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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Nov 25. 2023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 6

<짧은 소설 쓰기>

소설 속 모든 내용은 허구에 기반합니다. 극 중 몰입을 위해 알려진 회사명을 기재했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 이야기


해당 물건의 소비 예상 시간을 잡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3차원의 축으로 쓰기에 꽤나 괜찮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세제 같은 기성품이고 생활 용품이면서 쓰면 없어지는 상품들이어야만 그런 ‘시간계산’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소비 시간’ 중에 다른 물건을 산다면 의미가 없어지는 이야기였다.



답답해진 마음에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내려놓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된 것이다. 짐을 챙겨선 점심을 먹으러 바깥으로 나왔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식당들에 괜스레 눈길이 갔다. 평소 가던 옆 건물 구내식당으로 들어가서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키오스크에 있는 여러 메뉴 중에 하나를 고르는 사람들. 다들 배가 고프니 밥을 먹으러 나온 것이다. 구내식당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팔고 있는 음식들을 또 하나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번호표에 따라 그 밥을 받아 들고선 맛있게 먹는다. 제육덮밥 세트와 돈가스 세트가 하나씩 그들 앞에 놓여있다. 저건 저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취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제육덮밥을 좋아하기에, 누군가는 둘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이 저 메뉴이기에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한번 더 생각한다. 만약 저 사람의 평소 식습관을 알고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혹은 그 사람에게 물어봐도 될 것이다. 그 사람의 대답과 실제 선택이 다르다면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그게 그 사람에 대한 내용이든, 일반적인 사람들의 패턴이든 말이다. 즉, ‘경향성’을 파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누군가가 그의 앞에 나타나 음식을 가져다 두었다. 고개를 드니 나은이었다.


“팀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신 거예요? 제육 다 식어요”

말을 던진 나은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에게 물었다.

“너는 돈가스를 좋아하니?”

“아뇨, 좋아하는 건 아닌데 오늘 그냥 제육이 안 끌려서요”


오늘, 그냥, 안 끌려서. 이건 다소 애매한 단어들이다. 안 끌린다는 건 무엇일까. 평소에 끌리지 않던 음식을 먹던 습관 때문이었을까? 그건 왜 그랬을까. 오늘 아침에, 혹은 어젯밤에 먹은 음식 때문일까. 하지만 스스로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냥’이라는 단어로 퉁치며 자기 자신의 선택을 설명했다.


“왜? 어제 제육 먹었어?”

“네. 사실 어제 점심 저녁으로 제육이랑 닭갈비 먹었어요. 양념 잔뜩인 걸 먹으니 그냥 오늘은 다른 걸 먹고 싶더라고요. “


그냥이라는 단어가 ‘그냥’ 이 아님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말하는 습관일 뿐이었다. 사실 어제 먹었던 음식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의 선택이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건 사실 스스로도 그랬다. 매일같이 다니는 곳에서 하는 선택들의 이유를 딱히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 말을 하고 살지 않을 뿐, 선택에 대한 이유는 꼭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이유라도 말이다. 눈에 띄지 않아서, 보지 못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후보’가 되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미 머릿속엔 ‘매번 했던 그 선택’ 이 남겨져 있어서 그게 가장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설령 외부의 도움으로 후보가 추려지더라도 마지막엔 고민을 꼭 한 번씩 했다. 제육이냐 돈가스냐 처럼 말이다.


가격인지, 품질인지 따지는 사람들의 이유 말고 또 다른 차원이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을 만한 ‘선택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이유, 갖고 싶을 만한 품질이라는 이유 외에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밥을 먹었다.


“나은, 혹시 최근에 산 물건 있어?”

“흠, 최근에 산 거 말이죠. 꼭 물건 아니어도 괜찮아요?”

“응 물건 말고는 뭐가 있는데?”

“팀장님, 오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 다음 달 두 번째 주에 휴가 낼까 하고요. 비행기 티켓도 끊었어요”

“그래 이번 보고서 끝나고 잠깐 틈 생길 것 같은데, 그때 하던 거 마무리하고 다녀와. 외국 가려고?”

“네. 이미 샀어요... 팀장님이 허락해 주실 것 같아서 미리 발권했어요.”

“휴가 안 내주면 어쩌려고 미리 끊었어? 농담이고, 잘 다녀와. 그나저나 누구랑 가는데?”

“친구랑 가려고요. 일본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거대하게 꾸며놓은 데가 있는데, 거길 꼭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친구랑 일정 맞췄어요.”

“왜 그 비행기표를 샀어? 그게 가장 저렴해?”

“비행기표 찾아보니까 그 시즌엔 다 비싸더라고요. 다 그 가격이 그거예요. 친구랑 저랑 둘 다 일어날 수 있는 시간대 중에서 가장 빠른 걸로 했어요. 저희야 뭐 비즈니스 탈 것도 아니니까, 이코노미는 다 큰 차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최근에 구매한 것은 ‘비행기표’ , ‘크리스마스’라는 시즈널 한 요소 때문에 선택했다. 물론 평소에 알고 있었던 일본에 대한 정보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다. 보고서 리포팅 시즌이 끝나는 것과 맞물려 운이 좋은 상태가 된 것도 사실이다. 비행기표 정도의 상품은, 꽤나 많은 결정을 필요로 하는 상품이다. 장소, 타이밍, 같이 가는 사람, 뿐 아니라 스스로의 재정상태까지 한 번씩 돌아보아야 한다. 비행기표는 아무래도 가격과 품질, 2가지 요소 외의 영향도 많이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인 수준의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 품질도 대동소이 한 수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는 비즈니스와 이코노미를 떠올리며 품질 차이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누구일까. 비행기표 구매 시 가격/품질을 따지는 소비자는. 그리고 그런 요소는 차치하고 외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소비자는.


일본 여행에 대한 물꼬를 튼 나은은 휴가 계획을 줄줄이 이야기해 주었다. 가려고 한 곳, 갈 곳, 그곳 주변에서 먹을 음식들, 기대까지 잔뜩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다영 스스로는 이미 일본에 있는 것 같단 느낌도 들었다. 나은의 이야기는 흡사 VR서비스에 추가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잠깐 했다. 상상하기 쉬울 정도로 상세한 설명이 있다면, 관자놀이에 붙이는 기계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며 점심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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