 안 되는 부모를 몰래 산속에 갔다 버리는 그런 불효인 줄 알았다. 그리고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종이 신문의 사회 비판 제목으로 써져 있던 기억도 난다.   


20대 인구보다 70대가 더 많고, 1인 가족이 현재 가족 구성의 대표적 형태라 하니, 간병. 병이 들어 그 후는 어떻게 될지 진심으로 우리는 고민해보지 아니할 수 없다.


나도 무척 레벨이 낮은 단계의 간병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의도치 않게 간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족이 여럿 있고, 서로 도와준다고 해도 간병은 결국 어느 가족 구성원 1명의 몫이 된다고 한다.


경험해보니 왜 그렇게 되는지 알 것 같다. 그렇지만,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간병의 원천은 사랑일 것이다. 나도 남편을 사랑해서 간병(?) 간호(?)한다. 정확히는 "옆에 있는다".


인간의 사랑이라 이기적인 부분이 분명 있을 테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사랑의 다른 모습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오늘은 남편의 복수량을 재체크 하기로 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뉴케어 2개를 겨우 먹는 게 하루 식사의 전부라서- 그리고 기운이 떨어져 목소리의 성량이 줄어들었고, 거의 고통을 베이스로 깔고 잠을 자는 게 하루 일과라.. 어떻게든 영양 수액을 놓고도 싶었다.


병원을 가기 위해 마약 진통제로 고통을 잊으며 자는 낮 시간대를 양보하고 남편은 일어났다. 몇일만의 외출이라 그간 못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이 나를 불렀다. 처음으로 말했다. 부축해 달라고.


물기를 빼려 걷어올린 트레이닝 바지 아래로, 뼈만 앙상히 남은 남편의 다리를 보았다. 우리 남편 비만이에요- 말하던 게 1년 전인데. 근육 없이 뼈만 남은 다리로 남편이 욕실을 나왔는데 눈물이 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다.


너무 어지러워해서- 원래 다니던 병원이 집에서 1시간 거린데, 주변 지인에게 소개받은 좀 더 가까운, 처음 가보는, 동네에 있는 약간 큰 병원에 갔다.


발렛이 된다 해서- 사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가는데, 택시도 애매하고, 남편이 기력이 너무 없어서 우리 집 하나뿐인 대형차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기계식 주차라 우리 집 차는 또 들어가지 못해 병원 앞 도보 자리에 사선 주차를 안내받았다.


요새 같은 암환우들에게 비상인 약이 몇 개가 있는데 - 하나는 '5-FU'이고 다른 하나는 '알부민'이다. 5-FU는 수급이 거의 못되다 요새 풀리긴 했으나 그나마 양이 적어서 대형 병원도 어렵게 구하고 있다고 브런치 스토리에 나온 OncoAzim님(현직 의사)의 글에서 읽었다.


5-FU는 췌장암의 가장 강력한 항암제인 폴피리녹스의 구성성분인데, 이로 인해 항암 일정이 지연되는 등 소동이 있었다. 알부민은 왜 재고 부족인지 원인은 잘 모른다. (5-FU의 부족 사태 원인은 OncoAzim님의 글을 통해 이해했다.)


몇 주전 복수를 처음 확인 할 때, 어느 환자가 복수가 5L인데 알부민을 처방받아야 하는데 못해서 복수를 안 빼고 집에 가는 걸 보았다. 지금 알부민의 재고는 그나마 소위 Big 5 병원에 있으며, 이를 맞기 위해 응급실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복수를 빼기에는 양이 또 애매했고, 지금 남편의 복수와 영양 부족 사태를 한 번에 해결할 키는 알부민이라 결국 그냥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요새 남편이 병원을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매우 친절하다. 아마 이 상황에서도 이겨 내는 게 참아 내는 게 어떤 건지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실제.. 지난주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작년에 병원을 옮길 때부터 남편의 기대 여명은 2-3 달이었다는 것이었다. 복수가 차서도 아니고, 항암제를 해도 안 해도 2-3달이 의학상의 기대여명이었다.


남편의 암은 복막에도 퍼졌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말기암 환자가 되었다. 주변 경험자들이 마지막을 대비해 놓는게 좋을 수도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지난주도 또 눈물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남편이 힘들까 봐 배려해 준다. 그리고 남편의 증상들에 대해 최대한 친절히 얘기해 준다.


고마웠다. 그 누구도 기대여명과 말기라는 걸 입 뻥긋하지 않았다. 지금의 증상을 해결해서 잘 견뎌서 항암을 하자고 말해주었다.


복수가 차서 내가 주치의 선생님께 물었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그제야 기대여명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건 의학적으로 그런 것이니, 너무 쉽게 단정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상태가 안 좋으나, 끝까지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몇 가지 치료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지난번 임상은 탈락되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버티며 기다린 결과가 그랬다. 남편에게 온 3가지 선택지는 뭐가 돼도 마지막 끈이었다. 하나가 끊어지고도 살아남으면 다른 하나, 다른 하나가  끊어지면 다른 하나. 그리고 최종 끈이 떨어지면 치료 종료였다.


그리고 그 끈들을 붙잡은 사이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보아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 와중에 정말 신기했던 건, 남편의 기초 화학 검사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란 것이었다. 그래서 항암 선택지를 더 받을 수 있었다. 암 지표 성적은 나쁘고, CT결과도 좋지 않았지만, 항암을 할 기초 체력은 되는 것이었다.


이미 기대여명이 2-3개월 인 게 작년 가을부터였다면, 지금의 삶도 덤이구나 싶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남편과 나는 미리 호스피스를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작지만 큰 기적은 지금도 남편이 살아있고, 기초 체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초 체력이 아직 있지만, 먹지 못하면 그것의 유지가 만만치가 않다. 뉴케어 2개는 너무 심한 상태라.. 영양 수액을 맞고 싶었지만, 복수가 심해질 수 있고, 부종이 생길 수도 있고, 알부민 없이는 그 어떤 조치도 큰 의미가 없어서 그냥 병원 문을 나섰다.


남편이 어지러워하고 기력이 없어했다. 병원 오는 길 운전은 어떻게 남편이 했는데.. 사실 이것도 대단하다. 말기암 환자가 운전을 한다니.. 남편이 갑자기 양곰탕이 먹고 싶다 했다.


남편이 너무 못 먹어서..- 한 수저만 먹어도 대령할 테니 먹고 싶은 거 다 말하라고- 수도 없이 말해놓은 터라.. 양곰탕 집에 가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남편이 힘들어해서 운전을 못하는 나지만, 그 도로에서 내가 어떻게든 차를 빼서 운전해 가보려고 했다.


근데 그 자리가 학원이 있는데, 학원 차 주차 문제로 평소에 트러블이 많은 걸 저번에 우연히 알게 된 적이 있었다.


하필 그 시간이 학원에 아이들이 들어가는 시간이라 계속 학원 버스가 오고, 아이들이 뛰어서 학원에 들어갔다. 좁은 도로 폭에서 나는 낑낑 대며 한참을 아이들과 걷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차 긁히지 않게 신경 쓰며 천천히 움직였다.


결국 어찌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운전대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뒤에서 사람들이 못 지나가고 많이 기다렸다고- 나에게 화를 내었다. 운전을 못하는 내 탓이었다.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차를 빼는데, 그 사이로 쌍둥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아기 엄마가 전화기를 들고, 이 상황에 대해 나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이 이 도로를 쓰는 것에 대해서 불평했고, 다음엔 자기를 기다리게 한 나에 대해 불평했다.


그냥 지나가듯 하는 말이었으면 넘겼을 텐데, 나 들으라고, 내 얼굴을 확실히 분노에 찬 얼굴로 빤히 쳐다보면서 50c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내 얼굴을 쳐다보며 전화 통화를 빙자해 나에게 화를 낸 거다.  


그 순간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성을 잃었다. 지나가는 그 여자에게 "저기요"하고 불러 세웠다. "저희 암환자 치료받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여자는 "나도 우리 애들 병원 가는 거예요"라고 답하며, 암환자 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고 가려고 했다.  


순간 복받쳐 말했다. "저기요, 저희는 말기암환자예요. 그렇게 말하시면 안돼요." 그 여자는 나를 거들떠도 안 보고 아기 유모차를 밀고 그대로 가버렸다.


사실 암환자라는 사실이 어디 가서 특혜 받을 일은 아니다. 무조건 타인이 양보를 해줘야 하고 배려를 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군들 세상 살아가는 게 힘들지 않겠는가.


임산부도, 독박 육아를 하는 아기 엄마도, 치사한 일을 당한 직장인도, 억울한 상황에 놓 사업자도, 원하지 않는 빚이 생겨 삶이 쫓기는 사람들부터.. 사실 따지자면, 세상 사는데 힘들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중에 들어보니 기다린 사람 중에 그 사람이 가장 조금 기다린 사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차를 빼는 내 차에 대고 나쁜 소리를 이미 하고 있었는데, 내려서 직접 당하게 된 것뿐이었다.


합리적으로 내 말은 말이 안 된다. 그녀는 도보가 이렇게 쓰이는 게 화가 났고, 자신이 어쨌든 기다린 게 화가 났고, 어찌 보면 모자란 나의 운전 실력을 흠잡은 것이다.


근데 거기에 대고 나는 말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우리는 말기 암환자라고.


그 말에는-우리가 도로를 조금 전세 내서 쓴 걸 그러니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 나도 운전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고.-라는 변명이 담겨 있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남편이 듣고 기분이 상해 양곰탕을 먹지 않을까 봐 아무 말하지 않고 차에서 눈을 감고 양곰탕 집까지 갔다.


양곰탕을 시키고는 이내 전화기를 들고 나와 참았던 설움을 그리고 나의 부끄러움을, 후회를 엄마에게 말하며 양곰탕 집 앞에서 울었다.


그 자리가 이미 원성이 자자한 자리란 걸- 잘 가는 동네가 아니지만, 나도 어쩌다 알고 있었는데.. 남편 힘들까 봐 미숙한 운전 실력의 내가 차를 빼려던 시도를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고 말할 건 없다.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


단지, 남편의 앙상한 다리를 보고 참았던 눈물이. 어지럽다고 말하며 쉽게 일어나지 못하던 남편의 모습이. 채 몇 숟가락을 먹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 놓고  양곰탕 그릇이. 남편의 기대여명이 그렇게 짧다는 이야기가.


그저 내 마음 마구 압력을 넣어 부풀려진 풍선이 되게 하여- 그냥 내가 미안합니다. 내지는 그냥 넘어가면 될걸.. 그 경적 소리에. 그 클락션 소리에 풍선이 빵. 터져버린 것뿐이다.


무엇에 대해 난 분노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가 울린 경적에 되받아친 내 경적 소리와 함께. 그렇게 잠시 경적 소리가 울려 그 도로에는 터져버린 마음의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을 뿐이다.


한심하지만, 되돌이킬 수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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