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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Nov 11. 2023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 5

<짧은 소설 써보기>

소설 속 모든 내용은 허구에 기반합니다. 극 중 몰입을 위해 알려진 회사명을 기재했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 이야기


14일 중 첫날, 유저의 기본적인 분석 보고서 마지막 한 줄, 다영은 이렇게 적어두었다.


‘물건을 절대 사지 않을 사람들을 찾아보자’ 그 원인은 모른 채, 직관만이 담긴 멘트. 다영의 뇌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열심히 움직일 것이다. 다영이 잠을 자고 일어나는 그 순간에도, 다영의 뇌는 ‘물건을 절대 사지 않을 사람들을 찾는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리를 할 것이다. 그 기대를 하며, 다영은 보고서를 정리하고, 퇴근했다.



아침에 일어난 다영의 머릿속엔 질문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물건을 안 살 사람’. 그는 누구일까, 하고 계속해서 되뇌였다.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씻는 중간에도 계속해서 물건을 사지 않을 사람이 누구일지 떠올렸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았다. 평소에 사용하던 샴푸와 린스는 지난번에 샀던 것과 동일했다. 다영은 어떤 브랜드에겐 ‘물건을 절대 사지 않는 사람’이고, 또 누군가에겐 ‘항상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건을 절대 사지 않는 사람이라는 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는 한참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사고 싶어한다는 건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지하철을 내려서 출구로 걸어갔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오른쪽 - 왼쪽 - 기둥을 지나 왼쪽으로 빠져나가 두 번 꺾어 올라가는 길, 그는 그 길에서 팔고 있는 음식들에 처음으로 눈길을 보냈다. 출구 쪽에 이렇게 많은 가게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손가락 길이보다 조금 더 긴 김밥과 매운 어묵, 떡볶이를 같이 팔고 있는 집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이제 막 구운 빵이라는 간판이 서있었다. 가까이 가니 따끈해 보이는 빵들이 잔뜩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몇몇 빵들은 이제 좀 식었는지 비닐 안에 들어가 있었다. 주인은 그 옆에서 이제 갓 나온 그것들을 계속 포장하고 있었다. 다영이 가까이 가자 ‘빵 드릴까요?’라고 물어봤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그 질문에 흠칫 놀란 다영은, 출구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지하철 바깥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스박스, 스티로폼 박스를 하나씩 쌓아둔 위로 투명 락앤락 통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김이 서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막 한 음식 같이 보였다. 그 시선 끝에 있는 종이 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지금 막 집에서 만든 삼각김밥! 2,500원!!’이라는 말 아래엔 참치맛, 매운맛이 있다며 작은 검정 삼각형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눈코입과 팔다리까지 있는 삼각김밥은 신이 난 듯 팔을 벌리고 고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옆을 지나가면서 다영은, 스스로 ‘물건을 절대 사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찾던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걸 보았지만 구매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 필요 없었다. 그걸 가만히 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난 몇 년 간 출근을 위해 그 길을 걸으면서 빵집과 김밥집에 가까이 다가갔던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매일 집에서 밥을 먹고 출발하는 사람이었고, 회사와 가까워질수록 회사일을 떠올리면서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이미 충족한 욕구는 더 이상의 힘이 없다. 게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가득 찬 머리는 또 다른 욕구를 들여다볼 공간도 없다. 뻔한 이야기였지만 오늘의 다영에게는 꽤 새롭게 다가왔다.


다영이 다시 데이터베이스를 들여다보았다.


물건을 절대 구매하지 않을 사람, 이라는 정체성도 아마 그 물건 판매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판매자가 누구냐에 따라 충성고객이 다르듯 말이다. 3차원의 관점에서 고객을 구분한다는 건, 물건을 아예 단 한 번도 구매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야 할까? 혹은 그 물건만 구매한 적이 없는 사람이어야 할까? 이미 구매한 적 없는 물건에 대한 추천을 통해 매출로 연결시킨 알고리즘은 회사 안에 충분히 구현되어 있다. 그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아예 그 카테고리를, 아니 들어와서 아무런 카테고리에서도 구매를 하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다.


COUNT(purchase_count) = 0이라는 글자, 그러니까 아무런 구매도 하지 않은 사람을 검색했다. 그 수는 회사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의 약 80%나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아마 오늘’ 구매할 사람과 ‘오늘 구매하지 않을’ 사람이 나눠질 것이다.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욕구가 이미 충족된 사람들, 그게 가방을 갖던 옷을 입던, 먹어야 할 사과나 저장해두어야 할 휴지들을 ‘이미 가진’ 사람들은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만족한 사람들을 찾기로 했다. 누구일까?


이전에 이미 물건을 산 사람들이었다.


어제까지 물건을 산 적이 있는 사람은 이제 앞으로 당분간 물건을 ‘절대’ 살 일이 없다. 그들에겐 그 물건을 ‘써야 할’ 생각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최근에 물건을 산 적이 있을수록 더욱 강할 것이다. 회원 A는 세제를 어제 구매했다. 그것도 1L짜리 4개 한 박스를 샀다. 아마 이 회원은 그 4L어치의 세제를 다 사용하기 전까지는 ‘물건을 절대 구매하지 않을 ‘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이 다 지나야 만 그는 ‘물건을 살 사람’ 이 되어 다시 가성비 소비니 가심비 소비니 하는 것을 할 것이었다. 4L를 한 번에 쓰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세탁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150ml를 쓴다고 생각하자면, 아마 4L는 30~40번 정도, 일주일에 4번 세탁기를 돌린다고 가정한다면 최대 10주 정도 걸릴 것이다. 8주~10주, 약 2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회원 A는 ‘물건을 절대 사지 않을 사람’ 이 되는 것이다.


해당 물건의 소비 예상 시간을 잡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3차원의 축으로 쓰기에 꽤나 괜찮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세제 같은 기성품이고 생활 용품이면서 쓰면 없어지는 상품들이어야만 그런 ‘시간계산’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소비 시간’ 중에 다른 물건을 산다면 의미가 없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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