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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100back2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과연?

by 크게슬기롭다

이미 충분한 것을 가졌으니 지금 이 상태로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곤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건 노력이잖아, 그거 그만해. 그냥 너는 있는 그대로가 괜찮아.라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 분노가 어젯밤 잠을 설쳤기 때문인가 싶어 몇 번을 곱씹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게 느꼈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미 나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정말인가? 아닌가? 세상에나, 정말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과거의 내 눈으로 보면 그건 다 잘못된 이야기고 거짓이다. 그렇지만 이미 '무언가를 가진'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무엇일까.


한번 더 생각해 보니, 나는 내가 '갖고 싶었' 던 게 몇 개 있었다. 내가 이미 가진 것 말고, 내게 없어 갖고 싶어 하던 것 말이다. 20대 때나 아님 그보다 더 10대, 더 어린 유아기 때... 내가 받았었다면 이미 충족되고 남았을 어떤 '인정' 들 말이다. 그 인정들이 아직 구멍 나있는 탓에 나는 그 구멍만 보며 살아왔던 것이다.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셔가며, 그래서 그 구멍이 넓어지고 있음에도 모르고 계속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내가 가진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쩌겠는가, 빛은 불투명한 천 사이 구멍으로 오는 것을. 결국 구멍이 더 잘 보인다는 것도 자연 현상일 것이다.


이 고민을 시작하게 한 영상, 그 영상을 내게 보내줬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난 가진 게 없어서 너무나 초라할 뿐이라고. 자꾸 이렇게 나를 인정하란 말을 하면, 나는 그냥 '포기해 버리란' 말로만 들려서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늘 두 가지 생각이 들어. 너는 그 두 가지 생각으로 수영을 하는 거야. 왼팔, 오른팔 저어가면서."


한쪽 팔로만 수영을 하면, 어느 한 점에서 원을 그리며 뱅뱅 돌게 된다. 두 팔을 번갈아가며 저어야 앞이든 뒤든,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대로 괜찮다는 말, 그리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서로를 공격하고 무찔러야 하는 말이 아니라, 평행선처럼 주욱 그려져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나는 그 평행선 사이에서 통통 튀는 작은 공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어느 때는 '괜찮아 그대로 있어'라는 말에 조금 더 가까이 간다. 그러다 그 '괜찮아 벽'에 부딪히면 그 각도대로, 그러나 속도는 약간 주춤해선 '목표를 향해 돌진' 하란 말에 가까이 간다. 또다시 '노력 벽'에 부딪히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간다. 그 두 가지 생각이 있으니 자꾸만 내가 부딪히면서도 어떤 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벽이 견고하길, 그러나 그 벽에 자꾸 부딪히는 '나라는 공'도 점점 커지길 바란다. 그 벽을 깰 수 있을 정도로 확신이 있는 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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